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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날 즈음에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만화 시리즈가 있었다. 바로 ‘xx학도의 명절’ 시리즈이다. 이 만화는 명절에 대학생들이 고향에 내려가 어른들한테 듣게 되는 말을 소재로 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고착된 각 학과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화학공학과를 다니는 대학생에게는 공대에 무슨 비전이 있느냐며 의학전문대학원을 권하고, 불어불문학과 학생에게는 프랑스 말 배워서 무엇으로 먹고 사냐며 삼성전자에 갈 것을 권하는 게 우리네 세상이다.

취업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청년백수 ‘OO만 명 시대’가 갈수록 기록을 갱신해가는 현실은 대학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IMF 이후의 대학에서 과거의 낭만은 점점 사라져가고, 그 대신 남을 제치고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한 경쟁이 그 자리를 메웠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스펙을 채우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성공에 대한 압박으로 매일 같이 자기계발 도서를 읽고 영어를 공부한다.

▲ 만화 공학도/문학도의 명절 중의 한 컷 (출처 : http://www.seiyon.net/bbs/recommend@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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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올해까지 가장 많은 세간의 주목을 받은 대학은 아무래도 중앙대학교가 아닐까. ‘학문단위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19개 단과대학과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학, 46개 학과로 정리하는 대학 측의 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찬반으로 의견이 갈려 있는 상황이다. 논쟁 속에서 조금씩 계획이 수정되고 있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이것은 ‘기업적 구조조정’이고, ‘비인기학과’로 분류되는 순수 학문 관련 학과들만 피해를 보게 되었다. 중앙대 말고도 올해만 숙명여대, 건국대 충주캠퍼스 등에서 학과 편제의 개편을 놓고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섭섭한 일이지만 이러한 상황들은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교가 발전하여 다른 학교들을 제치고 더 좋은 학교가 되는 일, 경쟁 속에서 한 발 앞서 나가는 일이 학교에게도 그렇지만 학생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내가 팔리고, 그래야 팔리는 인재들을 생산할 수 있다. 더 이상 학문의 상아탑이기를 포기하고 취업학원의 길을 선택한 대학이라면, 당연히 계량화되는 수치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졸업생들이 대기업에 취업하고, 돈 많이 버는 인재가 되는지. 이런 것들이 그러한 대학에게는 가장 중요한 지표일 것이다.

▲ 중앙대 구조조정 반대 고공시위 모습 (출처 : http://blog.naver.com/ejajtwu2?Redirect=Log&logNo=110084088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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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상경계열이나 이공계열의 졸업자들을 선호한다. 또한 여전히,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SKY를 선호한다. 최소한 드러난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한겨레21과 잡코리아가 공동 조사한 ‘2009년 취업한 대기업․중소기업 신입사원 스펙 비교에 따르면 대기업 신입사원의 21.9%는 SKY 출신이 차지했고, 인문사회계열 전공자의 비율이 16.1%이었던 데 비해 이공계열은 47.3%, 경상계열은 31.7%였다. 중소기업의 SKY 비율이 1.8%에 그친 것, 인문사회계열 전공자가 21.3%, 경상계열 전공자가 16.3%로 역전된 것과 참으로 대조된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2009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이 상경계열을 선호하는 현상은 조금 더 뚜렷해진다. 복수전공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답한 40.6%의 인사담당자 중 인문어학계열의 복수전공자에게는 5.0%의 인사담당자만이 가산점을 준 반면, 상경계열의 복수전공자에게는 68.3%의 인사담당자가 가산점을 주고 있었다. 기업들이 왜 상경계열의 지원자를 선호하는지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준 영향력만은 너무도 확실하다.

▲ 2009년 취업한 대기업, 중소기업 신입사원 스펙 비교 (출처 : 한겨레21 8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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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선호이지 실상은 차별이다. 어차피 인턴이란 거 해봐야 복사만 하다 나온다는데, 상경계열 대학생이 아니면 지원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있다. 내 전공은 어문학이지만, 상경계열 관련한 공부를 많이 해서 전공자들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난 안 될 거다. 기업의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대학은 상경계열, 이공계열에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언제나 가난한 학문이다. 등록금이라도 상대적으로 싼 인문대, 사회대는 차라리 다행이다. 예체능계열은 등록금마저 비싸다. 주위의 시선도, 내 학과가 없어질 거라는 소문도 고통스럽다. 난 정말이지 내 전공 공부가 재미있고 전공을 사랑하지만, 그런 것 따위 사람들에겐 안중에도 없다.

대체 한 순간, 그것도 갓 20살이 되는 시점에 선택하게 되는 학교와 학과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싶다. 개인이 획득한 수능성적에 따라서 학교나 학과가 결정되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세상에나. 수능은 19살 때 보고, 취업은 그보다 한참 더 지난 시점에 하는 일이다. 게다가 수능성적 몇 십 점? 그 정도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며, 수능성적이 인간의 모든 능력을 평가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으려면, 반수, 삼수, 사수, 오수, 육수, 칠수를 해서라도 SKY 대학의 상경계열에 진학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 “한국 재수학원은 감옥”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New York Times의 기사
(출처 : 뉴시스 사진,
http://blog.naver.com/happyshkh?Redirect=Log&logNo=90034068841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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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간의 서열, 학과 간의 서열을 매기는 일은 범사회적으로, 대학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논의되는 가십의 하나이다. 이제는 기업이 시키지 않아도, 학교가 먼저 학생이 먼저 자발적으로 그들의 담론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편을 갈라, 너를 앞서는 나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참으로 우스운 일을 우리는 매일 같이 본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현실이란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서 말이다. 고함20과 함께 한 번 짚어보자. 이러한 학교, 학과라는 기준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냉정한 차별의 현실을. 차별이 정말 차별인지, 아니면 우리가 만든 환상인지를. 차별에 대한 너와 나의 좁혀지지 않는 인식을.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