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담(2007)의 시나리오를 쓰신 박진성 감독님의 데뷔작 마녀의 관(3.4 개봉)은 상당히 독특한 영화이다. 고골의 원작 VIY 를 각색한 것으로 기존의 공포영화와는 색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장편영화가 아닌 3막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영화라 골라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영화를 통해 추측해 본 감독님은 공포영화처럼 음습한 분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면서 감독님에 대한 내 추측은 빗나간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터뷰를 통해 감독님의 소신을 알 수 있었고, 영화 ‘마녀의 관’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박진성 감독님과의 인터뷰 세계 속으로 함께 떠나 보자.








               ▲  마녀의 관 박진성 감독님

1. ‘마녀의 관’ 이 저예산영화라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들었나요? 저예산 영화라서 힘든 점은 없었어요?



1억이 들었어요. 영화의 미숙한 점이나 단점이 있는데 예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미숙해서 그런 것이지, 예산이 적다고 제약이 생기고 관객이 영화 감상을 하는 데에 있어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산이 적으면 촬영할 수 있는 횟수가 적을 수밖에 없어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상황 순서대로 촬영을 해야 합니다. 예산이 적을 경우, 카메라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30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쪽 방향에서 찍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찍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연기자의 연기 순서가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연기자와 감독 모두 혼란스러웠죠.



2. 마녀의 관은 고골의 작품 VIY 를 각색하여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제일 처음에는 어떤 이미지나 모티브에서 각색을 결심한 것인가요?



고골의 VIY 에는 예배당에서 관 속에 누워 있는 시체와 함께 단둘이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굉장히 무섭습니다. 그 상황은 나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상식적으로 시체가 살아나서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혹시 어떡하나.. 무서운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그 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는 그런 일이 없고 실제로는 그런 일이 아마 사람이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이겠죠.


괴기전, 귀신의 집. 그것이 왜 무서울까요? 뻔한 겁니다. 인형도 막 있고.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거죠. CCTV 카메라 설치해 놓고 밖에서 보면 웃길 거 아닙니까. 당사자는 빨리 나가고 싶을 정도로 미치고 싶은 거죠. 돈 내고 들어왔는데 왜 공포영화를 보겠습니까. 공포영화 좋아하세요? 공포영화의 묘미가 뭐인 것 같아요? 위험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잖아요. 관에서 저 여자가 나올 리는 없는데 나오면 어떡하나. 가끔 엘리베이터를 타면 이것이 멈추면 어떡하나. 절대로 일어날 일이 없는 것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면 무서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3. 감독님은 공포영화 좋아하세요? 어떤 류의 공포영화를 좋아하세요?



네. 전 좋아합니다. 밤에 혼자서 컴퓨터가 되었건, 공포영화 틀어놓고 볼 수 있는 사람 몇 없어요. 저도 못해요. 그렇지만 극장에서는 나보다 더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고, 공포영화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러 오잖아요. 전 개봉하는 공포영화 다 봅니다. 링, 주온 이런 것도 좋아하고, 제일 좋아하는 건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굉장히 무섭고 재밌잖아요. 김지운 감독님 영화도 좋아하고요, 박쥐는 호러영화는 아니지만 굉장히 좋아하고요.



4.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공포의 본질’이라는 것이 1막의 감독이 하는 그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일 견디기 힘든 공포는 서스펜스 쪽입니다. (갑자기 컵을 갑자기 확 치셔서 필자는 순간, 놀랬다.) 동물들은 공포를 느끼지 못해요. 기억력과 추리력이 없어서. 인간은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하고 기대를 하고 예측을 하잖아요. 그게 무서운 거죠. 아무도 없는 산에 일행하고 떨어진다. 그때부터 무서운 겁니다. 뭐가 무서운 건지는 모르죠. 들짐승이 나타날 수도 있고, 이상한 아저씨가 나타날 수 있죠.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을 상상하게 되잖아요. 막상 아저씨가 나타나면 놀라지만, 어떻게 대처하면 되죠. 정체 모를 것에 대한 것은 대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1막에서의 그것은 갑자기 멀쩡하던 남자가 테이블 위로 기어오르면 대처하기 곤란합니다. 펜을 꺼내서 눈을 찌르려하는데.. 이것이 연기인가 실제로 찍으려고 그러는가. 하는 거죠.




