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이후의 첫 재회라는 두 주인공의 만남과 그리도 화끈하다는 정사씬을 내세우며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영화 <비밀애>. 감정선이 복잡한 대개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상업성과 작품성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 영화 완전 좋다는 극찬도 없고 쓰레기 막장이라고 할 만큼의 혹평도 없지만 아쉽다. 무언가가 아쉬운 것은 분명하다.




아쉬움의 정체

영화는 한 여자가 쌍둥이 형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거기에 남편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혼수상태이다, 쌍둥이 동생은 남편과 같은 외모의 다른 매력으로 적극적으로 접근한다는 식의 살이 붙었다. 어떻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는가, 형과 동생 모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기적이 있을 있는가 등등의 억지 설정이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이니까라는 무던한 마음으로 넘길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촌스러운 설정은 주인공 연이(윤진서)의 엄마(임예진)가 신부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관객은 기운 빠지는 한숨을 흘리며 영화가 신파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게 된다. 감독은 관객의 우려를 기꺼이 현실로 만들어 “신부님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신부님인 걸 어떡해.” 라는 클리셰를 넘어선 신파의 정점을 찍는다.

더군다나 툭툭 끊기는 영화의 흐름은 관객의 집중에 충분히 방해가 된다. 맥 끊는 연출에 방해받은 이는 관객뿐 만이 아닌 듯싶다. 늘 발전하는 연기로 차기작이 기대되는 배우 윤진서는 역할의 몰입에 한발 정도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영화 관람 후 알게 된 사실은 촬영 도중 감독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각본을 쓴 권지연 감독이 맡았던 이 영화는 후에 류훈 감독으로 바뀌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윤진서는 감독의 교체로 두 명의 ‘연이’를 연기하는 것 같았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여전히 발음의 부정확함을 이겨내지 못한 점도 아쉽다. 그러나 그의 담백하면서도 소금기 없는 연기는 아쉬움에 얹어진 만족감으로 배우 윤진서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게 한다.

1인 2역을 맡은 유지태는 놀라울 만큼의 명연기를 선보인 것은 아니나 그가 가진 배우로서의 기본기를 여지없이 발휘했다. 정확한 발음과 발성은 난청이 있는 감상자에게도 무리가 없을 만큼 또렷이 들렸다. 전혀 다른 성격의 쌍둥이 연기는 여유로운 금요일 밤에 보면 흠잡을 데 없고 만사가 피곤한 월요일 아침에 보면 몇몇 어색한 씬들이 보이는 정도이다.





금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2개월 만에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간호하는 병원생활. 그 와중에 번역 일까지 해가며 시들어가는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워있는 남편만을 바라보며 눈물과 한숨으로 보내는 일상은 혼수상태의 남편처럼 거의 죽은 삶이나 다름없었다. 제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라도 좋으니 나를 이 상황에서 꺼내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때 만난 이가 남편과 같은 외모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걷고 말하며 나를 위로하고 아껴주는 상황에서 똑같이 생긴 사람이니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것이 금기일지라도 남편의 간호인으로서 삶을 놓을 수도 없기에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연이의 필사적인 욕망이 아니었을까.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담아내려 한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히 괜찮은 멜로 영화다. 더군다나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정사씬은 노출 수위를 막론하고 박수 받을 만하다. 다만 개연성 부족과 흐름이 끊긴 연출이 역량 부족인지 의도적인 시도인지는 분간할 수 없으나 관객은 내내 연이나 진우 혹은 진호로서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에서 몇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화의 맥을 찾아 허우적거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신뢰할 만한 배우들을 믿고 조금은 관대한 마음으로 위험한 사랑을 지켜볼 것인가, 별 다섯 개를 채우지 못한 평점에 입소문 좋은 다른 영화를 선택할 것인가는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