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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신간, 짜릿한 감동이 있는 청춘소설

고전소설 ‘운영전’ 은 궁녀 운영과 김 진사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궁중에 갇혀 사는 궁녀의 몸인 운영과 김 진사는 ‘특’ 과 ‘무녀’의 도움으로 수성 궁의 담을 넘나들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나 이 두 매개자는 사실 흑심을 품은 방해꾼에 가까웠다. 그 시절에 두 사람 사이에 전화기가 있었다면 그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전화기가 있었다면 ‘따르릉’ 전화벨 소리만으로도 상대를 알아챘을 듯하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는 소설이 하나 있으니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전화벨 소리를 통해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까.


소설을 관통하는 전화벨소리
그리고 작가가 곳곳에 뿌린 의미장치.

소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전화벨 소리가 등장한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내.가.그.쪽.으.로.갈.까. 에필로그의 제목은 내.가.그.쪽.으.로.갈.게 이다. 전화벨소리를 듣고 서로의 음성을 확인한 그들은 서로를 향해 손짓한다. 그만큼 소설에서 전화벨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살아남은 윤과 명서를 이어주는 매개가 될 뿐만 아니라, 죽은 미루와 윤과의 대화 도중에도 전화벨이 간간히 울리기 때문이다. 제목에도 등장하는 전화벨소리는 소통을 노크하는 상징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작가가 밝힌 바 있다. 소설의 제목에도 사연이 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는 시인 최승자(58)의 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제목이 길어져 ‘끊임없이’라는 말을 제하고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어디선가’는 그냥 뒀다”는 것이 작가가 밝히는 뒷얘기다. 소설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프 이야기 또한 윤교수의 입에서 윤의 입으로 이어질 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당신은 크리스토프입니까 아니면 그의 등에 업힌아이입니까 하고 묻는 듯하다. 작가의 생각은 윤 교수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진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강물을 건너야 해. …(중략)…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으르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 역설을 잘 음미하는 학생만이 무사히 저쪽 언덕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p.62)

결코 가볍지 않은, 무자극성의
아프고 쓰린 청춘소설

청춘소설은 대개 성장통을 그려내는 동시에 독자에게 풋풋함을 주고는 한다. 황순원의 ‘소나기’ 는 청춘소설의 공식이라고 할 만큼 흠 잡을 데 없는 청춘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 역시 공식을 잘 따르고 있으며 후반부에 ‘소나기’ 에 버금가는 진한 감동을 준다. 신경숙 작가는 일본소설들이 젊은이들의 청춘을 대변하는 현실을 아쉬워하며 우리말로 된 청춘소설이 각광받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일본의 청춘소설들은 대개 자극적이고 가벼운 데 반해 이 소설은 꾸밈없고 다소 장중하다. 언니 미루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거식증에 걸린 미래, 학생 운동하다 죽은 애인을 따라 투신하는 미루, 힘든 군대생활을 견디다 의문사를 당하는 단이. 세 인물은 소설의 장중함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단이의 단짝 윤, 미루의 단짝 명서는 이들의 아픔을 실제로 보고, 듣고 함께 가슴아파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중한 시대 역시 학생운동을 통해 드러나는데 소설에서 시대적 아픔은 인물에 각각 투영되어 나타난다. 작가는 자극성 대신 아픔을 사용함으로써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100603050720960&p=seoul

표지부터 구성방식까지
볼 것 많은 종합선물세트

샛노란 소설책의 표지 그림은 John Atkinson Grimshaw(존 앳킨슨 그림쇼)의 ‘Wharfedale(와피데일)’ 이다. 와피데일은 영국 요크셔데일의 한 골짜기다. 표지 그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혼과 어우러져 황량감을 준다. 네 인물이 펼치는 이야기를 만나기 전에 독자에게 아픔이 밀어닥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미상관식 기법과 소설 한 챕터의 말미에 ‘명서’의 생각이 담긴 갈색노트를 수록한 것은 소설을 탄탄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고양이의 이름이 에밀리인 것과 윤이 좋아하는 시인이 에밀리 디킨슨인 것은 절묘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에서 그의 음악적 소양을 드러내어 잘 녹여낸다. 신경숙 작가 또한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이번 소설에서 마음껏 펼쳤다고 볼 수 있다. 소설에 인용된 몰랐던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소설이 주는 묘미다.

책 제목처럼 어디선가 당신을 찾는 감동이 소리소문없이 밀려온다. 필자 역시 어느 순간 ‘아’ 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앞부분으로 돌아가 되새김질하곤 했다. 독자의 감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명치를 자극하는 짜릿한 감동이 오는 순간은 있다. ‘아’ 하는 감동을 느끼고 싶은 당신,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는 건 어떨지.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 Comment
  1. NILNILIST

    2010년 8월 19일 11:25

    이야기는 하계숙의 통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살 파먹는 글쓰기 작가 신경숙의 외딴방. 두꺼운 소설책 한 권을 엮어낼 만큼 그 안에 갇혀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그녀는 외딴방의 문을 굳이 열고 싶지는 않았다. 외딴방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온 내장을 게워내는 행위와 같았기 때문이다. 왜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방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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