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에 스트레스 지수 200%를 초과한 L양. L양의 발걸음은 백화점으로 향하고, 마땅히 살 것은 없어도 시원한 매장에서 예쁜 물건들을 구경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순간 눈에 들어온 “선글라스 30% 세일”문구! 참아야한다, 참아야한다……. 30%를 할인해도 2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좌절한 L양은 통장잔고를 떠올리며 저가의 의류매장으로 향한다. 끓어오르는 쇼핑의 욕구를 다른 저렴한 물건으로 대체해 보려고 찾은 의류 매장은 대부분의 아이템이 무척이나 저렴해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선글라스를 구입했다면 지불했을 가격의 반의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티셔츠 몇 장과 반바지를 사들고 나온 L양. 저렴한 물건을 알뜰하게 구입했다고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기에 이렇게나 저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알뜰한 자취생이 된 뿌듯함이 곧 그 생각을 잊게 한다.

 


합리적 소비자 L양?

 L양은 스스로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했다고 자부한다. 제품에 대한 구매욕구가 있었으며 자신이 지불 가능한 액수를 염두하고 소비했다는 점에서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L양은 처음부터 선글라스가 필요해서 백화점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선글라스보다 저렴한 의류를 구입하였으나 티셔츠와 반바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구입한 것이 아니라 선글라스라는 고가의 제품을 구매하고 싶은 욕구를 저렴한 의류로 대체한 것뿐이다. 좀 더 생각해보면 L양에게 선글라스는 필요소비재가 아니다. 새 선글라스는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생활을 영위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L양의 소비가 문제라는 것일까. 자본주의 구조에서 생산과 소비는 수레를 굴러가게 하는 바퀴이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만 중단되더라도 세계의 경제는 지금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상태가 될 것이다. 이것이 인류 역사의 퇴보를 의미하지는 않으나 자본주의의 몰락임은 자명하다. 또한 구매자는 구매하는 대상으로부터의 만족도 얻지만 구매행위 자체로부터 얻는 만족 또한 크다.

 문제는 그녀의 선택이 단순히 개인의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동적인 소비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구매자가 하는 고민은 이 물건을 사고 싶은데 사야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이지 이 물건이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 졌는지, 이 소비를 통해 나와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물론 스스로 필수적 소비재(이 또한 소비자의 재정 상태와 환경 등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다.)라고 생각하여 나름대로 신중한 고민을 통해 소비할 수도 있다. 설령 신중한 고민 없이 제 돈을 제 마음대로 쓴다고 해도 L양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소비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진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2&aid=0000227410 >

‘다른 소비’, 윤리적 소비를 말하다.

 “에티컬 컨슈머리즘(Ethical Consumerism)”이라 불리는 윤리적 소비는 생산에서 유통, 소비와 사용, 이후의 처리와 재생에 이르기까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윤리적’ 상품에 지갑을 여는 것을 말한다(<윤리적소비>, 메디치, 박지희·김유진).

 한마디로 피곤한 쇼핑이다. 진열된 물건 중에 예뻐 보이거나 단순히 갖고 싶다는 욕망에 근거해서 장바구니에 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고민해서 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소비자는 똑똑해져야 한다. 제품의 원료와 유통과정, 수익 구조 정도는 알고 있어야 자신의 소비가 착한 소비인지 나쁜 소비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피곤한 쇼핑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아침, 당신의 얼굴에 바른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들에게 어떤 식으로 필요이상의 가혹한 실험이 행해졌는지 알고 있는가. 당신이 잠을 깨기 위해 마시는 커피를 위해 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수준의 급여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해 보았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는 상품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쓰레기가 발생하는지 아는가.

