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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20 기자들의 입시체험기 ② 수시2학기, 정시, 재수 편


정시편 – 페르마타 기자

정시만 믿었는데, 망해버린 수능시험

정 시로 갈 수 있는 대학이면 수시는 쓰지 말자라는 원칙 아래, 수시에는 단 2곳에만 지원했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일정 점수대에서
크게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는 편이었고, 내신보다는 수능에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만 그 자신감은 수능 당일 저녁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수능시험을 보는 동안 생각했던 것만큼의 폭락은 아니었지만, 평소의 점수에
비해서 20-30점 정도가 떨어진 가채점 결과를 확인한 후 한동안은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재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되었고, 성적이 실제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반전이 일어나 생각보다 좋은 성적이 나오지는 않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다.


시 전형으로 2곳의 대학에 접수했지만, 준비하지도 않았던 수시 전형에 성공할 리 없었다. 수능 등급제가 적용되는 첫 해라
예정보다 일찍 배부된 수능 성적표에서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안 좋은 소식만 연달아 듣게 되다 보니, 안 좋은
생각만 계속 하게 되고는 했었다.

논술 준비를 카페에서 이뤄내다


능 결과와는 상관없이, 원래 정시 전형을 준비하기로 했었던 대로 수능 2주 후에 바로 상경해서 논술고사 준비를 시작했다. 친척
집에 머무르면서, 1주일에 3번은 학원에 다녔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실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앉아 있는 것’ 뿐이었고,
글을 쓰는 시간보다 오히려 자리에서 DMB를 보거나 엎드려 자는 시간이 많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집중력이나 의지가 떨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열심히 학원을 다녔지만 12월말까지도 이러한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학원에서는 시간에 쫓겨 글을 계속 쓰고, 첨삭을 받는 일은 계속했지만. 혼자 쌓으려고 했던 여러 가지 상식이나 다시 써 보기 등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독서실의 내 자리에는 계속해서 침만 더욱 더 흥건해졌다(…)


국 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카페’라는 공간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아는 선배들이 요즘은 카페에서도 공부를
한다고 하길래 카페로 논술 공부 공간을 옮겨보았는데 오히려 나는 조금 소음이 있는 공간에서 더 집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논술 공부는 카페에서 원고지를 펴놓고(..) 했는데, 겨우 1주일 했던 카페에서의 논술 공부가 그 이전에 했던 1달간의
독서실 생활보다 더 많은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공부가 되기 시작하니 욕심도 생겼는데, 학원 첨삭도 더 열심히 받게 되었고 아는
선배나 친구들에게도 욕심을 내어 첨삭을 받고 조언을 들었다. 이러한 1주일 동안의 학습으로 나는 논술고사를 결국 담담하게 잘
치러낼 수 있었다.

소신 지원이 결국에는 승리한다


시 전형에서는 세 번의 지원 기회가 주어진다. 가군, 나군, 다군. 이 중에 다군은 지원 가능한 대학이 적었던 데다가 내가
지원할 만한 대학이 없었다. 따라서 나에게 지원 기회는 두 번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신 지원과 안정 지원을 섞어서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공식이지만 많은 수험생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처음엔 가군, 나군에 모두 소신 지원을 하고 다
떨어지면 재수나 하자는 생각을 먹기도 했지만 결국엔 가군에 소신 지원을 하고, 나군에 안정 지원을 했다.


과적으로 이러한 지원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논술고사를 치른 후에 좋았던 느낌처럼 결국 먼저 발표가 났던 나군에는 최초 합격을
했고, 같은 날 저녁 발표된 가군 대학은 매우 좋은 후보 번호를 받았다. 예측대로 가군에서도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고,
고3 처음에 잡았던 목표였던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2순위로 원했던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실 배치표 상으로 보았을 때, 당시의 내가 가군 대학에 지원한다는 것 자체도 모험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군에 안정 지원을 했던
것도 있었고, 재수를 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지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나의 입시결과, 친구들의 입시결과를 보면 나타나는
것인데 소신 지원을 한 친구들이 결국에는 승리한다. (너무 무리한, 가능성이 아예 없는 지원은 소신 지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배치표에만 현혹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면 이루어질 것이니! 이 글을 읽는 수험생들은 소신 지원도 한 곳
이상은 꼭 했으면 좋겠다.

http://blog.daum.net/_blog/rss/r…%3D0HVU4


재수 – 까꿍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게 수능이란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를 들으면 가슴 아프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며, 어떤 때는 무섭기도 한다.

수능이 나에게 특별해 진 이유는 수능을 두 번, 즉 재수를 했기 때문이다.

