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가 아끼던 동생을 잃었을 때,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슬프십니까?” 그러자,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슬프다. 하지만 죽은 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그가 원했던 것. 그리고 원하는 것.”

<킹콩>과 <반지의 제왕> 시리즈라는 거대한 작품만을 내놓은 피터 잭슨이 5년 만에 새로운 작품을 잉태했다. 2002년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러블리본즈>는 그의 필모그래피들과 다른 듯 닮아있다. 세밀한 감정 표현과 부드럽고 웅장한 영상미, 그리고 원작에 충실한 표현과 오히려 원작을 뛰어넘는 연출력을 보여왔다. 이번 작품도 피터 잭슨의 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러블리본즈>는 월스트리트 저널지가 극찬한 것처럼 ‘피터 잭슨 감독의 놀라운 성취’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남겨진 자들의 과제. 복수가 아닌 극복
14세의 소녀. 수지가 돌연 살해된다. 첫사랑과의 데이트를 눈앞에 두고. 영화는 초반 20분이 지나기도 전에 본론으로 들어간다. 수지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말을 건다. “내 이름은 수지. 성은 샐먼. 연어와 같다. 1973년. 나는 살해되었다.”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가족들의 슬픔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치닫는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통증이 흘러나와 가슴이 먹먹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정말 떠나버릴 것만 같아 인정할 수도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갑작스럽게 나타나 인사라도 할 것 같지만, 임창정의 ‘그때 또다시’의 가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해는 뜨고 또 진다.

이 영화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권선징악이라는 진부한 주제로 범인 색출과 복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살해당한 수지와 남겨진 가족들이 어떻게 견뎌내는가에 초점을 둔다. 복수보다는 극복을 강조한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며 말없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 죽은 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영화는 조용히 수지의 마음을 가족에게 전한다.


살해당한 14세의 아이. 그녀의 성장.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는 수지에게 있다. 수지가 살해당한 이후에 천국도 아닌 이승과 저승의 사이(in-between)에서 겪는 수지의 경험과 시간들은 수지를 성장시킨다. 분노로 가득 차 범인을 향해 내뿜는 살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간다. 복수라는 개인적인 욕망보다는 자신을 잊고 가족이 행복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본인의 복수를 위해 이성을 잃어가는 가족을 걱정하기 시작하고, 성장한 여동생 린지의 첫키스를 보며 흘리는 언니의 눈물.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천국보다 아름다운’ 수지의 세계

1998년, 그 시기 전성기를 맞았던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을 맡아 열연한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란 영화가 있다. 아카데미 상을 휩쓸기도 했던 이 영화는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나만의 최고의 영화이다.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던 사춘기 시절에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어 빌려봤다가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여느 일상처럼 아들 둘과 함께 출근하던 크리스(로빈 윌리암스)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 셋을 한꺼번에 잃은 아내 애니는 결국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다. 천국에서 과거를 잊고 지내던 크리스는 애니의 소식을 알게 되고, 아내를 찾아 떠나기 시작한다.

크리스의 여정에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 사이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 이승을 떠난 영혼들이 각자의 삶에 의해 나뉘어져 영혼이 소멸되기 전까지 또다른 삶을 살아간다. 천국에서는 행복하고 따뜻한 삶을, 그리고 지옥은 끝없는 고통만이. 그러나 애니가 있는 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었다. 그 곳은 삶을 자기의지로 끊은 자만이 갈 수 있는 곳. 또 다른 곳이다.

▲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한 장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영상미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천국과 지옥의 묘사를 포함하여 하늘의 웅장함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사 하나하나의 움직임부터 꽃의 움직임까지 물감을 캔버스에 펼쳐 놓은 것처럼 부드럽게 스며든다. 이에 비해 <러블리본즈>는 천국이나 지옥같은 공통의 개념이 아닌 수지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환상들로만 꾸며진 장소가 펼쳐진다. 수지 고유의 세상이다. 피터 잭슨의 터치는 감각적이다. 빠알간 하늘과 광활한 바다, 수지의 슬픔과 공포이 투영된 장소들까지.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 없다.


문학과 영화의 경계를 뛰어넘다

<러블리본즈>의 또다른 강점은 탁월한 은유와 상징이다. 한 권의 소설을 읽는듯한 기분을 준다. 원작의 작품성이 빼어났던 만큼 영화의 스토리텔링도 탄탄하다. 좋은 이야기와 발달된 CG의 결합은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이미지들이 현실처럼 관객들을 휘감는다. 수지의 감정변화와 사건의 전개에 따른 수지의 세계는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문학적 표현이 영화 속에 그대로 녹아든다. 아름다운 수사가 가득한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살인범의 심리와 가족들의 추적 과정은 마치 스릴러와 같이 관객들의 손에 땀이 나게 만든다. 피터 잭슨은 이 긴장감 사이사이에 절묘하게 슬픔과 감동을 버무린다.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다. 하지만 가족드라마도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의 요소가 많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다. 예전에 TV에서 했던 ‘용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피해가족들의 삶이 철저히 무너지고 파괴되어 있는데 한 사람이 범죄자를 용서하겠다고 나선다. 용서. 쉽지 않은 말이다. 사실 권하기도 쉽지 않다. 단지, 극복하기를 극복해내기를 이 영화처럼 조용히 바랄 뿐이다. 그 슬픈 심연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기를. 그것이 우리를 떠난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