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꼭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갖지 못한 그것, 열정. 열정으로 채우지 못한 허한 가슴을 새벽 2시의 라면과 치맥으로 달래는 당신에게 고한다.
 지금 막 열정에 눈 뜬 사람이 여기 있으니, 자극 좀 받아보시라.


 널 처음 만나는 고함20에는 어떻게 소개해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지망생’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이름은 박진우. 스물다섯. 인천대학교 휴학 중.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할 지도 모르는 지망생, 그 중 ‘배우 지망생’이야. 포장 좀 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청년 정도?”

 지망생, 수험생, 고시생, 장수생, 취업준비생. 어쩌면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직업일지 모르는 ‘-생’들. 이 중 미래가 결코 준비된 비단 길이 아닐 게 분명해 보이는 배우 지망생 박진우. 그런데 경영학과 멀쩡히 다니고, 군대까지 갔다 온 놈이 웬 배우냐?

 “경영학과는 가장 쓸데가 많을 것 같아서 갔어.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찾지 못했던 것 같아. 그러다 군대에서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친구를 만났는데, 매일 같이 연기 연습을 하던 그 친구를 보면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연극, 뮤지컬 같은 공연을 챙겨보던 내가 떠오르더라. 공연을 볼 때 느꼈던 뜨거운 무언가가 되살아나면서 ‘아, 내가 이걸 하고 싶은 사람이었구나.’ 싶었어.”

(왼)공연 전 분장을 한 박진우 군, (오) 무대에서 공연중인 모습 

 쉽게 팬질 할 수 있는 여자아이돌도 아니고, 고딩이라면 으레 밤새 열정을 태울 스타나 리니지도 아니고, 애 늙은이처럼 어
렸을 때 연극은 왜 좋아했냐고 묻자 그냥 좋았단다.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보고 듣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흐르는 소통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그는 진정한 경험주의자다. 요즘처럼 남이 보기 좋게 편집 해 놓은 블로그만 구경해도 세계여행을 할 수 있고, 이 여름날 골목 구석구석을 헤 집으며 찾아다니지 않아도 소문 안 난 보물 같은 맛 집까지 둘러볼 수 있는 시대에도 뭐든 직접 해봐야 한단다. 말뿐이 아니다. 배우의 길을 선택 한 후 직접 경험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1년 동안 연극 봉사활동을 하며 무대에서의 희열을 맛보았다. 초보 연기자가 1년 간 고생하면서 공연한 결과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었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 봐야 얻는 게 있고 또 그게 진짜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다른 이의 삶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연극은 그야말로 제대로 한 선택인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너는 그렇다 치고, 부모님 걱정이 만만치 않으실 텐데 허락은 받은 거냐고 물었다.

 “반대 안하실 부모님이 몇 분이나 계시겠어. 그걸로 밥벌이는 하겠냐 싶으시지.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렸더니 이제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으셔. 대신 지원은 없으니 알아서 해봐라 하시지. 평일엔 카페 아르바이트하고, 종종 엑스트라로 출연해서 번 돈으로 연기학원 다니고, 오디션도 보러 다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복학하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긴 해. 근데 자기 인생을 남이 살아주는 건 아니잖아? 틀린 거든 맞는 거든 일단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이 일이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나에게.”

오디션 중인 모습

 꿈이 뭐냐는 질문에 일단 연극으로 시작해서 중견 배우가 되면 영화 일을 하고 싶단다. 롤 모델은 설경구, 송강호 같은 연극 무대에서 먼저 인정받은 영화배우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채 안정된 직장을 꿈꾸며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고 있는 청춘이 20여만 명인 요즘, 끝이 보이지 않는 꿈을 좇는 너의 진짜 속셈은 뭐냐?

 “주변에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사는 친구들이 참 많아. 환경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 난 이 분야에서 10년은 버틸 생각이야. 그 때 까지 내내 배우가 아닌 ‘배우 지망생’이나 백수로 불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는 길이 힘들 뿐 열심히 배우고 오랫동안 버티면 분명히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처럼 멋진 무대에서 진짜 연기를 보여 줄 수 있게 되겠지.

 일찍부터 이쪽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 도 해. 그래도 지금 내 나이가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아. 얼마 전에 중학교 때 졸업앨범 보니까 ‘뭐든지 즐겁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썼더라구. 여전히 같은 생각이야. 즐겁게 열심히 하다 보면 지망생 박진우가 아니라 배우 박진우가 되어 있겠지.”

 쉴 틈 없이 바쁜 아르바이트와 극단에서의 연습, 단편영화 촬영 등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그의 생활에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있기는 할까 싶어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가장 경계하고 싶은 것이 게으름이란다. 학교에서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다 보니 가끔씩 멍해지기도 하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회의에 빠진다고. 그럴 때 마다 마음을 다잡고 가족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그의 열정의 자양분은 가족이다.

 끝으로 할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연극 좀 많이 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연극판이 너무 죽었다는 토로에 이 녀석, 벌써 연극인 다 됐구나 싶었다. 영화도 재밌지만 연극이 더 재밌다는 그의 말을 믿고 이번 주말엔 연극 공연장 좀 찾아야겠다. 최소한 10년은 연극에 도전하겠다는데 그 전에 연극판이 무너지면 이 녀석의 열정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질 것만 같다.

 잠시 그가 보고 있던 책을 펼쳐 들었다. 뒤늦게 연기를 시작해서 단역부터 차근차근 거쳐 온 배우 류승수씨의 <나 같은 배우 되지마-부제: 조연처럼 부딪치고 주연처럼 빛나라>. 류승수씨가 후배들이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쓴 책인데 요즘 이 책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무심코 펼쳐든 페이지에 써있는 글귀가 들어온다.

“열정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딱 가진 만큼만 그 모습을 비춘다.”

 배우 지망생 박진우의 열정 역시 넘치도록 솔직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