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평론가 이범이 쓴 <이범의 교육특강>에서, 그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로 ‘학교 관료화’의 문제를 꼽으며, ‘한국의 학교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행정 기관일 뿐이다’라고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p’ 발음과 ‘f’ 발음을 구분 못하는 학생이 있더라도 그 학생을 몇 번이고 가르쳐서 ‘p’ 발음과 ‘f’ 발음의 차이를 깨닫도록 학생을 책임지는 일을 한국의 학교는 전혀 맡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내신 시험을 통해 ‘p’, ‘f’ 발음에 대한 문제를 출제해 학생 한 명, 한 명을 ’평가‘해서 우열을 가리는 일이 한국의 학교가 하는 전부이다.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스승’이 되었던 선생님들

1등부터 꼴등까지 모든 학생들을 맞춰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예외적인 일부 교사를 제외한다면, (물론 그렇게 한다는 것도 관료화된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교사들은 주어진 강의와 평가의 업무를 통한 교육만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아무리 학생들에게 완전한 지식적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칠판에 가득한 낙서, 교실에 가득한 풍선, 그리고 케이크, 선물들로 이벤트를 하곤 한다. 이러한 점을 보아 그래도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교사들을 자신들의 ‘스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교사들을 선생님,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의 강의가 완벽했다거나 그들 덕에 나의 성적이 올랐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과의 인간적인 교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을 했을 때 맞기도 하고, 꾸중도 듣고 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상담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스승’이었던 것이다.


▲ 스승의 날 이벤트 (출처 : http://cafe.naver.com/lucky11love/173)

대학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만들기 너무 어려워

고3 때까지만 해도 스승의 날은 그렇게 애증 속에서도 피어난 사제 간의 정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보니, 스승의 날은 이름만 존재할 뿐 평소처럼 수업을 듣는 날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선물 혹은 편지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교수님이 없기 때문이다. 왜일까? 아무래도 대학생들은 교수들에게 학문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스승의 향기를 느낄 수 없나 보다.

중, 고등학교의 교사들이 한 반에 30-40명의 학생들을 놓고 수업한다면, 대학의 교수들은 적게는 60-70명 많게는 200-300명까지 학생들을 앞에 두고 수업을 이끌어 나간다. 게다가 매우 많은 수업 분량을 정해진 1주일 3시간 안에서 해결하려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과제나 시험의 채점도 조교가 하는 것이 다반사.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느니 어떤 점이 부족하니 어떻게 보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느니 하는 피드백(feedback)은 기대할 수도 없다. 단지 교수님들은 정해진 분량을 강의하고, 학생들을 상대 평가 기준에 따라 A, B, C, D, F라는 다섯 그룹 중의 한 그룹 안으로 평가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초, 중, 고에서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전혀 ‘책임지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격적으로’ 교수님에게 매시간 질문도 하고, 교수들을 ‘귀찮게’ 만드는 대학생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보편적인 학생들은 성적표에 적혀 있는 알파벳 한 글자로만 교수님과 커뮤니케이션 할 뿐이다. 이러한 것이 관성이 되어 학생들은 여전히 암기하고 잊어버리기만을 반복하는 기계로 남아 있다.
(관련기사 : 시험 끝난 대학생들, ‘아무 것도 몰라요’ http://goham20.com/127)

심지어 이전의 학교 선생님들과는 달리 교수님들과 대학생들 사이에는 수업시간 이외에 벌어지는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다. 이들은 서로의 개인사를 이야기하거나,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의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받지만 대학생들은 교수님에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 교수님은 왠지 어렵고 먼 분이라는 느낌이 그들의 관념을 지배한다. ‘지도교수’라는 이름으로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이 매우 낮은 몇몇 학과를 제외하면 ‘지도교수’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 대부분의 대학강의는 ‘대형강의’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yyetm?Redirect=Log&logNo=120067303112)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는 많은 지식을 배우고 그의 높은 학식을 존경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에게서 스승의 향기를 발견하지는 못한다. 교수와 학생 상호 간의 노력을 통해서든 혹은 사제가 가까워질 수 있는 시스템적 개선을 통해서든 교수님을 스승 삼고 싶은 마음은 너무 과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