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이 두 글자는 꽤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도 쉽게 오르내리는 무척 일상적인 말이다. 하루 종일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기계처럼 사는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오늘 먹을 점심을 떠올리는 것도 일종의 ‘생각’에 포함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태도나 가치관, 삶 전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모습은 왠지 찾기 어려운 듯싶다. 단순히 어떤 대학교에 들어가고 혹은 어떤 직업을 갖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말고, 본인의 행동에서 정도에 어긋난 부분이 있었는지, 남들에 비추어 볼 때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었는지 등 보다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하는 ‘생각’은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니 그보다 더 깊은 생각인 ‘사색’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에 치여 몹시 단순한 생각만을 되풀이하며 살던 중, 대단히 수준 높은 사고를 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는 이를 알게 되었다. 오랜 친구와도 같은 책 속에서 만난 그는 바로 신영복이었다. 신영복은 여러 가지 수식어로 설명할 수 있는 유명인사다. 성공회대 석좌교수라든가,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등 책 여러 권을 낸 저자라든가, 우리가 흔들고 쪼개고 넘기는 ‘처음처럼’이란 글씨를 쓴 주인공 등등. 그러나 신영복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정작 다른 데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어느덧 52쇄 째에 접어들며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으로 그의 이름 석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박히게 되었다.





 400쪽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의 책이 혹시나 읽기에 버겁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책이 술술 읽힐 때에는 내용이 쉬워 쏙쏙 읽히는 경우와, 그 이야기가 주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매료되는 경우로 나뉘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두 번째였다. 물론 편지라서 읽기 수월했던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신영복은 이 책에서 학자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냈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어쭙잖은 뽐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어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치지 않고 공부하려는 자세가 향기처럼 배어 있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어머니, 형, 형수님, 동생, 계수님 등 가족들에게 보내는 그의 짧거나 긴 편지에는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게으른 머리와 편협한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다양한 사연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구회 사건’이었다. 편지 내용이 아니라 나중에 추가된 글인 듯했는데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눈망울이 선명하게 그려져 두근두근하며 읽었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여년이나 옥살이를 한 그이기에 ‘~회’로 끝나는 모임이 혹시 운동이나 혁명을 주도하려 한 불순단체(?)는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면 이 글부터 찾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글이든지 글 안에는 쓴 사람의 모습이 반영되게 마련이다. 책 속 내용만으로 얄팍하게 알게 된 신영복은 굉장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죄가 뚜렷하지도 않았고, 억울하게 정치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탓을 하는 불평과 불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보다 어느 순간 해이해질지도 모를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데 힘을 쏟았고, 혹여 주변 사람들에게 경솔하게 굴지는 않았을까 늘 조심하였다. 수감생활 중에도 책을 읽으며 생각거리를 찾았고 끊임없이 사색하고 또 사색하였다. ‘내 몸 하나 잘 건사하자’는 생각 대신, ‘나는 바르게 살고 있는가?’하는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도덕성, 가치관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높은 기준치를 가지고 있고 무리를 해서라도 그것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는 편인데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있어 그저 ‘와-’하고 감탄만 나오는 존경스러운 이가 바로 신영복이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보통 사람들과 달리, 다른 이에게서는 좋은 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채찍질을 아끼지 않는 그의 성향은 책 전반에 묻어 있다. ‘단상 메모’라는 짤막한 글이 아직까지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도 그 속에 신영복이라는 사람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사고를 반복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거리를 찾는 것이 독서의 의의라고 밝힌 그의 말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더불어 세상을 ‘실천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적극적인 삶의 태도도, 현실을 핑계 삼아 금세 나약해지고 마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남들이 얼마만큼 나를 빠르게 뒤쫓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앞서 있는지 살펴보기에도 바쁜데 ‘사색하며 살자’니 전혀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 무한 질주하는 인생도 그 나름의 매력과 의미가 있겠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느림의 미학에 눈을 뜨게 된다. 눈치 보며 약삭빠르게 사는 것보다, 아프고 괴롭더라도 부족한 나를 반성하고 나와 세상에 대한 진지한 질문의 답을 찾는 사색에 빠져드는 것이 더 좋은 건 아직 쓰디쓴 현실을 맛보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되도록 오랫동안 이렇게 살고 싶다. ‘생각은 하고 사십니까?’는 스스로의 물음을 비수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쩔쩔매고 싶지도 않은 까닭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