5. 1막의 감독은 감독님의 분신입니까?



전 그런 류의 사람이 싫어요. 뭐 그렇게 극적으로 행동해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안 되려고 노력해요. 그런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영화처럼 과장된 사람은 없겠지만 제멋대로인 사람들 있잖아요. 심정적으로 이해는 되요. 힘들겠지. 예술을 하려고 하면, 뭐 그렇게 티를 낼까요. 너무 이기적입니다. 이 사람이 특정 영화에서 감독직을 맡고 있으니까 자기는 이래도 된다. 완장 채워주면 막 행동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혼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1막의 감독은 폭력적인 사람입니다. (웃음) 그런 교훈을 주죠.



6. 옴니버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죠?



주위에서도 옴니버스 영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웃음)저도 좀 후회가 됩니다. 이 영화 시작하면서 저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한 어떤 것을 해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내신 세금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으니 저의 개인적인 욕망으로 삼지는 말아야 겠다고 저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옴니버스는 굉장히 무리한 기획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복잡하고 난해해지고, 개봉이 되면 악성댓글 달릴 가능성도 큽니다. 그렇더라도 애초에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과감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서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웃음)지금 와서 좀 후회가 되는데…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영화의 근원적인 형태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많이 미숙합니다. 저는 미숙한 것을 패기로 봐 달라고 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은 아닌데요. 그런 종류의 부끄러움은 없이,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생각입니다.



7. 전 1막과 3막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1막이나 3막을 쓰시면서 길게 시나리오를 길게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어요?



아이디어, 설정이 떠오르잖아요. 만약 이렇다면 어떨까. 1막의 경우 아이디어나 설정은 무엇이겠습니까. 약간 상태가 안 좋은 영화 감독이 있는데 현실과 영화를 혼동하기 시작한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장편영화를 찍을 수는 없습니다. 장편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설정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소를 집어넣어보자. 딜레마를 줘 볼까. 하면 좋은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습니다. 설정 외에 실제로 쓰시는 분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회의를 거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한 불만, 변명일 수 있겠고 뭐가 되든지 ‘어디든 얘기를 해야지 답답해서 못 살겠네.’ 하는 절박한 무언가가 있어야 장편영화가 됩니다. 현재 1막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흥미로운 것이 없습니다. 30분의 이야기는 되지만 보는 사람이 감정이입할 만한 요소는 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어떻게,,어떻게.. 저 사람 큰일 나려고고 그러나.. ’ 하며 감정이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1막,3막 이야기를 장편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저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8. 1막에서 등장인물 대사 중에 ‘우리나라 공포영화에는 반전 강박증이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감독님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 공포영화에는 반전 강박증이 있다.’ 이 말을 영화 기자가 쓴 글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반전이 있는 영화가 없는 영화보다 비용 대비 만족도가 큽니다. 반드시 예측을 못해야 좋은 반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대충 반전이 있겠지 하고 영화를 봅니다. 영화 시작한지 10분 되니까 이런 반전 되면 어떡하나.. 설마 했던 그 반전이 나오는 경우 있잖아요. 감독만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감독은 너무나도 훌륭한 반전이라고 생각하면 민망하고 즉시 화가 나죠. 우릴 어떻게 보고 말이죠. 억지로 만든 반전일 경우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반전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잘 사용해야 합니다. 샤이닝같이 반전 없는 영화도 있지 않습니까.



9. 2막에서 구마경(악마를 물리치는 기도문)을 외우는 씬이 반복적으로 나오잖아요. 무슨 의미죠?



2막의 주인공 호마라는 학생은 그렇게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아닙니다. 난봉꾼입니다. 갑자기 위험하게 되면 하느님 예찬하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대입 수능을 봐야하는데 내가 붙고 저 사람 떨어지게 해 주십쇼 하는 ,정도의 신앙심. 저는 교인이 아니지만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가 밀려있습니다. 호마의 경우 살고 싶으니깐 절실하긴 해요.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구마경을 꺼내서 염불같이 의지하는 겁니다. 아마 호마가 살고 싶었으면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 솔직히 말해서 제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시고 그렇게까지 할 것 없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진심으로 뉘우칠 테니 한번만 봐 주십시오. 라는 식으로 간절해야 해요. 호마는 반성의 기미가 없어요. 이걸 읽으면 가겠지 하는 무속신앙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일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죠.



