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무뎌 졌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공평함을 외치며 차별하지 말라고 떼쓰던 우리는 이렇게나 무뎌 졌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누어 먹을 때도 공평하게 꼭 같이 나누려고 조심조심하던 우리는 이렇게나 무뎌졌지요.
 무엇 때문에 학과별로 등록금의 차이가 있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어도, 대학교가 요구하는 편입의 자격을 거쳐서 선발되더라도, 똑같은 학교를 다님에도 ‘유망학과’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아도 우리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화를 낼 기운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등록금 인상의 소식이 있으면 이에 맞서 싸워야 하고, 일방적인 학제개편이 있으면 하던 일을 미뤄두고 피켓을 들어야 하니 숨 돌릴 틈조차 없습니다. 혹은 화를 낼 기회조차 없는 지도 모르지요. 등록금 산정 기준에 대한 이유를 듣고자 소송을 제기하여도 돌아오는 것은 현재는 알려줄 수 없으니 몇 년 뒤 이유를 공개하겠다는 얄팍한 변명뿐 입니다. 학제 개편의 이유를 ‘학교의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일방적으로 추진하니 화를 낼 기회조차 없을 뿐 더러 싸움에 대한 정보도 전무합니다.


 화를 담아둔 채 어느 용감한 학생들의 시위 소식을 들으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작아지는 나를 확인합니다. 한편으로는 나는 저런 고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듭니다. 이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당신도 같은 모습인가요?



 대학교의 교육에 서비스라는 말이 따라 붙은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육 서비스’ 라는 말이 생기면서 우리는 교수님을 교육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의 직원 정도로 취급하고 학교는 이를 관리·운영하는 기업, 학생은 서비스의 소비자로 보기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교는 취업사관학교가 되어버렸습니다. 학교의 위상(?)을 드높일 만한 학과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는 미비합니다. 대기업의 인재 상에 맞지 않는 학생은 쓸모없어졌습니다. 이런 대학교에 남아있는 이들은 토익과 학점, 스펙에 열을 올리고 또 다른 이들은 학교를 떠나고 있습니다.



 



 남거나 떠나거나.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가요? 학생들을 소비자로 부르지만 그마저도 고객으로 대우한적 없는 대학교. 그 횡포와 차별 앞에 오늘도 한숨만 내쉬어야 하는 건가요?



 지난 3월 29일은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가 주최한 등록금 문화제가 있었습니다. 울산대의 경우 자발적으로 등록금 차별 안을 내고 학생들의 동참에 따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인 학우들이 등록금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등록금 더 내기 운동이 있지요. 4월 3일에는 국회의사당 부근에 약 1000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기만적인 취업 후 상환제 개정, 반값 등록금 이행 촉구 대학생 교육공동행동’ 이라는 이름으로 집회가 열리기도 했답니다. 5월 2일 노동절에는 메이데이 행사로 대학생들의 참여도 활발했습니다. 
 나가서 피켓을 들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각 대학교 학생회 및 기타 독립적인 단체에서는 오늘도 학생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댓글과 서명만으로도 의견을 피력할 수 있습니다. 캠퍼스에 나붙은 자보를 살피는 건 채 1분도 걸리지 않구요.


  학생들은 학교의 횡포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별을 받아도 정당한 어느 한사람도 없는 캠퍼스에서 차별은 만연하고 있습니다. 학과 간 등록금 차별, 주류-비주류 학과간의 차별, 기업형 인재와 아닌 학생들에 대한 차별 등등으로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권력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화나십니까? 그렇다면 화내십시오. 지금 당신의 분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