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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에 속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에요


 

주류(主流, Mainstream). [명사]
1. 강의 주되는 큰 흐름.
2. 사상․학술 등의 주된 경향.
3. 조직․단체 등에서 주도권을 가진 다수파.

한 편의 글이 작성되고 있는 이 곳, 시끌벅적한 신촌을 조금만 벗어나 학생들의 집단주거지 쪽으로 오면 있는 작은 카페에는 무선인터넷이 안 잡혀서 한컴 사전에서 ‘주류’를 검색해봤더니 이러한 정의가 나온다. ‘주류’라는 말 자체가 담고 있는 뜻이 기본적으로 워낙 모호한지라 사전을 찾아도 정확하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된 경향, 다수파’라는 말을 통해 ‘주류’의 의미를 수적으로 우세한 편이라고 한정지어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현실에서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꼭 주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워낭소리가 300만 관객 을 동원했다고 해서 독립영화가 주류가 되는 것은 아니며, 대학 공동체 내에 소위 ‘아싸(아웃사이더)’가 ‘인싸(인사이더)’보다 많아도 아싸가 주류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옳음, 정당함’ 등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파가 주류인 것도 아니다. (과학사를 보면 진리가 주류의 생각과 맞지 않아 탄압당하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국민들이 미디어법을 반대했어도, 주류가 결정한 결과 통과되었네. 슬프다.

주류의 정의는 오히려 3번 정의에 있는 ‘주도권을 가진’이라는 말을 통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 절대적 수가 굳이 많은 편이 아니더라도, 해당 분야의 흐름을 끌고 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쪽이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주류로 인식되는 것이다. 즉 주류라는 말은 권력이라는 말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개개인들이 왜 주류에 속하려는 압박감을 갖게 되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바로 주류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일치시킴으로써,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류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주류가 가진 권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주류가 아닌 사람들 위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주류의 생각과 온전히 일치하는 당신의 생각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 주류의 생각에 의해 규정된 ‘옳음’은 정말 당신이 따라가야 할 가치일까?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뭔지 모를 압박감에 의해 선택한 주류와의 동행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가장 간단하게는 주류와의 동일시를 하려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잃을 가능성이 발생한다. 주류에 의해 부정되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추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남성에 대한 이미지, 여성에 대한 이미지 등의 성 역할에 자신을 굳이 맞추려 한다거나, 주변에서 다들 대학생인데 클럽 한 번 안 가봤냐고 물어보는데 자신이 클럽을 안 가봤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지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불상사들이 그렇다.


모든 여성은 소녀시대, 모든 남성은 2PM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

이러한 예들이 단순해보이긴 하지만, 만약 이러한 주류화에 대한 압박감이 좀 더 사회 전체적으로 중요한 사안에서 발생할 경우 문제가 더욱 커진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회사 간부들 앞에서 비위만 맞추고 있다던가, 더 크게는 자신의 판단 하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언론인들이 기존 다른 언론들에 비해 튀지 않는 목소리를 내며 묻어가기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튀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진리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것 또한 주류가 설정해 놓은 잘못된 명제가 아닌지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모두가 YES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우리 사회에서 가능할까? NO를 외치기엔 당장 주류의 보복이 두려울 것 같다.

현상적으로도 주류화에 대한 압박감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대학생들이 다양한 꿈을 꾸고 다양한 삶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대기업, 공기업만을 원하다보니 필요 이상의 경쟁이 발생하고 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좋은 대학 나와서, 돈 많이 주는 곳에 취직하고, 조건 잘 맞춰서 결혼하고, 애들 둘 정도 잘 키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많아진 것이다.

다들 입으로는 ‘남들만큼’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20대80의 사회의 프레임에서 보면 20%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생존 경쟁이고, 현재 우리나라 사회 모습을 보면 3%, 1%의 소수가 되려고 하는 죽음의 레이스이다.

사실 주류화에 대한 압박은 어느 정도 인간 심리상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주류가 되기를 원할 경우, 혹은 주류가 설정한 개념이 잘못된 것일 경우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동일시하고자 하는 ‘주류’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 한 번 정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페르마타
페르마타

청년/저널리즘/문화 연구자. 페르마타 = 그 음의 길이를 2~3배 길게. 마쳐라.

3 Comments
  1. 잘 읽고갑니다.

    2009년 12월 22일 12:25

    정말,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글이엇어요!
    괜찮다면 제가 퍼가도 될련지요?
    당연히 출처는 밝히고!!!

    • 페르마타。

      2009년 12월 22일 13:52

      당연히 퍼가셔도 됩니다 ^^…
      사실 쓰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구, 쓰고 나서도 걱정이 많은 글이었는데
      좋은 반응 보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고함20에 자주 자주 들러주세요^^

  2. 바꾸람

    2014년 3월 1일 10:26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 치지 않으면 살수 없는 현실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글을 이해한다는건 더 비극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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