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하던 JYP의 신인 걸 그룹 miss A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한국인 멤버 민, 수지, 중국인 멤버 지아, 페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데뷔곡 ‘Bad Girl Good Girl‘은 밝은 멜로디에 경쾌한 리듬이 가미된 미디엄 템포곡이다. K-POP 시장에서 언제나 성공 가도를 달리는 박진영의 작곡도 작곡이지만, 신인 miss A 데뷔곡의 미덕은 범상치 않은 그들의 노래 가사에 있다.
JYP는 앨범 홍보 문구를 통해 miss A의 신곡 가사를 두고 ‘걸 그룹의 통념을 깨는 전혀 새로운 걸 그룹의 모습’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Bad Girl Good Girl’의 겉모습을 보자면 결국 날 감당할 수 있는 남자를 찾는다는 사랑 노래로 요약될 수도 있으나, 그렇게만 노래를 소화하기에는 무언가를 암시하는 가사들이 너무도 많다.
‘앞에선 한마디도 못하더니 뒤에선 내 얘길 안 좋게 해 어이가 없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이런 옷 이런 머리모양으로 이런 춤을 추는 여자는 뻔해 니가 더 뻔해’
 

곡의 여기저기에 적당한 라임과 단어의 분리를 통해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만 해도 좋은 평을 들었을 가사인데, 때론 우회적으로 때론 직접적으로 남성들, 그리고 더 크게는 대중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길거리에서는 입을 벌리며 여자들을 감상하시면서 술자리에서는 그런 여자들은 싸 보인다며 자신의 마초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남자들, 걸 그룹의 춤과 노래에 열광하며 음악은 다 듣고 뮤직비디오도 다 봐 놓고 너희 때문에 한국 음악이 망했다느니 요즘 아이돌은 다 똑같다느니 쉽게 키보드를 갈겨 대는 대중들을 통렬히 비판한다.
‘위선’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작사가의 센스도 일품이다. 특유의 악센트를 통해서 이 단어가 강조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도, 앞 소절의 ‘시선’이라는 단어와 병치되는 라임이 주는 리듬감도, 오버그라운드의 노래에서 잘 들을 수 없었던 단어 자체가 가진 맛도 모두 멋지다.
걸 그룹의 진화, 이제는 사랑 노래는 지겨워
이렇게 나름 혁신적인 노래를 부르고, 외모보다는 실력을 강조하려 하는 miss A인데 사실 이들의 등장을 대중들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이미 시장에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걸 그룹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9년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2NE1(투애니원)과 4minute(포미닛)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NE1은 강렬한 데뷔곡 ‘Fire’에서부터, ‘I don’t care’나 ‘Pretty Boy’, ‘날 따라 해봐요’에 이르기까지 YG의 전통적인 콘셉트인 ‘난 좀 짱’ 콘셉트를 유지해 왔다. 남자가 날 사랑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I don’t care), 예쁜 남자는 저리 가고 진짜 남자는 이리 오라(Pretty Boy)고 외치는 이들의 등장은 꽤나 센세이셔널 했다.
4minute의 행보도 심상치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주인공이라던 Hot Issue, 내 음악이 최고라며 신나게 떠들던 Muzik, 나는 다르고 내가 다 바꿔버리겠다던 멤버 현아의 솔로곡 Change, 다 같은 꿈은 지워버리라며 세상을 비웃는 HUH. 모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걸 그룹의 이미지이다.
