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행복을 드리는 XXXX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밥을 먹으러, 커피를 한 잔 마시러, 로션을 하나 구입하러 갈 때마다 우리는 높은 음으로 청량하게 울리는 이러한 말들을 듣는다. 고객에 대한 친절,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해 제품 하나라도 더 파는 것. 이런 것들을 의무사항으로 교육받은 아르바이트생들의 강요된 친절이다. 그들의 친절한 한 마디를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마치 미니홈피에 들어가자마자 재생되는, 들려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배경음악처럼.

우리나라에선 ‘손님이 왕’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소비자가 점원의 친절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 조금만 불편한 것이 있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점원들에게 우리들은 ‘불친절함’으로 친절을 되갚곤 한다. ‘★★★해서 그러니 ♨♨♨ 해 주실 수 없을까요?’ 라고 예의를 갖춰 이야기하는 소비자들을 찾는 것이 오히려 힘들다. 굉장히 짜증스러운 말투로, 한 마디만 하면 될 걸 몇 마디 덧붙이고 심지어 알바생을 꾸짖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아까 한 번 말했었던 것 같은데 나이프 좀 새로 갖다 주세요’가 아니라 ‘몇 번을 말했는데 왜 이렇게 나이프를 안 가져와요. 여기 직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로 시작해서 심지어 불친절하게 한 게 있으니 ‘서비스를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


(사진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915435)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알바생의 불친절을 탓했던 당신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상대하면서 언제나 모든 사람의 눈에 100% 흡족하게 행동할 수는 없는 법이고, 언제나 일에 100% 최선을 다할 수도 없는 법이다. 게다가 보통의 알바생들은 정말 저렴한 시급을 받으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주는 일반적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선결 과제가 알바생 착취라 여기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들을 그들의 불친절을 이야기했던 당신이 몰랐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힘들게 일하는 알바생들이 실수 한 두 번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눈앞의 불편함을 참지 못한다.

알바생은 당신에게 잠시 무관심했거나 ‘불친절’했던 것은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당신의 과민반응으로 인해 알바생은, 당신이 받은 불쾌감 이상의 ‘현실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힘없는 알바생은 컴플레인이 잦다는 이유로 꾸짖음을 당하고, 시급을 까이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말을 듣는 알바생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격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되는 환경 속에서 쪼그라들고, 자신을 강자라고 여길 경우 거만해진다.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왕 행세를 하려는 손님들은 구체적인 알바생의 잘못한 행동뿐 아니라, 그가 지은 잠시간의 표정과 말투, 외모까지도 트집을 잡는다. 강자의 잘못에는 눈을 감고 순응하면서, 약자의 잘못에는 알파를 더해 비난한다. 역지사지로 본인이 누군가에게 저지른 실수 때문에 그런 취급을 받는다고만 생각해 봐도 참 어이가 없을 텐데 말이다.


(사진 출처 : http://photo.naver.com/view/2009102004541634104)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린 자기소개를 읽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그가 ‘본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서비스 정신이 부족한 아르바이트생’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그런 글을 쓴 걸 보면, 그는 참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의 마인드에 대해 약간의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나 자신은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런 감정을 가져본 일이 없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순간의 불편함을 참기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빡빡하게 조그마한 일들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한두 번쯤은 그들의 실수를 이해하고 미소를 지어주는 게 훨씬 바람직한 행동일 것이다. 그들을 꾸짖기보다는 응원하며, 처우 개선을 바라고 있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