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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원자화가 불러온 ‘씁쓸’한 인맥의 양극화

“고등학교 친구들은 진짜 편하고 진심으로 대하는데, 대학 때 사귄 사람들은 뭔가 벽을 가지고 만나게 돼.”

은 사람이 한 목소리로 하는 말. 바로 ‘고등학교 친구가 진짜 평생 친구, 대학 친구는 인맥’ 쯤으로 여겨진다는 말이다. 이 말이 독자 여러분에게 해당하느냐 아니냐에 상관 없이, 실제로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 내의 인간 관계를 매우 피상적이거나 심지어는 계산적인 관계로 여기고 있다.

대학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100% 까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솔직한 내 모습이 아닌, 만들어진 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외모를 통해, 자신의 패션을 통해, 서로에게 친구가 아닌 ‘인맥’이 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사실 대학 사회의 공동체들이 붕괴되었다는 말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인주의적 마인드의 확산과, 어려워지는 경제 사정, 취업난, 스펙 쌓기 열풍들은 ‘점점 더’ 대학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과방이나 동아리방은 점점 텅텅 비는 장소가 되어 가고 있고, 대신 중앙도서관의 좌석 한 자리 차지하기는 매년 더욱 힘들어져 가고 있다.

친밀한 감정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인간 관계보다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전제 하에서 형성되는 인간 관계가 대부분인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는 대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예 대학 내의 인간 관계를 끊고 ‘수업만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위 ‘아웃사이더’ 족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계산적인 인간 관계를 최대화하고 있는 ‘인맥관리’ 족이 있다. 인맥도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싸 부럽지 않은 아싸

 A씨는 대학 생활이 어떤 것인지 하나도 모르던 시절 얼떨결에 선배한테 전화를 받고 오리엔테이션(OT)에 참가했다. 술을 마시기 위한 게임을 해서 억지로 술을 마시고, 번호를 주고 받았지만 ‘급속도로 친해지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관계맺기에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입학 후에도 강의실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가끔 과방에 가서 동기들과 대화를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극히 수업에 관한 얘기, 영어에 관한 얘기 등 뻔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동기들과 친해져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기만 했다.

동기들과의 관계는 그다지 진전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이었고, 결국 어색한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기로 한다. 친해지기 싫은 사람들과도 자꾸 마주쳐야만 하는 공동체 내의 생리가 싫었고, 학과 내에 흐르는 나와는 맞지 않는 분위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입학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A씨는 더 이상 그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도 하는 대화라고는 ‘안녕~ 어디 가는 길이야?’ 정도의 일상적인 겉치레 뿐이다.

학교에서 수업 밖에 듣지 않고, 또한 수강신청 할 때도 아는 사람들과 시간표를 맞추지 않아 혼자 듣는 수업도 많지만 A씨는 소위 ‘인싸이더’로 불리는 대학 공동체에 잘 적응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 학점에도 도움이 되고, 자기 생활을 할 시간을 뺐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볼 때 필기가 필요한 데 필기를 구하기 어렵거나, 그냥 대학에서도 친한 친구를 얻은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A씨에게도 외로움을 달랠 친구들은 대학 친구들이 아니라도 충분하다. 오늘도 A씨는 대학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문을 닦으러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맥은 나의 힘, 인맥관리족

B씨도 A씨가 그렇듯 대학의 공동체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적응했던 것은 아니었다. 피상적인 인간 관계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웃사이더로 지내는 것은 내키지 않아서 모임에 꾸준히 나가면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게다가 ‘인맥’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또한 한 사람이라도 놓치기 싫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임에 나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핸드폰에 쌓인 전화번호만도 700여개. 몇몇 모임에서는 직책을 맡아 중요한 일을 하면서 각 대학, 전국 방방곳곳에 아는 사람들을 만들게 되었다.

인맥 관리를 하면서 몇 년을 지내오다 보니 몇 가지 습관들도 생겼다. 어떤 모임이든 만남이 끝나고 나면, 헤어진 후 문자를 보내 ‘오늘 모임 즐거웠어, 다음에 또 보자 ^^’라고 보내 주는 센스, 생일이나 기념일은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가 잊지 않고 챙기는 다정함.

그러나 B씨는 정작 이렇게 인맥을 쌓아 놓고 보니, 이러한 인맥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전화번호에 700개의 번호가 쌓여 있어도, 네이트온에 800명의 ID가 등록되어 있어도 정작 누구한테 문자, 쪽지를 보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작 ‘정말 친한 사람들’은 만들지 못했다.

또한 소위 ‘인사이더’인 자신에게 자꾸 모임 일정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 지난 번에 모임을 가졌던 장소가 어딘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좋기도 하면서 가끔은 짜증도 난다. 핸드폰을 한참동안 꺼 놓았다가 한꺼번에 ‘핸드폰이 꺼져 있었어 ㅜㅜ 미안’ 이라는 식으로 위기를 무마하는 것도 한두 번.

하지만 B씨는 인맥 관리에 앞으로도 소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어느 지역을 가도 뭐든 물어볼 사람이 있고, 시험 볼 때도 필기 빌리기가 편한 것처럼 앞으로 어딘가에든 이 인맥이 도움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극화라는 것은 ‘양극화’라는 그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맥이 양극화되는 것. 아웃사이더 족도 인맥관리 족도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의 해결을 위해 삭막한 대학 공동체가 회복되길 기원해 본다.

페르마타
페르마타

청년/저널리즘/문화 연구자. 페르마타 = 그 음의 길이를 2~3배 길게. 마쳐라.

2 Comments
  1. 라별

    2009년 9월 1일 07:30

    뺐기지->뺏기지 인 것 같아요!
    아.. 전 저 중간에 걸쳐 있는 중간사이더입니다;ㅁ;

  2. CloverN

    2009년 9월 3일 14:54

    으흠, 많이 공감되는 글이네요 ;ㅂ ;
    저도 그런생각좀 해봤는데,
    2학기 개강파티의 의미도 더 이상은 모르겠고 ㄱ-…//
    저도 중간사이더인것 같네요?!

    p.s: 형 수고하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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