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목요일은 몹시 특별한 날이었다. 고3을 비롯한 전국의 입시 수험생들이 고대하던 수능날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학창시절 1번은 치는 수능이 뭐가 대단한가-라고 되물을지 몰라도, 수능은 12년 정규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분명 쉽게 간과할 수 없다. 당일에는 일반적인 기업들의 출근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도 마음대로 뜨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에서 수능이 얼마나 대단하고 거창한 시험인지 알 수 있다.

 수능은 기삿거리를 얼마든지 낼 수 있는 굉장한 소재인 덕분에 수능철이 되면 기사도 TV 보도량도 상당히 많아진다. 작년 수능과 비교해서 난이도는 어떨 것이다- 하는 예측성 보도에서부터 수능 이후 진행되는 정시모집 안내 정보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당일날에는 뜨거운 응원 열기가 가득한 교문 앞을 앞다투어 취재하기도 하고, 시험이 종료되고 나서는 수험생을 붙잡고 인터뷰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봐 왔던 일반적인 패턴의 수능 관련 보도였다.

 고함20은 천편일률적인 수능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변화시키기 위해 고민하다가, 짤막한 서너 마디가 아닌 수능날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담은 ‘생생 수능 체험기’를 준비해 보았다. ‘언어는 보통이고 수리는 어려웠으며 난이도는 예년 수준이었다’ 하는 딱딱한 후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수능을 ‘몸소 체험한’ 살아 있는 그 날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입시제도에 대한 수험생의 생각, 대학 진학 이후의 소소한 계획들은 이야기 속에 양념처럼 잘 버무려져 있다.

 
 다음은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서울 문화고에서 2010학년도 수능을 치른 김상훈(19, 미래산업과학고)군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수능을 맞는 수험생의 바람직한 자세



 요즘이야 재수가 흔해졌고 삼수도 선택이라고 할 만큼, 공고화되는 학벌주의 덕에 수능을 2번 이상 치르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수능을 ‘처음’ 쳐 본다. 단적으로 말해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시험이니만큼 남다른 준비 태세가 필요했을 것이다. 수능을 본 지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수험생의 말에 귀기울여 보자.


 상훈 군은 ‘표지를 보지 마세요’라는 말로 운을 뗐다. 표지를 보지 말라니? 수능 시험지에 겉면을 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는 선명하게 적혀 있는 ‘2010학년도 대학수학평가시험’이라는 글자에 압도당해 급긴장상태로 변했다고 전했다. 당일 아침 6시 반쯤엔가 집을 나섰다는 상훈군은 되도록 이른 시간에 고사장에 도착하기를 당부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 한결 여유로운 데다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미리 익혀 두면 모의고사 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럼 꼭 챙겨야 할 소지품엔 무엇이 있을까? 질문한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시계요’라고. 고사장에는 의외로 시계가 없는 많단다. 그럴 때 손목시계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다. 마스크를 챙겨가는 것도 좋은 팁이라고 귀띔해 준다. 신종플루 때문이냐고 물으니 ‘담배냄새가 지독해서’라고 한다. 당연히 비흡연자여야 할 청소년이 직접 말하는 흡연의 실체였다.


  점심시간과 쉬는시간의 이야기도 물었다. 쉬는시간은 보통 30~40분 정도라고 했다. 예상보다 꽤 긴 시간이었다. 상훈 군은 그 때 산책을 했다고 전했다. 초콜릿을 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간단히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모두 ‘긴장감을 풀기 위해’ 한 일이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교실에서 나가서 맑은 공기를 쐬는 것도 꽤 좋다고 했다. 점심은 불고기, 밥, 깍두기, 기타 반찬으로 구성된 도시락이었다. 초콜릿, 껌, 빵 등 군것질류를 많이 사 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거의 다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정리하면 ‘몸은 가볍게, 머리는 무겁게!’ 정도가 될 것 같다.


  상훈 군이 다니는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는 공고라서 사/과탐 4과목 대신 직탐 3과목을 보았다. 그래서 1시간의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시험 종료 시간은 같아야 하므로 중간에 1시간의 짬이 났는데 그 때 참고서 등 자료들을 보며 공부할 시간을 주었다. 인터뷰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만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직탐 문제는 꽤 난이도가 높아 오히려 학생들이 울상이었다고.


 끝나고 나니 5시 정도였고 너무 오랫동안 시험을 보느라 진이 빠져서 그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하는 상훈 군. 사실 친구들과 놀 계획도 만들까 하다가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야 해서 접었다고 한다. ‘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당장의 목표가 눈 앞에서 사라져 홀가분했다고도 했다. 주변 친구들이 수능을 쳤을 때 허무하고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는데, 상훈 군은 ‘끝’이라는 해방감이 압도적이었다니 역시 수험생마다 드는 기분은 천차만별인 듯하다.


 수능,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요즘 연중 2번을 치르겠다, 미국의 SAT 제도를 따오겠다 등 수능제도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상훈 군도 한 명의 수험생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수능 제도에 대해 아쉬운 점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상훈 군이 가장 중점적으로 지적했던 부분은 ‘하루에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등학교 3년, 아니 그 이전의 긴 과정들이 단 하루만에 판가름난다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범위도 너무 많아 효율적인 평가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1부터 고3까지 1년에 1번씩 수능시험을 치러 평균을 내는 방법을 제안했다. 수능반/내신반으로 나누어 지망하는 쪽만 특화시켜 공부하는 다소 파격적인 방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수준별 수능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의견을 내 놓았는데, 상위권 학생들의 하향지원 때문에 중하위권의 경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상훈 군은 또, 단순히 현재의 입시제도뿐 아니라 대학의 개편도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전문대 통/폐합을 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이색 과를 신설해 보다 실무적인 활동을 돕는 학교로 변하기를 원했다. 현재 4년제 대학교가 너무 많다는 문제점도 빼놓지 않았다. 전문대에 진학하려는 학생으로서, 여전히 4년제의 ‘명분’에 매달리며 전문대를 등한시하는 당국의 태도가 불편하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수능 그 후‥?



 사실 입시를 온몸으로 겪는 수험생들이라면 수능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나다군에 지원하는 정시 모집에, 수능 이후 치르는 수시 2학기 논술/면접고사, 예체능의 경우 실기시험 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 마음이 꼭 그러하기만 한가. 그동안 고3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려 살았던 그들이 공부만 하며 시간을 보낼 리는 없다. 수험생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대부분 엇비슷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컴퓨터, mp3 등 전자제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그 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상훈 군은 수능 후 계획으로 아르바이트를 첫손에 꼽았다. 수능 후의 해방감에 취해 너무 놀지 말자고 이미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러면서 정시와 수시 2학기를 찬찬히 준비할 예정이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재수를 할 수도 있고, 전문대에 지원할 생각도 있다. 모처럼 찾아온 휴식기간이지만 맘 편히 놀 수만은 없다. 그래도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반에 여학우가 1명밖에 없을 정도로 남초인 상황이라 미팅, 소개팅을 제일 해 보고 싶다고 솔직히 밝혔다. 평소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듣는 상훈 군은 밴드 활동도 로망이라고 했다. 대학등록금과 생활비가 많이 들어 걱정이 되긴 하지만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에 설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