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경희대를 우연치 않게 방문했을 때 정문 앞에 내걸린 여성용품 공동구매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함께 구매하여 이익을 나누어 갖자는 제안이었다. 여성용품은 매장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공동구매를 하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다. 여성만이 갖는 불편함을 함께 해소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총여(총 여학생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이트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여학생회 홈페이지에 가면 총여학생회를 이렇게 규정한다. “여성주의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구조와 비가시화되어 있는 여성의 경험을 고민하지 않는 현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다. 총여학생회는 학내에 여성주의를 풀어내고 이러한 구조를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여학생들과 함께 소통하며, 여학생 교육권을 쟁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연세대 총여가 모든 총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나 기조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총여는 남성지배주의적인 분위기의 캠퍼스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고 주장한다. 여성을 중심으로 놓고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는 것이다.

총여는 생리휴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여성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화장실 관리와 휴지 및 여성용품 비치 등에 관심을 쏟는다. 또한, 여성들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성 전용 휴게실을 확보하고, 생리통에 도움이 되는 침대까지 마련해 놓는다. 총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여성 취업 캠프나 인턴십, 강연 등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학생들은 ‘총여’가 자신들의 권리까지 침범하는 건 아닐지 의심하기도 한다. 일례로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남학생들이 여학생 휴게실에는 자리가 빈 것을 보고 “왜 남성 전용 휴게실은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불평은 여기까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기에는 남성 우월주의자로 여성들에게 몰매를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총남은 왜 없을까? 총 남학생회를 조직하여 남성의 불편함 또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 총남이 없는 이유는 남성 중심적인 학내 분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대학이 남성 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여학우들이 성적도 잘 받는 것 같고, 지나다니면 기가 센 여학우들이 다수 보이는데 말이다. 수치만으로 모든 걸 뒷받침할 수는 없겠지만, 일례로 대학 내 남녀 비율을 따져보자. 남성 중심적인 학내 분위기를 가진 곳이 많을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학교명 입학자 정원내(D) 정원외 총정원 비율
   
목포해양대학교_본교 658 520 91 43 4 563 95 0.8556231 0.1443769
포항공과대학교_본교 305 254 48 3 0 257 48 0.842622951 0.157377049
성균관대학교_제2캠퍼스 1,922 1,313 365 201 43 1514 408 0.787721124 0.212278876
한국항공대학교_본교 987 696 199 79 13 775 212 0.7852077 0.2147923
한국해양대학교_본교 1,556 1,071 314 147 24 1218 338 0.78277635 0.21722365
한국과학기술원_본교 1,026 703 257 52 14 755 271 0.735867446 0.264132554
한양대학교_본교 3,315 2,041 855 261 158 2302 1013 0.694419306 0.305580694
서울시립대학교_본교 1,925 1,176 598 113 38 1289 636 0.66961039 0.33038961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_본교 2,886 1,687 963 164 72 1851 1035 0.641372141 0.358627859
건국대학교_본교 3,344 1,851 1,202 175 116 2026 1318 0.605861244 0.394138756
연세대학교_본교 4,031 2,092 1,314 316 309 2408 1623 0.59737038 0.40262962

표를 보면, 여대의 존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더 높다. 특히, 공대가 유명하거나 해양대나 항공대, 산업대와 같은 특수 목적의 대학에서 남성의 수는 여성의 2배가 넘기도 한다. 즉, 여성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의미다. 상대적으로 소수자인 여성은 학내에서 약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총여는 필요하다. 학내 구성원의 비율이 남녀 6:4 비율로 존재하는 만큼, 주류의 권력은 남성 중심으로 편재되기 때문이다. 여학생회가 주장하는 대로 권력의 힘은 강력하다. 강자의 위치에서 보는 약자의 권리 주장은 그 무게가 가볍게 측정되기 쉽다.  남성이 생각하는 여학생들의 불편함 또한 그렇게 가볍게 측정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약자의 위치로만 인식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여성은 약자가 아니다. 남성이 보호해줘야만 하는 대상도 아니고, 누구의 도움이나 배려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도움이나 배려가 필요한 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여성은 장애우나 노약자처럼 약자가 아니라 남성과 성(性)이 다른 동등한 위치 선상에 존재한다. 이제 ‘남녀 평등’이 ‘양성 평등’으로 변화한 것처럼, 평등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총여의 정체성은 다시 씌어져야 할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 없이 모든 희생자 혹은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지하거나 약자로만 인지할 것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객관적인 판단보다 주관적인 판단이 앞설 수 있다. 여성성 자체를 약자라고 인식할 것이 아니라 남성과는 다른 부분에 있어서 보호가 필요한 부분은 보호하되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단, 성차별과 성폭력은 다르다. 성폭력을 당하는 주체가 여성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 관계 내에서는 강자와 약자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극단적으로 여성의 입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서로를 남녀라는 이분법이 아닌 서로 다른 특징을 상호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페미니즘과 총여의 정체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려는 총여학생회와 남성의 권리를 존중하려는 총남학생회가 생겨 상호공존할 수 있을 정도의 학내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여성과 남성의 권리가 함께 주창되어도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상호작용하여 좀 더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학내 시설과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총남과 총여 모두 필요없이 총학생회 자체로 통합 관리할 수 있을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