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oonbogy.tistory.com/m/post/view/page/86)

필자와 컴퓨터 게임의 연관성은 저 멀리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 친한 친구네 집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 친구네 집에는 당시 ‘겜보이’라고 불리우는 콘솔 게임기가 있었는데, 항상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그 게임기 조이스틱을 주구장창 붙잡곤 했다. 그때 했던 게임은 ‘더블 드래곤’이라는 게임이었는데, 두명의 주인공들이 악당에게 잡혀간 여자친구를 구하는 스토리로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했던 게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더블드래곤’이라는 컨텐츠도 인상깊었지만, 당시 비디오 게임 콘솔의 구조도 인상깊었다. 콘솔에 게임 팩을 꽂고 게임을 하는 것은 현재 X-box, Wii, Playstation 2와 비교해 봤을때는 구닥다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국민학교 1학년생’인 나에게는 매우 신기한 존재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 by comfutur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친구를 통해 비디오 게임의 세대를 처음 접하고, 나도 부모님한테 졸라서 대망의 ‘겜보이’를 사게 된다. 그 후부터 나의 학창생활은 게임과 연결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에 산 비디오 게임 콘솔은 겜보이 – 패미컴 – 플레이스테이션 1 – 게임보이 어드벤스 – 플레이 스테이션 2, 그리고 현재의 닌텐도 DS…… 게임 콘솔을 비롯해서 컴퓨터도 많이 바꾼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처음 다뤄본 286 XT /AT 부터 386, 그 후 집에서 이용한 486, Pentium………. 그리고 지금쓰는 500MB 램을 이용하는 컴퓨터까지… 각종 콘솔에 이용 가능한 게임 소프트웨어는 여러개를 소유하고 있었고, 컴퓨터 내에도 여러가지 게임이 설치되어 있었으니, 정말 나는 게임을 많이 하기는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과연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학창시절에 비디오 게임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비디오 게임은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http://www.gamemeca.com/news/special_view.html?seq=1179&page=1&search_text=&sort_type=&subpage=1&send=)

스타크레프트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게이머는 정품 게임소프트웨어를 사고 그것을 설치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정품을 안쓰고 불법 다운로드를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경우를 배제하도록 하자.) 설치 후 윈도우 바탕화면에 있는 소프트웨어 아이콘을 클릭해서 게임을 시작하면, 게이머는 스타크래프트 소프트 웨어에 내장된 스토리 모드로 할 것인지, 베틀넷이라는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해서 전세계의 게이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온라인 모드로 할 것인지 선택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를 선택해서 게임 모드를 선택하면, 종족 (테란, 프로토스, 저그)를 선택해야 된다. 종족 선택을 하면 게임을 하는 무대가 되는 맵을 선택해야 된다. 이러한 선택들을 마치고 게임이 시작되면 초기의 여러 유닛들이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게이머는 그 유닛들을 이용해서 전투용 유닛을 생산할 수 있는 건물을 지을 수 있고, 혹은 유닛들을 이용해서 미네랄이나 가스 등의 광물들을 캘 수 있으며, 아니면 유닛들을 바로 공격에 투입시킬 수 있다. 물론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은 게이머에게 있다. 스타 크래프트에서는 승리와 패배라는 두가지의 결과로 인해 선택에 대한 책임이 나타나게 된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모든 게임은 이렇게 게이머의 선택이 추가 된다. 이러한 선택은 게이머가 특정 게임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게임이다.’라는 생각을 심어 줄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만들었고, 자신이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해당 게임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비디오 게임의 발전은 이러한 선택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미국, 유럽에서 GTA시리즈가 유명해 질수 있었던 이유는 게임 세계 안의 게이머의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것 때문이다. GTA라는 게임에서 게이머는 게임제작자가 정해 놓은 스토리에 맞게 게임을 진행시킬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를 신경쓰지 않고 게이머 자신이 선택하는 방향대로 게임을 진행시킬 수 있다. 게임계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자유도’라고 정의를 하는데, 자유도가 높은 게임일수록 게이머의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 많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게임의 발전 방향은 게이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점처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본성인 개인의 선택을 무시하는 게임은 점차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에서 멀어질 것이다.


(출처 : 연합뉴스)

게임의 발전 방향이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아직 사회의 발전은 그러한 개인의 선택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설치된 덕수궁 분향소에 분향하지 못하게 막는 외부의 세력들. 그렇게 먹기 싫다고 하던 미국산 쇠고기를 일부러 수입하려고 했던 정부 관료들. 야간 옥외 시위를 방지하기 위해 서울시청에 전경 버스를 동그랗게 주차시켜 놓은 경찰들. 개인의 선택은 이렇게 계속 침해를 받고 있다.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tcode=04005&s_work=view&no=78334&p_page=10&p_choice=&p_item=&p_category=)

사회주의국가가 그동안 실패한 원인 중에 하나가 인간의 본성인 개인의 선택을 너무 제약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자를 위한 국가’를 만든다는 이상적인 발상으로 만들어진 국가였지만, 결국 그러한 발상은 노동자들의 개인적 선택을 일일이 신경쓰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 의욕적으로 사회의 정책에 따른 노동자들도 인간적 본성인 ‘개인의 선택’때문에 그 불만감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개인의 선택을 완전히 존중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 각 국가의 이익에 따라 이 개인의 선택은 조금씩 침해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국가 존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현재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이는 사회의 발전방향이 현재 게임의 발전 방향처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고 있는 일부의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9월 26일에 헌법재판소는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야간 옥외금지가 궁극적으로 볼 때 국민의 권리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하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집회 결사의 자유가 개인의 선택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헌재의 결정은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앞으로의 사회의 형태는 이렇게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국가는 그러한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 개인의 선택을 제약하는 강압적인 물리력보다는 토론을 통한 서로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하다.

또한,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들 또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될 필요가 있다. 사회가 개인의 선택을 중요시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결국 사회보다는 개인에게 무게중심이 더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게중심 가운데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행동에 대한 결과가 자신의 행동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태도는 미래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 내에서 자기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