 현재 화장품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에 대한 이슈는 뜨거운 감자이다. 2004년 기준,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400만 마리 가량의 동물이 실험연구용으로 쓰이고 죽는데 이 중 화장품 연구는 사실상 대체 연구가 가능함에도 무분별하게 동물실험이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쥐나 햄스터 등의 설치류뿐 만이 아니라 토끼, 고양이, 개, 원숭이, 돼지, 염소 등등 각종 동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멕시코 오악사카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원주민은 커피 원두 1킬로그램(잔 당 4~5달러로 판매할 경우 200잔 정도의 양)을 팔아서 버는 돈이 25센트이다. 고작 25센트 말이다. 문제는 중간 상인과 대기업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커피시장의 구조이다. 그러나 요즘 곳곳의 커피 매장에서 공정무역을 통한 커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소비자의 선택이 커피 시장을 바꾸어 놓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초콜릿의 경우 소비자가 싼 가격의 초콜릿을 구입하기까지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쓰기만 하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를 생산하는 농장 노동자들은 하루 일당으로 평균 0.63달러를 받는다. 가나의 경우는 약 10만 여명의 어린이들이 농장에서 일하고 있고, 이들은 무거운 나무를 운반해야 하며 나무에서 추락할 위험까지 안고 일한다. 특히 싼 노동력을 희생시켜 카카오 생산을 급격하게 늘려서 원산지 가격은 폭락했다. 다행인 것은 몇몇 초콜릿 회사들이 공정거래를 통하여 원료를 구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형 마트에서 만나는 상품들은 재래시장보다 먼 거리의 유통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소비되는 에너지와 대량의 상품을 저장하기 위해 냉장·냉동의 보관을 위한 에너지 소비는 어마어마하다. 더욱이 대형마트 한 곳이 들어서면 주변의 점포 150여개가 문을 닫는다고 하니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자영업자는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lovemee2?Redirect=Log&logNo=70073778202 >


합리적소비의 가면

 L양은 결국 선글라스를 구입하지 않고 저가의 의류를 구입했다. L양이 알뜰한 소비를 했다고 자부하며 구입한 ‘ㄱ’ 브랜드의 의류. 이 브랜드는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매장으로 저가의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구비하고 있다. 이 브랜드가 이렇게 저가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생산비 절감이다. 이 브랜드는 몇 년 전 인도의 공장에서 협박과 구타를 가하고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한 것으로 보도 된 바 있다.

 결국 지출비용이 작았다는 점에서는 합리적인 소비라고 할 수 있으나 L양으로서는 마음의 짐을 안게 되었고 지구 반대편의 어린이 노동자들은 소액의 월급을 명목으로 교육의 기회와 아이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빼앗긴 셈이다.

<사진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8&aid=0001987421 >

세상을 바꾸는 소비

 똑똑하고 착한 소비자가 되어 윤리적 소비를 실천한다고 하면 세상이 얼마나 바뀔까? 어쩌면 착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의 즐거움 밖에 남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고착화된 현재의 시스템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감행하는 것이 무슨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개인의 소비가 모여 집단의 힘을 만들고 이는 기업을 바꾸고 제도를 바꿀 수 있다. 불과 4~5년 전 만해도 마트와 커피숍에서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커피를 사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당시에는 공정무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기까지 했다. 세상은 거북이 걸음일지라도 분명히 조금씩 변하고 있고 우리는 생활 속에서 착한 소비를 실천하기가 더욱 수월해 지고 있다. 단지 윤리적 소비를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채소와 과일들을 파는 직거래 상점이 늘기 시작했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안전한 화장품을 파는 브랜드는 꾸준한 성장세 덕분에 어디에서든지 구입하기가 수월 해 졌다. 한번 쓰고 버리는 비닐 봉투 대신 천으로 만든 쇼핑백을 제공하여 환경 보호를 유도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땀 흘려 일한 생산자에게 일한 만큼의 소득이 돌아가게 하고, 환경까지 챙길 수 있는 윤리적 소비. 이는 곧 나와 이웃, 그리고 모두를 생각하는 소비이다.

 이제 당신의 지갑에서 윤리적 소비의 카드를 꺼낼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