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도 패셔니스타가 넘쳐나는 요즘, ‘옷 입기’ 이거 참 어려워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을 따라가자니 가랑이 찢어질 지경이고 신경 안 쓰고 입기에는 초라해 보이는 것 같아 오히려 신경이 더 쓰인다. TPO(Time, Place, Occasion)만 잘 따르면 중간은 간다는데 장소(Place) 하나만 따져서 입기도 어렵다. 저녁 약속 장소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인지 순대와 막창을 파는 곱창집인지도 중요하지만 강남의 막창집인지 종로에 있는 막창집인지도 중요해졌다.
 동네마다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연회장에 턱시도를 갖춰 입고 갔을 때 대접받고 당당해 지는 것처럼 동네의 분위기답게 입고 갔을 때 훨씬 편안하고 즐겁다.
 “청담동 까페 골목엔 명품가방이 제격이죠.”하는 된장 바른 소리 아닐까 오해하지 말길! 이 글은 그저 동네의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입고 싶어 하는 소심남녀들을 위한 간단한 지침서일 뿐이니.

신림동 고시촌

 신림동 고시촌을 비롯한 노량진과 각 대학교의 시험기간 중의 도서관의 모습. 이들은 언뜻 보면 ‘추리닝(결코 트레이닝복이 아니다!)’으로 요약할 수 있으나 이 세 곳은 각각 그 나름대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선 신림동 고시촌. 신림동은 사시, 외시, 행시 등등 장기간에 걸친 수험기간이 동반되는 시험 준비생들이 모인 곳이다. 그렇다보니 학교를 다니면서 신림동에서 강의를 듣고 독서실을 이용하는 타동네거주자들과 신림동거주자들이 나뉜다. 특히 대학교 학기 중에는 통학하는 학생들로 신림동 고시촌의 거리 뷰(view)에 약간의 활기가 넘친다. 이들은 최소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깔끔하면서도 편한 캐주얼을 고집하는데 여학생들의 경우 초반에는 옆으로 메는 가방으로 버티다 학기말 쯤 되면 등에 작은 배낭 하나씩 짊어지게 된다. 신림동 거주자들의 경우 다년간의 건강하고 활기찬 수험생활을 위해 추리닝이 일상복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이 또한 진도별 모의고사의 막바지 시즌이 되면 추리닝을 놓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비해 노량진의 경우 수험기간이 이 보다는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인지 수험생들의 차림은 스킨추리닝 상태가 되어있다. 이는 피부와 완전 밀착 된 듯한 추리닝 복장으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것은 예사이며 옷의 위·아래 어느 한 곳 중 늘어난 부분 한 곳은 꼭 있다.

 신림동과 노량진 학교 도서관 중 미학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패션을 볼 수 있는 곳은 물론 학교 도서관이다, 아무리 시험기간이라지만 간지를 잃을 수 없는 대학생들은 야구모자로 민낯과 다크 써클을 감추고 ‘트레이닝 룩’ 을 선보이며 밤 샜어도 아름다운 20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학교 도서관에 약간의 예외 사례가 있으니 바로 여대이다. 여대의 경우 삼색슬리퍼를 끌고 보름 정도는 날 수 있을 정도의 이불을 비롯한 각종 생활 용품 등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이사를 오는 학생들이 있다. 여대에 대한 환상을 위해 더는 상상에 맡겨 두기로 한다.

강남

 지리적으로 한강 이남을 의미하기보다 압구정, 청담, 신사, 논현동 등지를 말한다. 이들 지역 패션의 특징은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게 입지 말지니.”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압구정과 신사는 논현·청담보다 상대적으로 평균연령이 낮은 편으로, 특히 신사동 가로수 길의 경우 몇 년 사이 많은 이들이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되어 이곳을 찾는 연령층이 하향화되었다. 옷차림도 명동이나 강남역 등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홍대 놀이터 주변의 히피스타일과 락커 스타일의 ‘쎈’ 옷차림을 볼 수는 없다. 해골모양의 반지나 징이 2000개 쯤 달려있는 것 같은 조끼도 볼 수 없다. 대신 브랜드를 강조하거나 기본적인 아이템에 소품으로 화려함과 엣지를 더한다. 물론 여기서의 엣지는 명품가방이 주류를 이룬다.

 압구정과 신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견적이 한 번에 나오는 반면. 논현·청담의 경우는 심플한 룩에 개성 있는 디테일을 자랑하여 입는 이들에게는 “난 달라.”의 느낌을 선사해 준다.
 특히 이들 지역에서의 트레이닝 룩은 강남 거주자임을 표상하기도 하므로 무릎 나온 추리닝이나 모자 안에 대충 구겨 넣은 헤어스타일은 찾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서도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손님들이 많다는 점이다.

 

홍대

 홍대는 홍익대학교 주변을 지칭하는 지역으로 넓게는 합정, 상수를 비롯해 서교동, 동교동까지 계속해서 확장되어가는 곳이다.

 많은 공연장, 클럽 그리고 젊은이들의 공간이라는 분위기는 홍대를 자유로운 패션의 메카로 만들었다. 큼지막한 타투를 온몸에 한 사람들, 각양각색의 머리 색깔과 짙은 화장은 이곳이 홍대 앞임을 보여준다. 다른 동네라면 화려해서 쉽게 꺼내 입지 못했을 법한 의상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를 뜨겁게 달구고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게 한다. 힙합, 락, 히피 등등 다양한 문화 코드와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더라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고, 이런 차림들은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설명해 준다.
 이곳은 잘 차려입은 정장 느낌의 패션이라면 오히려 어색할 수 있다. 자신이 이 거리의 평균 연령을 높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또는 놀러 나온 젊은이들을 구경하러 온 것처럼 머쓱한 기분이 들 수 도 있다. 오히려 오늘 하루 파티를 즐기고 있는 듯이 독특한 모양의 머리띠를 하거나 그동안 입어보지 못한 파격적인 디자인의 옷을 고른다면 거리의 주인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또 뭘 입어야 할까 고민인 당신. 당신이 더운 날씨에는 무조건 시원한 게 최고지 라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혹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이 글이 무익할 것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옷을 입었을 때 느껴지는 시선이 유난히 부담스럽다거나 오히려 시선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동네별 패션스타일을 참고하길 바란다.

고시촌, 강남, 홍대, 어디로 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