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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업? 학점만 잘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수강신청의 시즌이다. 어떤 교수님의 어떤 과목을 들을지에 대해 자율권이 부여되는 대학 수강신청. (물론 일부 특수 학과들은 제외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기 강좌도, 비인기강좌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2009년 현재, 대체 어떤 강의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강의일까? 학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자신이 수강할 과목들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특정 학문에 대한 관심? 친구들이 많이 듣는 과목?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2009년의 대학생들은 ‘학점을 잘 주는 과목’을 선택한다.

학점 잘 받기 위해 ‘아는 것도 또 배워’

서울 모 대학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A씨는 이번 학기에 총 6과목을 수강 신청할 예정이다. 전공인 경영학 과목 3개와 시사영어, 초급프랑스어, 중급프랑스어이다. 그런데 A씨는 이미 영어와 프랑스어에 매우 능통한 학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두 언어를 배워 이미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한다.

A씨가 이미 아는 것을 또 들으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학점’ 때문이다. “이번 학기까지의 성적을 토대로 교환학생을 어디로 갈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A씨는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전공과목 3개도 ‘절대평가’가 적용되는 영어강의로 골라두었다.

학점이 짠 과목은 듣기 꺼려져

A씨의 경우가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학점을 잘 주는 강의로 몰리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학생 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3%나 되는 학생들이 학점 잘 주는 강의만 골라듣는다고 답변했다.

적극적으로 학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 학생들은 52.4%, 학점을 잘 주는지 여부를 강의 선택 시에 고려하는 모든 학생의 비율은 76.2%로 상당한 수준이다.

학점을 잘 안 주면 안 좋은 과목?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 대학의 강의평가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학점을 잘 주는지에 관한 정보를 중요하게 다루어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총학생회가 운영하는 최초의 자체 강의평가 시스템으로 화제가 되었던 snu-ev(http://snu-ev.com/)의 경우, 수업 평점, 수업의 난이도와 더불어 학점만족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10점 만점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편, 연세대학교의 강의평가를 제공하고 있는 연두(http://yondo.net/)의 강의평가 작성 양식에는 ‘학점은 ‘+’ 위주로 주시는 편인가요?’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0’나 ‘-‘학점을 받지 않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이 질문을 통해 과목 수강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특징적인 것은 학점을 잘 주는지의 여부, 즉 학점만족도와 평점으로 표시되는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점을 잘 주는 강의에 대해 높은 평점을 주고 있었으며, 소위 ‘학점으로 배신한’ 강의에 대해서는 낮은 평점을 주고 있었다.

좋은 수업을 하는 교수님들은 모두 다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들은 아닐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결과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 해석할 수 있다.

학생들은 왜 학점에 집착하게 되었나

대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학점이 자신의 학업 성취도를 나타내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근본적 이유보다는 장학금, 복수전공, 유학, 교환학생, 취업 등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 평량평균을 성취해야 하는 현실이 대학생들이 학점 관리에 집착하게 된 주요 원인이다.

과거에 비해 어려워진 취업 환경 속에서 높아져만 가는 기업의 기준들, 그리고 지원자들의 스펙 때문에 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좋은 학점을 받는 것에 더 ‘목숨 걸게’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대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다. 더 높은 학점을 위한 학생들의 노력은 대학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다. 학문 연구의 장으로써의 대학의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은 오직 A+를 받기 위한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으며, 이 결과 많은 부작용들도 함께 탄생하고 있다.

A0나 A-를 받은 학생들이 A+을 달라고 너무 당당하게 요구한다라는 교수들의 푸념은 이미 오래된 것이다. 또한 학점을 잘 안 주는 과목이나 어려운 과목, 도전적으로 수강해 볼만한 과목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외국어, 수학 과목 등을 이미 잘 하는 학생들이 많이 수강하여 처음 배우려는 학생들이 과목에 도전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개인들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학의 본질을 되찾을 수 있는 해결책을 사회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페르마타
페르마타

청년/저널리즘/문화 연구자. 페르마타 = 그 음의 길이를 2~3배 길게. 마쳐라.

1 Comment
  1. The_Chemist

    2009년 8월 18일 04:37

    사실 이것을 직접 ‘최근의 문제점’ 으로 논하기도 뭐한 게, 이런 상황은 대학 교육을 시작한 지 꽤 된 저기 저 쌀국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영국이나 독일 쪽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못 구했네요) 의외로 이것은 대학 시스템에서 꽤 된 문제라는 이야기죠; 대학교의 학점이 어딘가 상위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고교 내신마냥 ‘평가’의 양식으로 들어가는 한, 이러한 일은 끝없이 반복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덧.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해보려 한다면……
    대학이라는 공간의 ‘학문적 신성성’ 이 이미 오래 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깨져 버린 사회에서 그러한 ‘본질’을 구성원들에게 강요하기는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오히려 대학이 상위 사회로 통하는 ‘관문’으로 인식되는 것이 이미 어느 정도 합의되어 버린 환경에서, 아무래도 그 지표가 되는 학점에만 의미가 실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네요. 실제로 그 ‘관문’의 지표가 달라지는 경우(ex. 고시) 학생들은 거기에만 매달리니까요- 대학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쯤 고고학을 해 볼 만도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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