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불경기를 겪으며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녀 직장인 2042명 중 27.2%가 ‘능통한 영어 실력과 외국어 능력’라고 대답하며 1위에 올랐다. 공대 공돌이도 토익공부를 하고, 해외 어학연수는 옵션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으며, 중학생들은 방학이면 영어캠프로 어린이들은 아침이면 영어유치원에 등교를 하는 대한민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신입직원 영어능력에 대한 만족도 조사결과는 100점 만점의 73점이다. 렉걸린 컴퓨터마냥 해결책없는 무한반복의 영어지옥굴레는 영어컴플렉스의 현주소이다.




 영어로 업을 삼고자 하는 사람이 영어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한다면 자격미달일까. 단지 잘하지 못하는 영어를 배워보고 싶었던 학생은 철이 없었던 것일까. 어학연수경험에서부터 심심치 않게 만나는 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사람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따윈 부질없어진다. 졸지에 영어‘도’ 못하는 못난이요, 실패자요, 루저가 되버렸다.


  힘과 권력의 논리로 수십년동안 공용어로 자리잡았고, 적어도 향후 몇십년은 부동의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영어’. 심지어 미국이 깡패국가로 규정한 북한에서도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보면 문명 속에서 실로 그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없어 보인다(아마존 밀림 속의 조에족이라면 모를까). 


 애초부터 언어 능력은 객관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것인 것을, 우리는 어쩌다 ‘영어’ 앞에서 콤플렉스 덩어리로 전락했는지 씁쓸해 진다. ‘불안’에서 알랭 드 보통은 그랬다.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만족(즉,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준거집단으로 삼아 그들의 조건과 나의 조건이 비교되어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 ‘만족’인 것이다. 굳이 예를 들기위해 외딴 섬마을 학교에서 ‘영어 잘한다’ 소리를 듣는 학생과 강남 8학군에서 ‘평균’을 유지하는 학생을 비교해 본다면, 잔인한 일일 것이다. 애초부터 ‘평균’이란 것이 존재했는지 의문스럽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 옆에서는 나는 못난이, 나보다 못하는 사람 앞에서는 나는 능력자. 상대평가 제도제 속에서 끊임없이 상대와 나를 비교하는 법을 배워왔다. 콤플렉스는 비교를 먹고 자란다.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너와 나를 비교해보기. 나를 절대적 위치를 평가하기 보다는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지금의 내 위치를 가늠해 보는 것에 더 익숙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대외용이 아닌 내수용 상품으로 전락했다. 언어의 본질적 용도는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지만 영어의 일차적 용도는 좁게는 취업, 넓게는 성공이다. 고립되기 두려워하고 남과 비교해 나를 깎아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열등의식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영어 콤플렉스’라는 고질병의 원인이다.  


 마치 온 국민이 영어를 잘~하기만 하면 성공의 길이 보장되고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할 것 같지만, 영어가 공용어인 필리핀이나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이 아직은 여러 고질적 문제에 발목이 잡혀 선진국은 조금은 먼 얘기로 여겨지는 것 같이 영어가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결국엔 기사를 쓰고 있는 본인이야 말로 농축된 ‘영어 콤플렉스(본인이 영어 울렁증이라 일컫는)’ 덩어리인지라 마음이 무겁다. 애초부터 언어는 완전정복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신년목표는 몇 년 째 영어완전정복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이론에 근거하면, 사실 영어 콤플렉스를 극복할 두가지 이론적 방법이 있기는 하다. 첫째, 영어를 부단한 노력을 통해 정말 영어를 정복하던가, 아니면 영어정복의 꿈을 포기하던가.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by 윌리엄 제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