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꼬꼬마인 내게 서울은 무시무시한 빌딩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였다. 63빌딩의 아쿠아리움을 경험한 이후, 중딩인 내게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IN서울’을 외치며 공부하던 고딩인 내게 서울은 미래의 해방구였다. 온갖 수식어로 빛났던 서울은 지금 내가 사는 곳이다. 지금 내게 서울은 대한민국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이다. 처음 서울에 들어섰을 때의 생경함은 어느 새 익숙함이라는 단어로 둔갑하였다.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깔로 내게 어필한 서울. 서울을 소재로 한 9개의 단편소설묶음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를 당신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9명의 작가들이 활자로 표현한 소설의 모습은 어떠할까.

                                                                ▲출처 : http://www.hubrite.com/65

잿빛 서울, 단일화된 서울의 모습.

아홉 편 모두에서 서울의 모습은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 서울을 소재로 했다면 서울을 부각시켰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소설의 배경이 과연 서울인지 의문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도 있다. 소설에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을 밝히고 있는데 9명이 말하는 서울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소설 속 서울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우울함이 가득한 잿빛 세상이다. 장소 역시 지하철이나 강변, 거리에 국한되어 서술하였다. 묘사 또한 상당히 불친절하다. 필자가 서울에 익숙해지기 전에 읽은 신경숙의 ‘바이올렛’ 은 서울 거리의 모습을 서울에 가깝게 재현하게 했다. 그러나 서울에 익숙해진 지금 이신조의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과 강영숙의 ‘죽음의 도로’ 에 묘사된 서울의 거리와 지하철은 한없이 낯설기만 하다. 이혜경의 ‘북촌’ 은 제목이 서울의 특정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북촌의 모습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서울을 테마로 했다는 ‘테마소설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704223118673&p=imbc

나약한 여성, 무기력한 여성

9편의 작가는 모두 여성작가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린 여성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들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한없이 나약하다. 김애란의 ‘벌레들’ 에서 여성은 직장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편혜영의 ‘크림색 소파의 방’ 에서도 여성은 발령난 남편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하성란의 ‘1968년의 만우절’ 에서 나약한 여성이 끝내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할 뿐이다. 여성의 모습을 조금 더 진취적으로 그릴 수는 없었을까. 얼마 전, 통계청 조사결과 50세 이상 여성 열명 가운데 여덟 명은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2,30대 젊은 여성층에선 결혼은 선택이란 응답이 43%였다. 이러한 통계조사와는 상반되게 소설 속 여주인공들이 한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게 그려졌다. 반면, 권여선의 ‘빈 찻잔 놓기’ 는 여성 프로 시나리오 작가간의 암투를 보일락말락 그려냈다는 점에서 여타의 소설들과 달리 신선했다.


▲출처 : http://book.daum.net/review/media/read.do?seq=773337


9인9색, 살아 숨쉬는 개성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작가도 있지만 원래부터 알고 있던 작가도 있다. 문단계의 샛별인 김애란은 전작 ‘침이 고인다.’ 와 ‘달려라 아비.’ 를 통해 감탄한 바 있다. 편혜영 역시 ‘아오이 가든’ 이라는 하드고어 소설을 통해 소설책을 부여잡고 속을 게워낸 바 있다. 김애란의 감각적인 문체는 이번 단편 ‘벌레들’에서도 빛났으며 편혜영의 스릴러 기질은 ‘크림색 소파의 방’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주인공의 이름을 대문자 이니셜로 표현함으로써 익명성을 부각시킨 윤성희의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 과 김숨의 ‘내 비밀스런 이웃들’ 은 익명성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 냈다.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 는 주인공의 이름을 대문자 이니셜로 표현함으로써 익명성을 부각시켰고 ‘내 비밀스런 이웃들’은 비밀스러운 서술을 통해 익명성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서울, 2xxx년, 여름’ 이여, 오라.

언어영역을 공부하는 수험생에게 서울 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개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떠올리고는 한다. 이 소설 역시 암울하다. 서울살이 1년째인 내가 느끼기에 서울은 마냥 암울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어쩌면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이유로 많은 오명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오명을 한 껍질 한 껍질 벗겨내어 무덥지만 활기찬 서울의 모습이 그려진 ‘서울, 2xxx년 여름’ 이라는 소설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겨울의 쓸쓸함에 파묻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는 것도 의미있지만 여름의 무더위를 무찔러줄 ‘서울, 2xxx년 여름’ 의 탄생을 기대해 보며 이만 마무리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