10. 전 호마가 구마경을 꺼내서 반복적으로 외우는 장면을 보면서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 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저 역시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룬다는 것입니다. 한심한 인간들.. 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이유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전도연의 속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 이해할 뿐만 아니라 몹시 안타깝습니다.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무조건 동정하고 이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찬찬히 보는 여유있는 사회라면 바라보려고 하겠죠. 이게 무슨 일인가. 이 환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는 조직화된 종교를 믿지 않고 증오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틀린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내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니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셨죠. (웃음) 안타까운 건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는 거죠.



11.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한 2막은 시각적 다양성을 위한 실험을 위해 3D 입체 영화로 촬영되었다고 들었어요. 최근 3D 가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 3D로 개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아쉬움이 있죠. 제 책임입니다. 호마가 예배당에 들어가는 씬부터 2막이 끝나는 씬까지 3D 안경을 쓰고 관람하는 것이 제대로 관람하는 거겠죠. 입체가 아닌 상태로 개봉되는 것은 미완성 형태로 개봉되는 것입니다. 속상하기 이전에 죄송해요. 국민 세금을 이용해서 하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잖아요. 죄송하고 속상해 죽겠죠. 그런데 만들어지고 나서 2-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개봉에 이르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많이 지쳤어요. 이것을 3D 로 개봉하기 위해 또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는 버거워요. 3D 촬영을 해 본 스텝이 있으니 그 양반들이 앞으로 지평을 넓히겠죠.




▲  영화 <마녀의 관> 포스터




12. 영화 만들면서 가장 고민하셨던 것은?



첫 장편이라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가 전달되어야 하고 연기자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연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지금 제가 샤이닝을 찍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스탠리 큐브릭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어줍지 않게 흉내 내면 헤매게 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전달해야 할 최소한의 영화정보는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솔직한 마음이죠. 결과적으로는 그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아서 참 안타깝죠.



13. 첫 영화 만든 소감과 만족도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아쉽네.. 하는 그런 부분을 뺀다면,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자들이 연기하고 그걸 편집하고 개봉하고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서 관심 혹은 적개심을 가지고 인터뷰를 하러 오고 나중에 누군가가 해석하고 평을 쓰고 이 일련의 과정이 특수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만들기 경험이라는 것이 저한테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 만족도라는 것이 저한테는 깜짝 놀랄 정도로 행복한 일이예요. 이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 촬영이 제일 즐겁고, 편집이 제일 힘들고, 편집실에서는 각종 후회와 회한이 밀려오니까 말이죠. 촬영할 때는 모릅니다. 결과물에 대해서는 아.. 어떡해 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저는 만족해요.


감독님 스텝들한테도 고맙습니다. 저는 스텝들 일하기 힘든 타입입니다. 말은 조곤조곤하지만, 엄합니다. 만약 예술 감독이라 쳐요, 예산도 없고 성의를 보아서 어지간 하면 아, 이런 건 좋은데 이런 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예요. 아마 다들 힘들었을 겁니다. 저는 우리 스텝들을 예술가로 존중합니다. 에너지 넘치는 예술가들이고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사람들 존중하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이런 게 낭만 아닌가. 하는 이러한 것은 존중이 아니라 경멸이죠. 피눈물이 나도 할 건 해야 합니다.




14. 감독이 언제 제일 힘들어요?



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몇몇 유명 감독님들 제외하고, 감독은 직업일 수는 없겠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정상적으로 직업군에 속할 수 없어요. (웃음) 결혼정보회사같은 곳에는 영화하는 사람들은 분류 자체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다 힘든 부분 있잖아요. 나쁘게 표현하면 어리광이죠. 모르고 들어 온 게 아니라 알고 들어 온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각오를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중국집 주방이 더운 건 안 들어가 봐도 알 수 있어요. 덥다고 불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안에서 덥다고 에어컨을 설치하라는 말은 하면 안 됩니다. 다 더워요. 옆에서 덥다 그러면 짜증나거든요. 같이 힘든 사람들 진을 빼서는 안 됩니다.



