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서울 살이

서울 생활 약 6년째. 남들처럼 대학교 진학 때문에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그보다 먼저 자취생활을 시작했으니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덜했지만 타향살이의 어려움은 만만치 않았다.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들이 없는 이 도시는 낮의 활기참과 밤의 화려함으로 나를 더욱 외롭게 했다. 그래도 처음 몇 년 쯤은 서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공연들과 전시회들을 쫓아다니고 방송과 잡지에서 소개한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서울을 탐험했다. 큰 도로와 구석구석의 골목까지 걷고 또 걸었고 그러는 동안 친구들이 생기고 이웃이 생겼다. 그러나 때때로 찾아오는 황량함은 나를 서울 한복판에 서있는 외톨이로 만들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고향을 가면 나는 서울에 살다 잠시 집에 들른 친구가 되어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곧 떠나야할 사람이었다.

어느 곳에도 진짜 내 집이 없는 것 같던 나는 그렇게 나를 이방인으로 정의 내렸다.


<사진출처: 민경호, 고함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그러던 중 약 일 년 간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생경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가끔씩 찾아오던 향수병이 향한 곳은 이십여 년을 보낸 고향도 아니고 가족들이 사는 집도 아닌 서울이었다.


<사진출처: 민경호, 고함20>



편한 신발을 신고 시청에서부터 삼청동까지 신나게 걷던 길과 홍대 근처에 있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식당들. 가로수길에서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카페에 앉아 가장 좋아하는 치즈 케익을 먹으며 보내던 한가로운 오후. 이태원의 골목골목을 누빌 때 문이 열린 식당에서 풍겨 나오는 이국적인 음식냄새. 그리고 소박한 동네다운 청파동.

숨 막히는 교통체증과 무뚝뚝한 사람들의 표정,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이지만 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온 사람처럼 서울을 그리워했다. 내게 서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진짜 서울이야기


서울의 소득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12.64%로 미국 뉴욕의 7.22%보다 월등히 높으며 국내 수치를 비교하면 전국이 6%, 서울이 10.7%에 달한다(산은연구소, 2008년 기준). 뉴욕과 일본의 도쿄, 서울의 물가를 비교해 보아도 서울은 이들 도시에 비해 물가가 크게 상회한다(KDI, 2007년 기준). 여기에 교통체증까지 더하면 국내외를 통틀어 비교해도 결코 ‘살기 좋은 도시 서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서울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nailstan?Redirect=Log&logNo=150087231685  >


<사진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1990839 >



 


도심 한복판에는 대형 쇼핑몰이 아닌 서점이 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곳에서 책을 읽고 과거를 배우고 미래를 꿈꾼다. 운현궁에서는 시민들의 전통혼례가 이루어지고 경복궁과 창경궁, 덕수궁 등등의 고궁들에는 관광객뿐 만이 아닌 소풍을 나온 가족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있다. 역사의 장소를 역사에만 묻어두지 않고 일상에서 자주 찾고 즐길 수 있는 곳이 서울이다. 현재는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시청 앞, 서울 한가운데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월드컵의 응원전이 열리는 곳이다. 차 없는 거리에서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동네 곳곳마다 형성된 특유의 분위기들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골라서 찾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전철에서 책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한강은 잠시나마 다른 것을 잊고 로맨틱 무드에 빠지게 한다.


미국의 뉴욕, 일본의 도쿄,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이들 도시의 공통점이라면 엄청난 관광객들의 수만큼 열렬한 추종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I Love N.Y.”, “Je t’aime Paris.”라고 쓰여 진 티셔츠와 가방을 들고 뉴욕과 파리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면서도 “서울 사랑해.”에는 인색하다.

어쩌면 서울이 좋은 이유를 서울이 아닌 도쿄나 런던으로 글자만 바꾸어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언가가 좋은 데에 꼭 이유가 필요하던가. 좋으면 그 자체로 마냥 좋은 것이다. 

그래서 고백하건데,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