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을지도 모르나 이 글은 사실에 근거하였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이 글을 읽고 뜨끔해 할 당신, 그래 바로 당신 얘기라구요!)

  “이 언니 진짜 괜찮은 언니거든, 언니 주변에 있는 남자들 죄다 훈남이야. 진짜 내가 하고 싶긴 한데 너도 알잖아. 나 소개팅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자리 너무 부담되서 너한테 주는 거니까 꼭 잘해봐!”

  이랬다. 소개팅에서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건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지만 ‘혹시나’, ‘이번만은’ 이라는 기대에 응하고야 말았다. 대체 소개팅은 신촌과 강남역이 아니면 큰일이 나는 건지 강남역 P커피숍 7시라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준비하기 시작했다. 광고에서 송혜교가 그리도 쉽고 간단 하다던 투명메이크업은 송혜교의 얼굴이 아닌 내겐 바탕화장만 한 시간, 포인트 메이크업까지는 두 시간이었다. 영화 한 편은 봤을 법한 시간 동안 얼굴에 그림을 그려가며 어찌 소개팅남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금요일 밤 친구들과의 약속이었다면 선택했을 미니드레스와 클러치 백 대신 얌전하고 단아한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골라 입었다. 소개팅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내 철칙은 그에 대한 기대를 이천칠백 배 쯤 부풀려 놓았다.

 또각또각. 커피숍 2층으로 올라가니 언니커플과 친구얼굴이 보였고 소개팅남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런데, 친구의 저 맑지 못한 표정은 무엇인가. 눈은 울고 입만 웃고 있던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손짓했다. 불안하다. 남자의 외모에 대한 기준이 거의 없다 싶을 만큼 따지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얼굴이 싫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동안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나은 것 같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색함을 덜어주려 얼마간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소개팅남과 나는 저녁식사 자리로 옮겼다. 

 이때부터 사건은 시작되었으니 소개팅에 대한 환상을 잃지 않고 싶은 이들이라면 읽지 않는 편이 좋겠다. 

 어딜 가도 붐빌 금요일 저녁 강남역에서 처음 보는 남녀가 갈만한 식당은 몇 개쯤 될까. 처음 두 번 정도는 메뉴를 정하지 못해서 또 두 번 정도는 자리 있는 곳이 없어서 강남역 6번 출구의 뒷길을 왕복하길 여러 차례. 그가 저기라도 괜찮겠냐며 간 곳은 일본식 식사메뉴가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었다. 나쁘지 않다. 자리에 앉아 오가는 대화 속에서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이름과 나이. 메뉴를 고르는 것을 보면 음식 취향도 알 수 있겠지.
10여 분간 고심한 끝에 그가 고른 메뉴는 ‘어린이세트’. ‘어린이의 취향에 맞춰 준비한 000만의 고로케와 돈까스!’. 정말 고로케와 돈까스를 좋아하는 사람일거야……. 그럴 수 있어…….
성인 2명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어린이세트와 알밥이 서빙되고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는 내 학교와 전공을 물어가며 자기 아는 사람 중에 그 업계에서 일하는 사촌형이 있고 무척이나 잘나간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으며 그들과 어떻게 알게 되었고 무엇을 했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 나보다 더한 호기심이 있는 것인지 내 전공에 대한 질문만 퍼부어서 이 사람이 혹시 소개팅남의 탈을 쓴 교수님이 아닐까 싶었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식사시간 동안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어린이 취향의 고로케와 돈까스를 좋아할 지도 모르며 잘나가는 사촌형을 둔 복학생이라는 점이었다.

 저녁 식사 후 그는 자기가 종종 찾는 칵테일 바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그가 썩 마음에 들지도 싫지도 않았기에 조금 더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다. 분위기도, 음악도 정말 좋아서 친구와 자주 찾는다기에 눈을 반짝이며 따라갔다. 문을 연 순간, 돌아 나왔어야 했다. 마냥 어두컴컴한 실내에 열과 횡을 맞춘 소파와 테이블은 나이트클럽과 다름없었고 제복을 차려입은 여성 직원은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기 진짜 괜찮죠?”

“아, 네에……. 하하하하하하 ^ ^;.”

 나는 대답과 동시에 고개를 110도 돌려 주선한 친구의 이름을 되 뇌이며 넌 죽었어를 조용히 읊조렸다. 웨이터복 까지 갖춰 입은 직원이 메뉴를 가져왔고 그는 맥주 한 병을 나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직원은 주말에는 안주를 꼭 주문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며칠 전에 친구랑 와서 맥주만 시켰는데 왜 안주를 주문해야 해요?”

