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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가 아닌 또 다른 북촌을 발견하다




민속촌을 찾아갔을 때나, 사극에서나 봤음직한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이어져 있고, 시대극에서나 봤을법한 고즈넉한 향기가 물씬 풍기는 가게들에는 손으로 쓴 것 같은 오래된 간판들이 붙어있고, 한가한 듯, 나른한 듯 처음 만나는 골목골목에선 왠지 모를 그리운 향수가 느껴지는 곳. 어느 새 서울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자리 잡은 북촌 한옥마을의 풍경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부터 양반들의 거주지로써 유서 깊은 북촌. 그러나 언제부턴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한옥이 자꾸 사라지고 오랫동안 특유의 고풍스러움을 유지 해 오던 북촌의 경관마저 위협을 받자, 서울시의 주도로 북촌 가꾸기 정책이 실시되었고, 한옥등록제, 한옥 수선 등의 노력으로 현재와 같은 서울 대표 관광지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조금 걸어 찾은 북촌 문화센터에서부터 지도 한 장 들고 돌아 본 북촌의 골목들에는 과연 서울 대표 관광지답게 정겨움이 묻어나는 조그만 가게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 앞 마당 등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어 살며시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한 시대의 변화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한옥들 덕분인지, 그 곳에서 만큼은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도 잊고 시간마저 멈춘 듯, 공기마저 붙잡아둔 것 같은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북촌에 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러한 여유와 고즈넉함을 즐기러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리곤 마치 실핏줄처럼 얽혀 있는 어느 골목의 어느 집 앞에서 사진도 찍고 혹시나 문이 열려 있다면 살짝 들여다보기도 할 것이다. 또 ‘나도 이런 집에서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북촌을 찾아 둘러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까닭은 바로 그 곳이 모형처럼 만들어 놓은 민속촌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열린 문 틈 사이로 들여다보기도 하는 바로 그 집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곳을 관광을 목적에 두고 찾기에 그 곳이 실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그저 그러한 멋진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정도로 지나치고 만다. 여기서 문득 생긴 한 가지 의문. 그렇다면, 실제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마다 구경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구경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집 안을 들여다보고, 사생활은 잘 지켜지지 않고, 오래된 내 이웃은 시끄러워진 이 동네를 하나 둘 떠나고, 오랫동안 이용해 온 구멍가게들은 오르는 세를 견디지 못해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를 싼 값으로 매입한 정부는 우리 동네를 자꾸 관광지로 개발하려 또 다른 한옥 체험관을 꾸리고 있고 정겨움이 묻어나던 구멍가게는 없어지고, 이제 비싼 액세서리 가게, 값비싼 커피를 파는 카페가 들어선다. 우리 동네는 그렇게 점점 시끄러워지고 집값은 계속해서 오르고 이 악순환은 계속 반복된다. 이는 10년째 북촌에서 살면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북촌의 골목골목을 살펴 그 이야기를 『북촌탐닉』이라는 책으로 담아내신 영화칼럼이스트 옥선희 씨께서 들려주신 말씀이다. 과연 이런 동네를 끝까지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햇살 가득한 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도 한 장 들고 나선 북촌 나들이. 보이는 것마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예쁘고 여유롭게만 보이던 북촌이었지만, 옥선희 씨의 말씀을 듣고 나니 돌아오는 길에는 출발할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잠시 문을 열어놓고 꽃에 물을 주려던 할머니는 웃고 떠들며 허락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 탓에 도로 들어가 대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는 동네이지만 세탁소, 슈퍼마켓, 약국과 같은 가게들은 찾기 힘들었고, 대신 옷과 액세서리, 커피 등을 파는 가게들만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수목 드라마 ‘개인의 취향’의 배경이 되어준 ‘상고재’는 벌써 그 간판을 떼고 문을 닫아 그야말로 외부 공개를 막았다.

북촌이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고, 그 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 곳이 외관만 잘 꾸며놓은 모형 같은 민속촌이 아니라, 골목마다 어딘가 그리운 향수를 풍기는 구멍가게들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람냄새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향수와 사람냄새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곳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 무분별한 개발을 피해 보존하고자 시작했던 북촌 가꾸기 정책이 도리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아름답고 분위기 좋은 관광지를 찾아가는 사람의 입장으로써는 구멍가게 보다는 향긋한 커피 냄새를 풍기는 예쁜 카페, 수공예 액세서리를 팔며 동시에 작품 전시까지 함께하는 갤러리 같은 가게들이 골목골목 들어앉아 있는 편이 구경거리도 더 많고 여유로움을 즐기기에도 좋다. 호기심을 자극하듯 열려있는 대문 틈 사이로 몰래 다른 사람의 집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도 쏠쏠하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한 잔의 차를 즐기며 고풍스러운 풍경을 바라보고 여유로움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시간 들이고 돈 들여 찾아간 곳이 바로 관광지가 아닌가.

조용함이 좋아, 여유로움이 좋아 북촌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의 입장으로써는 내가 사는 우리 동네를 살리겠다며 시작된 원치않았던 국가 정책으로 인해 그 곳을 선택한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점이,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라는 사실이 자꾸 잊혀지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잠시 열어놓은 문틈으로 사람들이 자꾸 허락 없이 우리 집 사진을 찍어가고 누군가 나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하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새 관광지가 되어버린 우리 동네를 지키며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되어간다.

겉모습에 반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나들이가 북촌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됨으로써 돌아오는 길에는 아까 봤던 풍경이 어쩐지 달라보인다. 당신이 만약 언젠가 북촌으로의 나들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눈에 보이는 북촌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혹은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안타까움을 찰나의 순간이나마 생각 해 본다면 조금은 다른 북촌이 보인다는 것을 기억 해 주길 바란다.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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