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저 반대편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열리는 2010 월드컵은 4일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한반도는 월드컵 열기가 가득하다. ‘벌써’라는 말을 쓰기도 애매한 것이 월드컵과 관련된 분위기는 이미 몇 달 전부터 고조되어 왔다. 카라, 티아라, 김연아, 빅뱅, 2AM, 슈퍼주니어 등 스타들은 빨간 옷을 몸에 두른 사진과 함께 월드컵 응원곡을 발매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가 어떻게 구성될 것인지, 많은 해외 축구 전문가 혹은 도박사들은 한국의 전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대표 선수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언론은 이런 가십들로 기사를 써내느라고 매우 바쁘다. 국가대표 평가전이 있는 날이면, 다들 축구 얘기를 하느라 바빠서 오늘 경기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내가 이상해질 정도이다.

개막 전부터 벌써 이 정도인데, 개막 후에는 얼마나 월드컵, 월드컵, 월드컵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어야 할까? 경기 결과, 선수들 인터뷰, 전문가들의 예상, 해설자들의 명언, 국가별 전력분석, 명장면, 이색 기록, 최고령․최연소 선수, 골 세리머니, 연예인들의 응원 등 뻔하디 뻔한 레파토리로 신문을 온통 장식할 기사들, 으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 세계인의 축제를 빙자한 이 녀석 월드컵은 필자에게는 별로 반가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이 더 소중한 사람들도 있다

평소엔 전체주의니 집단주의니 하는 단어에 경끼를 일으키던 사람들도, 월드컵 기간에는 ‘타인의 취향’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된다. 거리는 응원의 물결로 넘치고, 모든 사람들이 축구에 대한 담론을 쏟아낸다. 이런 시즌에 정말 한국 축구가 잘 되든 안 되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왕따 내지는 非애국자가 되게 된다. 광화문 주변에서 사는 사람이 뭐 이렇게 시끄럽냐고 응원 인파에게 따져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벌써부터 걱정된다. 참고로 필자는 시청 주변에 거주한다.) 고3 학생이 축구 경기 시간에 축구를 안 보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간 정말 돌을 맞을지도 모른다. 업무를 방해하는 ‘대~한민국’ 소리가 시끄럽다고 지인에게 말하는 것도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

이렇게 날아간 일상을 되찾으려면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TV를 켜 보아도, 라디오를 들어도, 인터넷을 해도 세상은 온통 월드컵 얘기뿐이다. 매주 보던 드라마도, 예능프로그램도 심지어 우리나라와 관계없는 축구경기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결방된다. 월드컵 시즌에는 월드컵으로 인해 모든 문화 산업이 침체기로 들어간다.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일부 월드컵 송을 제외하면, 가수들은 이 시기를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이것은 극장가도 마찬가지이다. 월드컵의 영향을 벗어나려면 말 그대로 ‘지구를 떠나는 수밖에.’


▲ 2006 월드컵 당시 광화문에서 응원을 하는 서울시민들 (출처 : encyber.com)

세상에 할 일이 ‘축구보기’밖에 없나?

천안함 사태로 인해 모든 이슈들이 다 수면 밑으로 잠수 타는 ‘안습적’ 상황에 식겁했던 사람들이라면 긴장하라! 곧 새로운 쓰나미가 몰려온다. 바로 그놈의 월드컵 때문이다. 다른 나라 간의 경기 결과와 주요 골 장면, 외국 선수들의 인터뷰가 메인 기사를 채운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더욱 심하다. 경기 전날은 전망으로, 경기 날은 경기 결과와 인터뷰로, 경기 다음날은 한국 팀에 대한 신화 창조로 신문 1면과 9시 뉴스의 톱뉴스들이 채워진다. 그렇다고 스포츠뉴스가 없는 건 아니다. 마지막에 다시 나와서 심층 분석을 해 주어야 하니까.

물론 뉴스를 보는 사람들의 관심 주제가 이미 그 쪽으로 흘러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어떤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릴 것인가는 거의 대부분 미디어가 결정하는 부분이 더 큰 듯하다. 월드컵 열기도 월드컵만 죽어라고 틀어주는 방송사, 월드컵을 이용해서 마케팅을 펼치는 대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측면이 더 커 보인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은 이번 월드컵 때는 두 개의 방송국에서라도 제대로 된 뉴스 선정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기대가 되기도 한다. 마치 지난 동계올림픽 당시 올림픽 소식을 단신 처리했던 것 마냥 말이다. SBS의 단독중계, 과정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결과만 가지고서는 참 찬성하는 바이다.

▲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293227

대표팀의 부진을 바라 본다

사실 무슨 심보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월드컵에서 3패하고 일찍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여럿에게 한 적 있다. 유치하지만 축구장에 물 채우고, 빨리 축구 골대 철거하고 핸드볼 코트 여러 개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랬다. 물론 월드컵이 단일 종목만으로도 올림픽에 필적할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축구가 세계인이 좋아하는 스포츠인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영향력, 그리고 그곳의 권력이 아니꼽기도 하고 축구만 찬양하는 사람들이 좀 밉기도 하다.

물론 필자도 한국 사람이니 한국 팀이 지는 것보단 이기는 것이 낫긴 하지만, 이번엔 져도 ‘새옹지마’라는 말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진 것은 월드컵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조금은 가슴 아플거다. 하지만 그만큼 월드컵의 열기는 평정을 되찾을 것이다. 월드컵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작게 될 것이고, 축구 말고도 다른 종목들에 관심을 줄 여력도 생기게 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