 “아,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주말에는 안주를 주문하셔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며칠 전에 왔을 때만 해도 그런 말이 없었는데 왜 이제 와서 안주를 주문하라고 하냐구요!”

 “손님, 아무래도 그 날은 평일이셨던 것 같은데요. 저희들 방침이라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말이 되요? 지금 사람 무시해요?!”

 소개팅남의 언성은 높아졌고 주위 손님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일단 직원에게 잠시 후 주문하겠다고 하고 소개팅남을 진정시켰다. 

 “저도 배불러서 안주는 못 먹겠는데, 괜찮으시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어때요?”

 “정말 여기 괜찮은 데라고 생각해서 오려고 한 건데, 사람 무시하는 거야 뭐야?! 쳇.”

 그리하여 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은 근처 호프집이었고 결국 안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 500cc잔을 앞에 두고 그는 처음으로 자기 사촌형이 아닌, 내 전공이 아닌 자기 얘기를 했다. 간단히 일목요연하게. 

 “제가 남은 돈이 만원밖에 없어서요.”

 순간 돈이 없다는 말을 이렇게나 간결하게 말하는 이 남자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한마디를 끝으로 그는 자신의 과거와 주위 사람들 이야기로 돌아갔다. 외고를 다니며 잘나갔다던 당시의 생활과 잘나가는 친구들과 사촌형. 만난 지 두 시간이 넘도록 나는 그가 어떤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인지, 학교는 어디에서 다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해 질문할 틈조차 주지 않고 끊임없이 남 얘기를 하는 그에게 간단한 신상정보를 묻는 것조차 무척이나 실례되는 일인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본 적도 없는 그의 사촌형의 스펙까지 읊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현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아. 무. 것. 도.

 ‘어디야?’

 친구의 문자를 받고 이 녀석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밀어야겠다는 욕구와 함께 지긋지긋한 사촌형 얘기도 그만 듣고 싶어진 나는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정말 예의상 묻는다는 뉘앙스가 넘치는 

 “계산하시게요? 제가 해도 되는데.”

 라는 말에

 “저녁 사주셨으니까 이건 제가 낼게요.”

 라고 답했다. 저녁에 술까지 얻어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맥주 값 때문에 다음번에 혹시라도 만나게 될 의무감을 버리고 싶었다. 물론 그도 계산할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영화 <연애의 목적> 中



 가게를 나와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은 우리는 각자 집으로 향했고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소개팅을 넘긴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저녁을 먹는 동안 주선한 언니를 통해 소개팅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야, 글쎄 그 남자, 언니가 아는 남자도 아니었나봐. 그 언니 남친들 항상 다 괜찮았던 거 알지? 근데 언니 남친이 자기 아는 친구가 소개팅 시켜달라고 하도 졸라서 언니한테 물어봤던 거고 그게 너한테까지 간 거지. 그러니까 그 언니도 이 남자는 처음 본 거래. 더 웃긴 건 언니 남친이랑 이 남자도 사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고등학교 동창인데 오늘 본 게 몇 년 만이라더라. 몇 년 만에 만나자마자 이만원만 빌려 달라고 했다는데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 먹이려고 빌려 간 거니? 응?”

 그 이만원이 아니었으면 나도 4500원 짜리 어린이세트를 먹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저녁과 술값 모두 내가 내야했던 걸까. 그의 전공은 경영이고 명문대의 지방캠퍼스에 다닌다고 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역시 자기 얘기를 제외한 남 얘기만 한 터라 주선한 언니와 친구는 그리도 미안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언니 남친에 의하면 대학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학교 얘기를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했다.

 


영화 <작업의 정석> 中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소개팅으로 만나 연인이 되었다는 기적 같은 경험담을 듣고 나도 한번이라는 호기심에 나가는 소개팅.
소개팅 남녀들에게 간언할지니 소개팅에서 나만의 그 혹은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동네에서 조인성 마주치기, 길거리에서 김태희 찾기 정도의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도 닦듯 마음을 비우고 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은 열등감은 버리고 지갑에 식사비 정도는 채워서 나와 줄 것. 첫 만남에서부터 싸우려고 하는 지나치게 터프한 모습은 삼가 할 것. 

 이 정도라면 당신은 새로운 만남을 시작 할 준비가 된 예비 연인이다. 솔로들이여, 봄맞이 소개팅 시즌에서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