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기획 ‘300’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실은 고함20과 함께 한 300일에 대한 글을 부편집장과 나누어 쓰기로 했고, 이미 오래 전에 완성해 두었었다. 그런데 피곤한 심신을 달래며 겨우 쓴 글이라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어디서부터 이런 근거 없는 ‘근성’이 발동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고함20은 그만큼 내가 ‘쉽게 다룰 만한 것(혹은 곳)’이 아니기에 성심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만은 또렷하다.

정확히 말하면 난 고함20과 300일을 함께 하지는 않았다. 고함20과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FUN20에서 두 가지 섹션을 수강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20대 미디어를 지향하는 블로그가 오픈한다며 홍보하러 나선 초기 멤버들 덕에 이 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때가 작년 8월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신입을 뽑으면 약 1달에 걸친 트레이닝도 하는 반면, 당시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별도의 과정 없이 회의에 참석하고 글을 썼다. 그 ‘준비 부족’이 고함20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상당한 애로를 겪은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글을 쓰고 싶었고 기자라는 직업에 대단한 동경을 가지고 잇던 나는 참 당당하고 뻔뻔했다. 글쓰기라는 작업을 특별하게 생각해 온 덕에 이런저런 글을 써 왔다는 그 자신감 하나로 겁없이 뛰어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만만치 않은 기자 생활
 
글쓰기가 남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보물’임과 동시에 끝없는 열패감과 좌절을 심어 주는 ‘악마’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머리가 더 단단해지기 시작한, 대학생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은 나인데, 스트레스 피하자고 귀중한 생산활동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는다는 굳은 믿음으로 고함20에 발을 들였다. 초창기 멤버가 아니라는 것이 핸디캡이 될까봐 걱정했는데, 사실 합류한 시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지, 얼마나 풍부하고 깊은 취재를 했는지, 얼마나 글쓰기 훈련을 성실하게 했는지- 이런 것들이 훨씬 중요했다.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항상 초심을 유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남들보다 시간 운용이 자유로웠던 휴학생이면서도 나중에는 해이한 모습도 보였다. 기자에게 마감은 생명인데. 마감 넘긴 기사는 취급조차 안 되는 게 현실인데, 난 그 현실과 늘 대치 상태였던 것 같다. 글이 올라온 시기가 마구 몰리는 때와 뜸한 때로 나누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좀 더 부지런해지고 기사 쓰기에 더 충실하면 해결됐을 테지만 그러질 못했다. 하나의 작은 실천은 백 마디 말을 설파하는 것보다 백 배쯤은 어렵다는 것을 고함20에서 기사 쓰면서 많이 느꼈다. 

게다가 이렇게 헐렁한 주제에 일처리는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 완성된 글에 도무지 만족을 못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동안 쓴 글이 모두 엉망진창은 아닐 것이다. 몇몇은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글일 수도 있고, 몇몇은 비난하기엔 아까운 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전자가 훨씬 많다고 본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남들이 굳이 드러내어 칭찬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 뿌듯한 글을 쓰기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고함20에 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나 자신이 과연 기자일을 견딜 만한 사람인가? 자질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웬걸- 기자는 무척 고단하고 어려운 직업이라는 깨달음만 선명해졌다.

편집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어릴 적부터 신문이나 시사주간지와 제법 친했던 나는 편집장이 뭐하는 사람인지 정도는 꿰고 있는 성숙한 청소년이었다.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언론매체를 챙겨보면서 편집장이 내뿜는 포스(!)가 얼마나 대단한 지도 느꼈다. 엄청난 내공과 글솜씨를 갖춘 말 그대로 기자 중의 기자인 자가 편집장이어야 하기에, 아무리 탐을 낸다 해도 아무나 앉힐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편집장이라니.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이번 학기에도 야심차게 휴학을 강행한 덕에 ‘가장 여유로울 법한’ 내가 편집장이 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제와 고백한다. 정말 자신이 없었다. 정기자로서도 한참 부족한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편집장이 되다니!!!!!!!!! 더구나 2월 중에 들어온 2기들과는 1g의 친분도 없이 3월 회의에 참여했다. 2주 간 4번 정도 얼굴 본 게 전부인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감도 못 잡은 어리바리한 나는 전 편집장에게 징징거리기까지 했다. 지금 떠올려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편집장 2, 3주차까지는. 

