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인연은. 그러니까 1998년도로 넘어간다. 초등학교 6학년을 올라가면서 새로 취임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 정치에 관심도 없었던 그 어린 꼬마가 어떻게 취임식을 생생하게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두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5학년 중반부터 우리에게는 수학여행을 어디로 가느냐가 가장 큰 화두였다. 선배들이 다녀왔던 루트로 봤을 때, 우리의 수학여행은 운이 좋으면 제주도까지도 노려볼 만 했다. 누군가 가져온 친구의 친구 어머니의 소식통에 의하면 수학여행을 부산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멀리 간다는 말에 한껏 들떠 있었던 우리는, 옆 학교의 수학여행 행선지 발표에 기가 팍 죽고 말았다. 옆 학교는 수학여행 대신 당일치기로 서울 63빌딩에 다녀온다고 했다. 아니, 평생에 한 번 있을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인데, 어떻게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지 우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이 시기 우리들은 수학여행을 당일치기로 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IMF의 여파가 크게 다가왔었다. 갑작스러운 부도로 야반도주를 감행한 몇 학년 몇 반의 누구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돌 정도로 IMF의 여파는 컸다. 어쨌든 우리 학교는 설악산으로 2박 3일 수학여행을 무사히 다녀올 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옆 학교의 수학여행은 충격이 컸다.

  도대체 IMF가 무엇이기에 우리를 이렇게 괴롭힌단 말이냐. 철없는 12살짜리 초등학생은 한껏 눈을 부라리고 뭣도 모르면서 TV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나오면 째려보곤 했다.(난 그저 신문에서 IMF의 탓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탓으로 돌렸으니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그 날, 나는 부모님과 함께 거실에 앉아 취임식을 보며 ‘아, 이제 수학여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이다.

  그 후로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를 배우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왜 평소 발을 저시는지, 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이 한국 정치계의 큰 이슈가 될 수 있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파란만장한 삶부터 겨우 획득한 대통령의 자리. 최초 여당과 야당의 교체. 그리고 햇볕 정책으로 성립된 이산가족의 상봉(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좋아했던 것 같다. 노벨 평화상을 받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왔구나 했다.

  대학생이 되고, 이제 정치판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 지금, 난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의 헤어짐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너무 충격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국장에서 보인 김 전 대통령의 눈물이 계속 오버랩되고 있다. 이 시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련한 원로 인사분들의 충고와 고언인데, 왜 다들 떠나가시는 걸까.

  아. 난 정말 뭣도 모르는데 가슴이 참 아릿하다. 왜 올해에는 김수환 추기경에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마이클 잭슨.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슬픈 일들이 많을까.

  내 수학여행을 사수해주시려고 취임하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 하늘에서는 편안한 다리로 또박또박 걸으시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햇볕을 가득 쬐어주시며 평화를 빌어주고 계시겠지?? 노 전 대통령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을까?? 부디 편안한 잠을 주무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