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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고향을 떠나 서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쾌쾌한 공기가 있지만 그 높고 복잡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좋고,
그냥 길거리만 걸어도 너무 새로운 것들이 많은 그 풍경이 좋아.
부랑자들이 아무리 구걸을 해대도, 잡상인들이 왠 물건을 팔아대도,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서 있을 수 있는 지하철이 좋아.
xx의 주황색 촌스런 버스와는 다른 멋진 색깔의 그 버스도 좋고,
물도 안 흐르는 xx천 따위완 상대가 되지 않는 청계천이 좋아.
서울이 좋아. 서울이 좋아. 서울이 좋아.

와, 세상에 이런 글이 있었단 말인가. 심지어 그 글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썼던 말인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이 글은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6년에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작성한 글이다. 굳이 필자의 아픈(?) 과거를 글 서두에서부터 공개한 까닭을 밝히자면, 저 글이 그리고 글을 작성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와 매우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고등학생들

나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와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친구들은 참고서나 문제집에 혹은 책상 한 귀퉁이에 목표로 하는 대학과 학과를 써 놓곤 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써 놓은 대학은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대학이나 학과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특정한 비전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 학교가 서울의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정작 수능 이후 원서를 쓸 때가 되면, 성적이 안 될 경우 서울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에 만족하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이전까지는 서울권 대학 안에서만 자신의 성적을 비교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고등학교 때 이미 사회가 개인에게 주는 신호를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게다. 성공, 부, 화려함 등을 좇는 개인이라면 서울이라는 도시 속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 모든 고3들의 꿈, 이런 거 하나씩 만들어 책상 위에 붙여놓지 않았나 다들?
(출처 :
http://blog.naver.com/home910219?Redirect=Log&logNo=110026012763)

지방 대학생들은 서울을 원할 수밖에 없다

같은 직종이라도 서울에서 일하는 경우와 지방에서 일하는 경우의 급여가 다르고, 그나마 지방에는 괜찮은 일자리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배움의 기회, 경력을 쌓을 기회, 심지어 좋은 문화생활을 즐길 기회마저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서울에 산다는 것 자체가 그가 주류에 소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주거비, 생활비가 매우 높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막상 서울로 대학을 온 유학생(?)들은 서울이 딱히 좋은가 싶을 때도 많은데, 주변을 보면 지방대를 다니는 친구들은 서울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따라 많은 지방의 대학생들은 틈틈이 서울로의 진입을 시도하곤 한다. ‘큰 물’에서 놀아봤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또 하나의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오는 일도 많고, 방학 동안 혹은 한 학기를 휴학하고 서울에 살면서 학원을 다니거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서울권 대학으로의 편입을 위해 불철주야 공부하고, 취업만이라도 서울에 있는 회사에 되기를 바라며 매일 같이 도서관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기도 한다.

▲ 이 좁은 땅덩어리에 200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인구가 살고 있다 (지도 : 네이버 지도)

고향에서 사람들을 밀어내는 이 나라는

아는 선배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Davis에 있는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갔었는데, 그 대학에 다니는 미국 아이들에 대해 해 준 말이 인상 깊었다. 그 아이들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타지에 가 본 일도 별로 없으며 캘리포니아의 대학을 나와 캘리포니아의 회사에서 일을 해서 생활을 하고 그 곳에서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평생 고향에 발이 묶여 있다는 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상 미국에서도 타 지역으로의 이동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작은 사회 속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닦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향과 대도시, 동부의 수도권 사이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지역에서는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대에는 그 지역의 학생들보다 한정된 대학 정원을 놓고 벌어진 서울 쟁탈전에서 탈락한 수도권의 학생들, 타 지역의 학생들이 더 많이 다니고 있다. 취업 문제는 또 어떤가. 지방에도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서 취직이 안 되고, 지방대 나와서 서울권에는 가기 힘드니 외국으로 나가서 일자리를 거머쥐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이러니 다른 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게 하는, 기회가 생기면 사람들을 떠나갈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아니 서울공화국이다.


페르마타
페르마타

청년/저널리즘/문화 연구자. 페르마타 = 그 음의 길이를 2~3배 길게. 마쳐라.

5 Comments
  1. J

    2010년 7월 3일 14:35

    대한민국 서울공화국.. 세종시 결국 부결 되어버린 것이 아쉽네요.

  2. 베이비콩

    2010년 7월 23일 14:08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건 정말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죠.

  3. 이야

    2010년 8월 19일 12:42

    아 지방에서 고등학교를나온학생이라면 공감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 딱히 설이 좋은것도못느끼지만…
    큰물?풉..ㅋㅋㅋ

    • ㅅㅅㅅ

      2015년 3월 5일 15:38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건, 시골 농촌지역은 지역 유지들의 줄과 빽으로 끼리끼리 해먹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죠. 기반없는 집 자식들은 당연히 자기 살길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4. ㅅㅅㅅ

    2015년 3월 5일 15:37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건, 시골 농촌지역은 지역 유지들의 줄과 빽으로 끼리끼리 해먹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죠. 기반없는 집 자식들은 당연히 자기 살길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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