4개월 정도 지난 지금은 그래도 편집장이라는 직함을 어디다 말하고 다니는 것쯤은 거뜬히 할 수 있다. 제법 책임감도 생겼다. 내가 잘해야 고함20도 잘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언제나 할 수 있는 최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굳다. 운영진이라면 맡아서 해야 할 잡무에도 익숙해졌고,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뭔가를 하려고 든다. 물론 말만 번지르르하고 불성실하게 구는 내 모습은 진짜 치가 떨리도록 싫어해서, 최대한 언행일치하는 편집장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다른 고함이들이 어떻게 느끼는 지는 미지수.

3000일, 30000일을 향해 가는 고함20을 위하여

3000일. 8년이 좀 넘는 시간이다. 30000일은 82년 정도. 뭐 조선, 동아일보도 90주년 맞았는데 고함20이라고 못하랴! 그 무수한 날들에 비하자면 애송이같은 300일 축하글을 쓰면서 무리수를 둔 건 아닐까 의심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고함20이 분명 오래오래 잘 클 수 있다고 믿는다. 고함20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갈 좋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온다면 말이다. 이제까지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다면, 앞으로는 보다 또렷한 우리의 글과 활동으로 입지를 더 단단히 다질 것이다. 기대되지 않는가. 기업의 스폰서도 없이, 번듯한 사무실도 없이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과 20대라는 공통분모만을 가지고 모인 젊은이들의 앞날이. 아니 더 정확히는 그 젊은이들이 만들어 가는 20대 대표언론의 모습이.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언론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흔치 않은 뿌듯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은 먹어도 먹어도 늘 고프다. 실망시키지 않은, 관심과 격려에 부응하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나에게 우연인 줄만 알았던 고함20이 실은 대단한 필연이었던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도 고함20이 피할 수 없는 결정적 만남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한번 300일을 자축한다. 고함20, 조… 조… 사랑합니다♥



 
▲ 고함20 300일을 자축하며 300일 초에 불을 붙였다


뜬금돋는 Special Thanks to


현란한 말솜씨로 고함20과 책꽂이 모두를 안고 가게 만든 대표님, 살인적인 일정도 웃으며 맞는 멀티 플레이어 전 편집장 테싸, 문자 주고받기 2위 위엄돋는 능력자 부편집장 페르마타, 슬렁슬렁 하는 듯하면서도 참 글을 잘 써 부러웠던 에르네스토, 여전히 독특한 철학과 개그를 구사하는 근재, 항상 상냥하고 긍정적이어서 더 좋은 까꿍, 숲을 보는 안목과 대단한 성실함을 보이는 고함20 공식주필 민재, 최고의 출결+비판력+문장력 3박자를 갖춘 경호, 무한 감수성을 녹여내는 글로 나를 사로잡은 프롤로그, 정말 웰빙(well-being)하고 있는 볼매녀 파이시스, 애늙은이인 줄만 알았는데 제법 귀여운 노력가 잠만보, 발칙한 생각도 이야기꾼의 재주도 부러운 히아, 재미돋는 말솜씨가 일품이었던 ikey, 기분 좋아지게 하는 아우라의 소유자 표정도상쾌, 기획력+추진력 돋는 영훈, ‘저 새내기예요’ 하고 써 있는 영석. 옹달샘, 네가 보냈던 메시지는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어. 네가 원하는 모든 일을 다 이루길! 더불어 곧 함께 하게 될 고함이 3기와 앞으로 이곳에 애정을 보낼 불특정 다수의 여러분까지,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여기에 적힌 사람들 모두가 고함의 3000일 축하 메시지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