과연 miss A에게 여기에서의 차별점이 있을까? 필자는 매우 큰 것이 있다고 본다. 2NE1과 4minute의 경우 콘셉트의 강렬함, 알파 걸의 이미지를 차용했을 뿐 음악의 가사에는 사실 딱히 메시지가 없었다. ‘내가 짱이니까 내 맘대로 하겠다’는 말을 반복할 뿐, 마치 어린양 같았다고나 할까. miss A의 ‘Bad Girl Good Girl’은 그러한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본다. 물론 단지 데뷔곡일 뿐이라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칭찬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아무튼 이 한 곡에서는 정확하게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간 과잉 해석을 보태면, 참 페미니즘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래서 이들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사랑 타령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 아이돌은 모두 비켜라
2007년 원더걸스와 빅뱅의 가요계 정복 이후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아이돌 열풍, 보이밴드와 걸 그룹 모두 그야말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들의 내용을 뜯어보면 커다란 차이점이 발견된다. 여자 아이돌이 좁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다양한 콘셉트를 도입하고 내실을 키워온 반면, 남자 아이돌은 여전히 사랑 타령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슈퍼주니어의 미인아, SS501(더블에스오공일)의 Love Ya, 2PM의 Without U, 2AM의 죽어도 못 보내, 엠블랙의 Y, 비스트의 Shock, C.N.BLUE(씨엔블루)의 Love, 제국의아이들의 하루 종일. 보이밴드들이 불렀던 노래들은 제목에서부터 사랑 노래임을 뽐내고 있는 노래들이다. 노래 장르나 구성만 조금씩 다를 뿐 하고 있는 말은 모두 다 천편일률적이다. ‘네가 없어서, 네가 떠나려고 해서, 너 없이는 못 살겠으니 내게로 와라, 이유를 말해 봐라’ 그나마 좀 다른 것이 ‘너 없이도 멋지게 잘 살 것이다’ 수준이다.
반면 걸 그룹들의 경우 아직은 그 다양성이 엄청난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보이밴드의 그것보다는 매우 나은 상황이다. 티아라의 Bo Peep Bo Peep, 소녀시대의 Oh!, 원더걸스의 2 Different Tears 등 달콤하거나 애절한 사랑 노래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시크릿의 Magic, 애프터스쿨의 Bang!은 우리가 멋진 것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우릴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4minute은 HUH, I my me mine, Change를 통해 일관되게 무언가를 바꿔버리겠단다. f(x)는 NU ABO에서는 난 기존의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혈액형(!)을 가졌다는 드립까지 친다.
이러한 남녀 차는 심지어 비와 이효리에게서도 발견된다. 비는 ‘널 붙잡을 노래’를 부르며 옷을 벗고, 반면 이효리는 ‘Chitty Chitty Bang Bang’을 외치며 내가 제일 최고라고 외친다. 우연의 일치일지라도 참 재밌다.
과거 아이돌의 경우 오히려 남자 아이돌이 노래 가사에 사회적 의미나 특별한 것들을 담으려 했었고, 여자 아이돌이 사랑 노래에 치중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트렌드는 더욱 더 재밌게 다가온다. HOT는 We are the future, 아이야, Outside Castle, 신화는 Yo!(악동보고서), god는 어머님께, 길, 동방신기는 오정반합을 불렀었고, 반면 SES는 I’m Your Girl, Oh my love, 핑클은 내 남자친구에게, 영원한 사랑, 쥬얼리는 니가 참 좋아를 불렀었다.
일시적인 트렌드로 끝나지 않길
걸 그룹 그리고 여자 가수들이 ‘내가 짱’, ‘내 맘대로 바꿔’, ‘난 새로워’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일시적인 세계의 트렌드라거나, 포화된 아이돌 시장에서 자리를 찾기 위한 철저한 상업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콘셉트는 철저히 기획사를 통해 ‘제작’된 것으로 그들의 상업적 판단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대중문화가 가진 한계 속에서 대중들이 이러한 코드를 선호하고, 상업 가요의 첨병인 걸 그룹이 이러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나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적어도 시답잖은 사랑 이야기만으로 한계가 지어지는 가요계보다야 당연히 낫다. 이제 사랑을 넘어서 여자들의 멋있는 척을 지나 남자들과 대중들을 비판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다음은 어디일까. 작자들의 이러한 시도가 일시적 트렌드에 그치지 않기를, 그래서 좀 더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노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