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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1000만원에 무너지는 꿈



며칠 전 부동산에 갔다. 신세지던 집에서 갑작스럽게 나와야했기 때문이다. 평소 부유한 친구 덕에 보증금 없이 생활비만 내며 셋방살이를 했다. 깔끔한 빌라에 방 하나를 받아쓰거나 원룸을 잠시 빌려 쓰기도 하고 일 년에 이사를 두 세 번씩 하기도 했다. 일단 전에 잠시 살았던 고시원을 알아보다가 더 이상 2평 남짓한 방에서 숨 막힌 채 살 수 없다는 간절한 생존욕구에 덜컥 원룸을 욕심냈다.




창문도 없는 고시원 방은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문득문득 내 숨을 조여오곤 했다. 고시원과 나는 자석의 양 극처럼 도저히 친해질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폐쇄공포증이라도 생기겠다 싶었고, 원래 인간은 작은 방에 홀로 두면 미친다며 방을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곳엔 사람이 붐볐다. 고시원 생활을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도 곧 다른 이들로 채워졌다. 마치 생명이 있는 유기체같은 느낌이었다.




부동산 아저씨의 강력 추천 원룸. 보증금 1000만원에 35만원. 이 정도면 매우 싸게 나온 것이라며 아저씨는 너스레를 떤다. 순간 1000만원만 구하면 서울생활이 편해지겠다 싶어서 혹 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돈을 구해줄 수 없느냐 물었다.



가슴이 아팠다.



서울에서 돈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부동산에 투자한다. 그들은 언제나 서울집값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질 리 없다고 호언장담한다. 그 믿음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있는 한, 집값은 떨어질 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을 지지하기라도 하는 듯이 부동산 시장은 지속적으로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파트는 88만원 세대의 월급으로는 평생 모아도 택도 없으니 차치하고, 빌라부터 원룸, 심지어 고시원까지도 꾸준히 가격이 오르고 있다.



특히, 20대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원룸과 투룸의 매매상황은 더욱 나쁘다. 매매는 물론이거니와 전세조차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고 보증금과 월세를 내는 구조가 많다. 보증금은 보통 1000만원에서 2000만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월세는 월세대로 30~50 만원선. 거기에 관리비와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은 별도이다. 합쳐져 있다고 광고하는 곳은 알고 보면 다른 곳의 월세와 관리비를 합친 금액과 비슷하다.



지방에서 대학생활을 위해 올라 온 학생들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놀라고, 대학가 주변 집값에 두 번 놀란다. 대학생활의 기대감에 부풀어 상경하지만 등록금에 집값 그리고 생활비까지 경제적인 벽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경제적인 벽에 부딪치는 학생들은 꿈을 꾸는 것조차 힘들다. 몇 천 만원의 금액을 들인 대학교육의 본전을 뽑아야 부모님께 받은 돈, 학자금대출로 생긴 빚들을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목표가 되어버리고 돈과 떨어진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라고 느끼게 된다. 돈을 추구하지 않고 꿈을 추구하는 사람을 괴상하게 바라보고 천대하는 환경에서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인 것이다.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는 다양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때 건강해질 수 있다. 정치적, 공동체적, 예술적 이상향 등 다양한 분야로의 꿈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꿈들이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20대들이 살아가는 데 최소기본요건이라 할 수 있는 주거문제조차 해결해주지 못한다. 하물며 등록금, 취업, 교육, 결혼문제 등 다른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정책결정과정에서 20대 문제는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자식 하나를 서울에 보내면 소를 팔고, 자식 둘을 보내면 땅을 판다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자식 하나만 서울에 보내도 집을 팔아야 한다. 과수원이든 집이든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없는 집안에서는 빚만 늘어갈 뿐이다. 이런 부모님을 뒤에 둔 학생들이 돈에 연연해하지 않고 꿈을 자유롭게 꿀 수 있을까? 꿈을 꿀 수 있는 사회. 꿈을 꾸도록 북돋아주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꾼다.


<명박부동산 사진출처: http://cafe.naver.com/beg6/21943 >
<고시원내부 사진출처 : http://www.gosiwon4u.net/sub/vie…no%3D354>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5 Comments
  1. 그별

    2009년 9월 21일 03:09

    꿈이라도 제대로 꾸었다면, 아니 교육의 현실이 그렇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참으로 세상은 사람들을 옥죄도록 하고있죠…
    그래도 지금 20대 대학생이라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된 꿈을 꾸시고, 그 꿈을 향해 실천할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부디, 세상의 굴레에 편입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취업… 그게 꿈일 수 없지요…
    원래 세상은 진정한 재미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 재미라는 것이 흔히 하는 퇴폐적인 것 말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보시길… ^^

    • 테싸

      2009년 9월 24일 04:53

      감사합니다. 저도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현실에 굴복하기에는 20대라는 시기가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요. 쓰러지고 실패해도 용인되는 유일한 시기가 아닐까요 ^^

  2. 커래히

    2009년 9월 22일 15:53

    저도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으로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놀라고, 대학가 주변 집값에 두 번 놀란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책 ’88만원 세대’에서 나온것처럼 우리나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20대와 청소년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을 꾸리거나 방세를 속편히 내는게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참 안타깝고도 어쩔수 없는 현실이죠..;;;;

    • 테싸

      2009년 9월 24일 04:56

      저도 ’88만원 세대’에서 경제적 능력이 거세된 세대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답니다. 가정을 꾸리는 일은 커녕 자신의 몸 하나를 간수하기에도 힘들잖아요. 경제적인 독립 없이 자연스러운 정신적 독립이 뒤따를 리 만무하지요. 20대에게 부모님에게 빌붙어 사는 독립성이 부족한 세대로 인식하는 것은 심각한 누명이라 생각합니다.ㅠ

  3. ..

    2009년 10월 3일 23:17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한국의 현실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청소년시기에도 독립이 가능한구조다만
    알바시급부터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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