2009/10/15 09:15
많은 고등학생들은 내신에 비해 수능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더 많은 부담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단 하루에 모든 것이 결정 나는 그 중요도적 특성에도 기인하지만, 단시간의 암기만으로 해결되는 내신과는 달리, 수능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매우 넓은 범위에 대한 범교과적 지식은 물론, 응용력까지 지녀야하기 때문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많은 학생들이 수능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이유를 단기 암기력에 의존한 공부 방법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상 많은 학생들은 12년 동안 암기에 의존해서 단기에 성적을 끌어올리는 공부 방법에 ‘중독’되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학생들은 시험이 끝나면 공부한 내용의 대부분을 잊어버리게 된다.
대학생들도 시험 끝나면 ‘아무것도 몰라요’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대학생들은 어떨까? 그들은 진정 학문을 ‘닦고’ 있을까? 암기를 넘어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현실에의 적용까지 나아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아니올시다.’ 대학생들도 시험이 끝나면 ‘아무것도’ 모른다.
대학생들이 수업을 통해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단순한 암기에만 치중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우리는 왜 암기를 했는가? 시험이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학교의 평가 방법은 어떻기에, 대학생들은 또다시 암기를 하는 것인가.
▲ 괄호넣기와 같은 간단한 문제들로 가득한 대학교 시험문제.
(출처 : http://cafe.naver.com/manhwachon19.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03)
벼락치기를 유도하는 객관식, 단답형, 괄호 넣기.
이게 대학 시험 문제야!? 객관식, 그리고 단답형의 문제들로 가득한 대학 강의의 시험지를 중, 고등학생들에게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 자신들이 푸는 B4 용지 여러 장의 긴 시험지에 비해 너무나도 간단한 A4 한 장짜리 시험지를 보고 푸념을 늘어놓게 되지나 않을까.
교재에 나와 있는 그대로의 문장에 빈 칸을 만들어 놓고 채워 넣으라니! 수업 시간에 듣도 보도 못한 책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지엽적인 개념을 단답형으로 내다니! 객관식 문제 난이도를 높인답시고 맞는 것을 모두 고르라고 하다니!
상대평가 제도 하에서 단순히 A와 B 그리고 C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문제들로 인해 학생들은 더욱 더 암기에 열을 올리는 ‘벼락’족이 되고 있다. PPT로 만들어진 핸드아웃, 혹은 교재를 아예 통으로 ‘잠시’ 암기해 버리는 학생들, 다시 높아만 가는 평균점수. 이러다 보니 암기에 자신이 없거나 암기 학습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시험 형식 때문에 과목 수강을 피하게 되는 기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결국엔 같은 답을 요구하는 약술형, 논술형.
물론 대학 시험에 객관식, 단답형만이 존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글로 답을 쓰는 약술형, 논술형 시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형식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서 문제다.
약술 문제는 단답형의 반대이다. 단답형이 용어를 설명해주고 용어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약술은 용어를 주고 그것을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보통 이러한 문제의 경우 약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 용어와 관련되어 책, 수업 중에 나온 많은 것들이 포함될수록 많은 점수를 받는다. 학생들은 또 다시 열심히 암기한다.
논술 문제가 진정한 ‘논’이 아니라는 것은 대학 첫 시험 결과를 받아든 후엔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종교 개혁에 관하여 논하라’는 문제를 받은 학생이 종교 개혁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배경 지식과 수업 내용을 총동원해서 깔끔하게 썼다면 그 학생의 시험 결과엔 이미 구름이 드리워진 상태다. 강사가 종교 개혁에 관해서 A라고 설명했다면, 학생이 종교 개혁에 관해서 B라고 논하고 싶더라도 A라고 논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수업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또 다시 열심히 암기한다.
문제도 암기해서 푸는 이공계 학과, 경제학과.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어진 문제를 수식, 논리를 총 동원해 풀어야 하는 이공계, 경제학과마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문제의 유형과 그 문제를 푸는 솔루션을 통째로 외운다.
책과 수업의 내용만 해도 따라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 문제까지 잘 풀어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마치 수학의 원리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시험을 대비하는 방법인 ‘유형별 학습법’과 같은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이렇게 풀고, 저런 문제는 저렇게 푼다는 것을 미리 외워 놓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당 과목의 교수들 중에는 이미 학생들이 시험에서 겪을 어려움을 예상하여, 해당 과목의 지난 문제들이나 예상 문제들을 미리 공개하는 교수들도 많다. 또한 아예 과목에 대한 족보가 단과대 복사실 혹은 선후배 사이에서 떠돌기도 한다.
▲ 이공계 학생들의 필수 ITEM인 솔루션.
(출처 : http://blog.naver.com/dlddu?Redirect=Log&logNo=150037555868)
실용적인 과목인 언어 과목마저도 마찬가지다. 해당 언어를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기 보다는,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교재에 있는 본문과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외워야만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암기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어 과목을 수강해도 언어가 남는 게 아니라, 외워 놓은 본문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경우도 많다.
우리 대학의 학문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
물론 많은 강좌들이 레포트나 조별 발표 등을 통해 이러한 단순한 시험을 보완하고 있고, 시험 문제 자체에서도 사고력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학생들이 왜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데 익숙해 져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또한 이러한 암기식 학습 방법이 학문 탐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검토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대학생들은 ‘시험을 보고 학기가 지나고 나면 내가 뭘 배웠었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 ‘대학 강의에서 무언가 많은 것을 얻어가려고 기대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등 학교 수업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대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오직 학점만을 좇게 만드는 주요인이 아닐까?
(관련기사 : 대학 수업? 학점만 잘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http://goham20.com/38)
10월 11일자 한겨레는 2006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한 네덜란드인 에로머 더빗(29)씨의 말을 인용하여, 한국 학생들의 불성실한 학습 태도와 ‘정답’만을 강요하는 교육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81252.html)
‘정답’만을 위한 교육 방식은 결국 암기 위주의 단편적인 학습을 낳고, 이것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암기에만 매달리게 된 것은 학생들의 탓도 있지만, 구조적인 영향도 크다. 따라서 학생들이 ‘알아서’ 능동적으로 사고하기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 철학과 교육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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