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의 이틀, 짧지만 강렬한 기간.








 작가 장정일은 수험생시절,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이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패러디한 시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내가 그 때 받은 느낌은 응어리진 금속덩어리가 분쇄되는 느낌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받은 느낌 또한 머리가 반쪽으로 갈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함축이 생명인 시에서조차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소설에서도 역시나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툭툭 내뱉고 있었다. 책 제목 ‘구월의 이틀’ 은 구월의 이틀만 의미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에서 구월의 이틀과 같은 터닝 포인트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러나 그 전환점이 단 한번일 수는 없다. 물론 그 시기조차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구월의 이틀의 설정상,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구월의 이틀 속편에서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금과 은을 다루고 있지 않을까. 하고 슬며시 추측해 본다.







                      ▲ 소설에 수록된 ‘구월의 이틀’ 전문(류시화 저).





동성애코드, 좌파와 우파, 지역주의 세 요소를 잘 버무린 작품.





 이 작품에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역주의를 광주 출신인 금과 부산 출신인 은이라는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둘은 경남, 호남으로 나누어 지역주의를 내세우는 소모적인 사회와 달리 급속도로 친밀한 사이가 된다. 휴게소, 교통사고 현장, 구월의 이틀이 낭독된 강의실. 둘을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필력은 훌륭했다. 금과 은, 두 사람은 자란 환경도 성향도 달랐다. 금에게는 시민운동을 하다가 청와대 보좌관이 된 아버지가 있었고, 정치가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반면, 은에게는 매번 사업에 실패하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있었고, 화랑을 배회했고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둘은 친구에서 시작하여,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 사랑은 이 사회에서 당당하지 못한 동성애였다. 은은 작은 아버지로부터 보수 우익의 우두머리인 거북선생을 소개받고 우익의 심장부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거북선생은 5%의 지식으로 나머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상대편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면 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현 사회의 좌파와 우파의 대립을 일부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우익(작은 아버지, 거북선생, 은 )은 동성애를 원하지만 ‘강한 것이 아름답다.’ 라는 보수주의 논리 하에 자신의 성향을 사회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특이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세 가지 요소는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기묘하게 엮여서 소설을 지탱하고 있다.







섬광처럼 사라져버린 신비의 소녀, 팜므파탈의 40대 반고경, 감추기 위한 투명망토 지혜.





금과 은 사이에는 크게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은이 화랑을 전전하며 첫 눈에 반한 소녀는 처음에 등장하고 곧 사라진다. 난 신비의 소녀가 뒷부분에 언급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소설 전체만으로 본다면 역할이 미미해서 의외였다. 화랑에서 불쑥 튀어나온 반고경은 금을 끊임없이 유혹하다가 결국 사라진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은의 시를 좋아했던 지혜 역시 불쑥 나타나 은에게 작업을 건다.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건전한 ‘우익 청년 탄생기’ 속에서 유일하게 장수한 인물은 지혜뿐이다. 반짝 등장하고 사라지는 여성들은 동성애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였을까? 동성애를 소설의 일부에 끌어들인 것은 좌익, 우익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꺼낸 장치인 것일까?







풀리지 않는 의문, 실험적인 시도.



 의문점이 남지만 해결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작가의 속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우익청년기는 20대의 구월의 이틀을 기점으로 남은 기간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의문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이들의 행보가 정말 기대된다. 동성애를 기반으로 한 금과 은의 연대는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신비녀가 나타나 건전한 우익(영라이트)을 지향하는 은을 뉴라이트화시킬 것인가. 금과 은은 과연 어떤 구월의 이틀을 맞이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