고3 때 수능 보는 것과 재수할 때 수능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이번에는 꼭 가야한다는 마음과 꽃다운 20살을 가져간 데서 오는 그 중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수능이 바로 내일인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수능날 시계


능날 꼭 하나씩 빼먹는 사람들이 있다. 나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분명히 생각했고, 수능시험장 가는 길에도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까먹고 시계를 안가져갔다. 시험지를 눈감고 30분만에 푸는 사람들은 시계가 필요 없겠지만, 시계를 보면서 사람들은 페이스 조절을
하고, 안정감있게 시험을 볼 수 있다. 내 수험번호가 적힌 자리에 앉았는데 다른 사람들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은 쿵쾅거리고 그 순간 정말 5초정도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드라마의 여
주인공처럼 감독관들이 있는 교실로 뛰어 내려갔다. 처음에 날 쳐다보는 표정이란… 왠 재수생처럼 생긴 애가 숨을 몰아쉬고
자신들을 째려보고 있으니깐 말이다. 나는 정말 세상에서 지을수 있는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시계를 안가져 와서 빌려달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그날 그 학교 교장선생님의 비싼 시계를 가지고 시험을 봤다. 어떤 친구는 시계 없이 시험을 봤다고 한다.
혹시 안 챙겨 온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Right now 감독관 대기실로 가서 빌리길 충고한다.


스트레스&압박감

스트레스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수능이란 큰 시험을 앞두고 모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레스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럼 왜 잘하고 싶습니까? 그건 좋은 대학에 가고 싶기도
하고,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결국 그 마음들은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부정적이고 건강에도 안좋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랑이란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니깐 이 압박감 어떻게 하지 보다는 결국은 내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는 사랑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담갖지마세요!

 

홧팅!!

http://www.ihopenews.com/paper/n…%3D17%26


수시 2학기 편 – 에르네스토

두 번째 보는 수능이었지만 그렇게 준비가 착실히 되어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때문에 수시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3 현역일 때는 수능에 전력하느라 사실 수시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당연히 보기 좋게 탈락. 심지어 모대학교는 수능 성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과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수시 시험을 보러가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수능 성적이 평소만큼 나오지 않았고(죽일 놈의 등급제…)결국 수능 성적으로도 그
대학에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수시를 봤더라도 합격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나의 과도한 자신감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재수. 여름 때부터 친구의 소개로 논술 선생님을 알게 되서 열심히 글을 썼고, 글을 쓰기 위한 배경 지식들도 배웠다.
선생님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터치하지 않으셨다.(띄어쓰기 같은 세부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나만의 스타일로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논술 학원들은 모범답안에 맞는 글쓰기를
요구하는데 이는 누누이 강조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답안이 될 위험성이 크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몇 개월 간 글을 쓰면서도 사실
수시로 대학을 붙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수능을 위한 보험(?)정도로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시를 준비했던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2009수능…

수리 영역이 끝나고 난 후에 나는 ‘삼수를 해야 되는걸까…’라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채점을 해 본 결과, 그날 나에게 신이 내리셨던 걸까? 수리 문제에서 찍었던 것들이 꽤나 맞아 들어갔다.
덕분에 나는 수시를 위한 최저등급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 때 까지도 나는 수시로 대학을 가리라곤 생각지 않았었기에,
수능 성적을 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수시 시험 당일, 혼자 서울로 상경해 시험을 봤다. 작년에도 봤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리 긴장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오면서 읽었던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써먹을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글자 수 제한에 맞춰 글을 다 쓰고 나오면서, ‘그래도 다 쓰긴 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친구들과 놀며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합격결과가 발표되는 날, 역시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있다가 논술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합격 결과가 나왔으니 집에 가서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그 전날, 작년에 수시 시험장에 가지 않아 떨어졌던 대학에서
수시합격 통보를 받았었기에 은근한 자신감이 생긴 터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여느 때와 달랐다. 늦은
시간이라 집에 오니 부모님은 다 주무시고 계셨다. 조용히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결과를 확인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왠지 합격창을 끄면 합격이 취소될 것 같아 합격창을 함부로 끄지도 못할정도로 말이다.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자고 계시던 부모님을 깨웠다. 주무시다 깨셔서 충혈 된 눈으로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었다. 게다가 작년에 나를 정시에서 떨어뜨렸던 학교를 이젠 내가 붙었는데도 차버리고 안 갈 수 있다니, 왠지 복수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더욱 통쾌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시생의 특권, 다른 학생들은 정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이 편치 못하지만
수시합격생은 그 이전부터 마음 편히 놀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았다. 아무튼 나에게 수시 2학기는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다


페르마타
페르마타

청년/저널리즘/문화 연구자. 페르마타 = 그 음의 길이를 2~3배 길게. 마쳐라.

1 Comment
  1. 나란존재는.

    2009년 11월 17일 11:54

    힘들다.. 세상살이가… 나는 옛날부터 자격증의 자격증도 6번은 기본떨어지고 붙었는대 수능은은 쪽박 한번에 망하였다..
    내인생 .. 내친구는 대학가는대 나는 전문대가서,, 재수 준비한다.. 인생이란 무었인가…
    나는 초야에 묻히고 싶다. 노자와 장자가 말씀하셨듯이.. 인간은 자연의 축소판이 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살아도 사는거같지 않고 죽어도 죽은것 같지 않는 이 허무함.. 죽고싶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이기 떄문에 살아간다.. 북한과 남한이 통일이 되지 않는것 처럼 우리의 삶도 절대 희망의 방향으로는 멀어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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