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못 내는 기자도 있고, 쓰기 싫은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도 있다. 고함 20의 기자가 되기 전엔 바빠서, 글이 잘 안써져서, 기삿거리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핑계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일단 적어라’그게 무엇이든 쓰고 나면 생각이 정리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라고.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말해왔던 핑계를 둘러대고 있음을 발견했다. 내 다이어리 한 켠에는 생각 날 때마다 적어둔 기삿거리가 쓰이지 못한 채 쌓여만 간다. 휴학생의 신분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는데 아직까지 내 글이 고함20의 이름으로 발행된 기사가 많지 않다. 아니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 내가 왜 기자를 꿈꿔왔을까?

저널리스트,

단어 자체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고, 새로운 생각들을 책에서 발견하기라도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때. 누구의 말처럼 인간과 정의의 눈으로 ‘사람’ 만나는 작업을 하는 저널리스트의 능력이 놀라워 보였다. 불과 글 쓰는 사람의 시각과 개성을 알 수 있는 창조물에서 난 세상을 움직이는 ‘필력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꿈은 조금씩 구체화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6월의 그날을 생각해보았다. 고함20의 정기자 지원서도 다시 꺼내 보았고 5장이나 되는 글들을 쭉 훑어보았다. 맞춤법이 많이 틀려있었고,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으며, 드문드문 단락에 맞지 않는 문장도 보였다. 하지만 꼭 하고 싶다는 열정, 그리고 현실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 보다 남달랐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이전에 본 고함 20엔 세상을 보는 신선함과 독특한 관찰력이 존재했다. 나도 그만큼의 영향력 있는 글을 써야겠다, 젊고 신선한 논리로 글을 풀어 써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개월이었다. 일기나 메모가 아니라 나는 가독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유롭게 글 쓰는 것이 아니라 틀과 시선에 갇혀서 손이 나가지 않는 막막함, 좀더 창의적인 글은 써야 하고, 전문가처럼 완벽한 논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핑계의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치기어린 정의감과 책임의식이었다.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들이 하는 것인데 나 자신에게 시작부터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허황된 욕심으로 첫술에 배 부를 수 없는데, 글을 좀더 포장하기에 급급했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시작은 설렘과 부담감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억지로 꾸미려 들지 말고 솔직한 글을 쓰자. 다른 기삿글에서 답을 찾기 급급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나만의 개성있는 글을 쓰자. 아직까지 첫발떼기에 불과해 충일한 불안감이 내 머리속 어딘가 반쯤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흉몽이 수면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비율보다 균형미 넘치는 내적 갈등이라면 제법 견딜만하지 않을까? 

출처: http://chanyi.tistory.com/entry/%EC%B5%9C%EC%83%81%EC%9C%84%EA%B6%8C-%ED%95%99%EC%83%9D%EC%9D%98-%EB%82%B4%EC%8B%A0-%EA%B4%80%EB%A6%AC%EB%B0%A9%EB%B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