15. 배우들 중에는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쓰시거나 영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혼란 겪을 경우가 있으세요?



저는 그렇지는 않아요. 전 이걸 직업으로 생각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해요. 아침에 작업실에 훈련해서 시간표에 따라 일하고 저녁 7시가 되면 퇴근해서 집에서 애기랑 놀아주고 규칙적으로 일하는 편이예요. 직업입니다. 최소한 다른 직업인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해요. 그래서 그런 간극이 생길 틈이 없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전 에드가 앨런 포 라는 인물을 상당히 좋아해요. 에드가 앨런 포가 자신의 창작에 대해 써 놓은 것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요. 이 사람이 정신 질환도 있고 천재고 보니까 사람들은 이 사람이 미친 듯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어요. ‘애너밸 리’ 라는 시도 영화로 치면 기획영화예요. 이 사람은 그 당시에 요구될 법할 그런 내용을 어떠한 톤과 매너로 써야겠다. 라는 것을 기획했어요. 굉장히 수학적인 정밀성이었다고 자신이 얘기해요. 계산적으로 시를 쓰고 수없이 고치고 규칙적으로 작업하는 겁니다.


만약에 에드가 앨런 포 같은 천재가 그랬다면 나같은 사람은 10배나 성실하게 해야 이 사람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언저리라도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재능이 아니라 성실함에 의지하는 편입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영화, 예술 감독에 대한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성실한 직업인으로서 매일 규칙적으로 쓰고 읽고 직업인으로 생각하는 편이라 일상에 혼란을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16. 감독님께서는 영화, 연극, 음악이라는 매체에 일종의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연극/음악은 무엇인가요?



영화의 경우는 공포영화가 꽤 있어요,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감독님 작품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이 분들이 앞 세대 감독이 아니라 동시대 감독. 영화 작가가 동시대 본받고 싶은 분이 여러 분 계신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도 이러한 지는 모르겠어요. 굉장한 일이라 생각해요. 외국 영화는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지만 사실은 저한테 다 무의미한 거죠. 저는 한국영화를 만들 사람이고 동시대에 한국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저한테는 중요해요. 첫째로 세분들, 이분들의 영화는 최신작으로 올수록 점점 더 재밌습니다. 세분 다 스펙터클한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 아니잖아요.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그 진폭이 굉장히 스펙터클해요. 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들이 타이타닉, 글라디에이터, 그런 류의 영화들 있죠. 전 이런 류의 영화들을 보기에 괴롭습니다. 그 안의 인간들은 아메바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감정의 진폭들이 미미해요. 이런 걸 보고 있으면 화가 나요. 인류가 얼마나 진화했는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연극, 음악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입니다. 그런데 연극을 이루어내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은 있어요. 제 영화에서 그러한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안 팔리는 사람의 애환보다는 예를 들어 3막의 뮤지션 있잖아요. 단란주점에서 싸구려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죠. 이 사람이 싸구려음악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며 막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아요. 부족하고 저속한 음악이지만 즐겁게 연주합니다. 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깡소주 마시고 새우깡 먹고 하는 장면은 정확하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비루하게 묘사하는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지. 하고 얘기하지 말란 말입니다. 힘들지 않아요. 괜히 자기 잘난 척 어루만지는 척 하면서, 너 이런 싼 음악하느라고 힘들지.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런 식의 묘사를 볼 때는 굉장히 화가 나요. 그런 식의 동정적이거나 낭만적인 묘사는 실례이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이 사람들 입을 빌려서 얘기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혼내줄 거예요.



17. 차기작은 어떤 작품 생각하고 계시나요?



미스테리 영화예요. 3월에 캐스팅하려하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피터팬을 쓴 작가의 원작을 시나리오로 만든 겁니다. 마녀의 관 하고는 다른 영화입니다. (웃음) 같아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영화 만드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영화를 통해 만나는 인연을 뜻깊게 생각하는 박진성 감독님. 감독님 특유의 말투와 겸손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역시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감독님이 한국 영화에 한 획을 그었듯이, 한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영화의 무한한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