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라는 단어로 번역되곤 하는 페미니즘은 과연,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대로 ‘여성’만을 위한 학문인가? 대다수의 남성들은 ‘꼴페미’ 운운하면서 마초적 남성성을 거부하고 여성의 권리를 증진시키려는 운동 정도로 여성주의를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남자 대학생들이 있다. 대체 이들에게 ‘여성주의’란 어떤 의미일까. 어느 더웠던 날 이른 아침, 서울대입구역 주변의 한 카페에서 김정석(서울대 정치학·06학번) 씨와 정수환(서울대 경제학·08학번) 씨를 만났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정석 : 사실 처음부터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접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까 반 분위기 덕에 처음 접할 기회가 있었죠. 새내기 시절 3월 8일 여성의 날 행사 때부터 시작해서 반에서 여성주의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남학우와 여학우의 관계를 중심으로 반 생활을 어떻게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이야기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죠.
정수환 : 사실 처음엔 페미니즘에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거부감마저 있었어요. 제가 남고를 나왔는데 보통 남고를 나온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식 같은 것 말이죠. 여성부가 군 가산점제 이야기를 할 때 함께 비판 혹은 비난을 한다든가 이런 거요.
그런데 대학 첫 학기에 들은 수업에서 선생님이 추천하신 책 중에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 거짓말’이라는 챕터가 인상 깊었거든요. 마침 그 즈음에 반 학생회에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길래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하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네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어떤 말들을 하나요?
김정석 : 사실 우리 학교 안에서도 여성주의에 관심이 별로 없거나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이에요. 왜 ‘남녀평등’이 아니라 ‘여성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것 혹은 남성이 역차별 당하는 경우들을 이야기하며 여성주의를 부정하죠. 그래서 그런지 보통은 이야기가 애초에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정수환 : 고등학교 때 하던 도서부 후배들이 1박 2일 캠프에서 여성주의를 토론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대학생이었던 저도 함께 참석했는데, 후배들이 여성주의 토론을 여성부를 성토하는 것으로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성주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더니 후배들이 저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는데 그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제가 정말 페미니스트가 맞긴 한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김정석 : 딱히 바로 생각나는 건 없어요. 뭐가 달라졌나? 음.. 다만 이전에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던 것들 말이죠. 한 번씩 더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술자리에서의 러브샷? 이성끼리 하는 건 물론이고, 동성끼리 하는 것도 별로인 것 같네요.
정수환 : 알면 행동이 변한다고 하잖아요. 의식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사물이나 현상에 예전에는 잘 몰랐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조금 불편하기도 하죠. 신경 쓸 일이 많으니까. 하지만 편해지기도 했어요. 여성주의를 공부한 주변 사람들이 다 같이 의식하면 내가 불쾌할 일이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여성들에게 마저 외면당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요. 이런 것에 대해선 어떤 의견이십니까?
김정석 : 여성주의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성주의란 개념 자체가 여성 문제, 여성의 억압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이 외면받는 것과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외면받는 것이 딱히 다른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정수환 : 피부로 와 닿지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여성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대부분 뭐랄까 ‘남보원’적이에요.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고, 남성의 권리를 빼앗아 여성에게로 가져오는 것이 여성주의라는 식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죠. 소위 ‘꼴페미’론 말이에요. 그래서 여성들도 ‘여성주의’가 오히려 여성들을 욕먹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렇다면 진정한 페미니즘, 여성주의가 의미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수환 : 페미니즘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바꿀 것’을 요구해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과정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이에요. 익숙하게 살아왔던 부분에 대해서 공격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것을 의식하고 고쳐야 하는 점에서 조금 불편하기도 하죠. 음, 익숙했던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대체해야 할 때 느끼는 불편함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원인의 하나인 것 같기도 하네요.
김정석 : 여성주의는 성 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으로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름이 여성주의라고 해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위 ‘남성주의’로 불리는 매스큘리즘(masculism)도 여성주의 안에 포괄될 수 있는 부분인 듯 합니다.
또한 여성주의를 공부하면 나,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 내가 속해 있는 과/반 공동체를 좀 더 편안한 환경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 이런 것이 생활 속의 여성주의인 것 같네요.
사실 많은 공부들이 그렇지만 페미니즘 역시 마찬가지죠. 관심은 가고 알아보고는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사람들에게 공부할 거리를 추천해 주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정석 : 아무래도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이론적인 책 보다는 좀 더 재밌는 책들이 낫겠죠. <여성 해방과 혁명>이나 <이갈리아의 딸들> 추천합니다. 그리고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될 만한 웹툰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나 ‘콘스탄쯔 이야기’ 꼭 보세요. 재밌습니다.
정수환 : 로즈마리 통이 쓴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책도 좋고요. 이론을 접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새 여성학 강의>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도 좋아요. 그리고 전 페미니즘을 생각할 때 책도 책이지만 실제 인터넷에서의 젠더에 대한 논쟁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학문의 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밖의 실제 세계가 어떤지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김정석 : 사실 전 일반적으로 대학가에 많은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와는 다르게 약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적인 성격이에요. 그래서 조금 다른 부분도 있죠. 여성주의 자체가 이렇게 다양한 부분, 다양한 생각들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에 대해서 이건 여성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성주의는 여성이 억압받고 있으니까, 남성이 여성에게 잘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유치한 학문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남성, 여성 모두를 위한 학문입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여성보다 남성이 살기 편한 것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임금도 여성이 동등한 업무를 하는 남성에 비해 30% 정도를 적게 받고요. 남성 중심적으로 형성된 문화도 여성에게는 불리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여성주의를 그들만의 노력으로 보는 것은 마치 내가 뺨 다섯 대 맞는데, 옆 사람이 뺨 열 대 맞는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과 똑같아요. 함께 뺨을 안 맞을 생각을 하는 게 정상적인 것 아닌가요?
정수환 : 남성들에게 있어 페미니즘이 ‘매너’의 수준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을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말이 있어요. 현 시점에서 남성이 우위에 있는 성이 맞기 때문에 이득을 보는 것도 있지만, 남성들 개개인도 강요된 남성성이라든지 다른 문제들로 인해 억압받고 불편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필수적이에요. 군대 논쟁과 같은 이슈 몇 개에 페미니즘이 가려지고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남자도 ‘남자는 술 잘 마셔야 한다’, ‘남자는 힘이 세니까 일을 해야 한다’, ‘남자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와 같은 강요된 규범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에게…… 여성주의란?
김정석 : 여성주의란 편한 것이에요. 운동, 행동을 통해서 서로의 공감대를 얻어가면서,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점점 더 편해지는 과정입니다.
정수환 : 제게 여성주의는 좋은 것입니다. 억압이나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는 옳은 방향이자 가능성을 갖고 있는 ‘좋은’ 것 말입니다. 사실 여성주의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참 힘든 것 같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