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기차보다 버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필자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인데, 내가 가야 하는 지방을 갈 때 버스가 더 편하고 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필자의 고향인 전주와 서울 간의 교통 운임은 무궁화호의 경우 고속버스 우등보다 비싸거나 비슷하고, 새마을호나 KTX를 이용한다면 거의 버스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요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주까지 걸리는 시간도 버스가 30분 정도 덜 걸린다. 우등 버스를 타면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좋고, 일반 버스를 타더라도 그 싼 맛이 좋다. 심지어 가끔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에 걸리기라도 하면 일반 버스에서 2자리를 혼자 사용할 수 있는 행운이 따르기도 하니 버스를 선호할 수밖에.

하지만 명절만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하기라도 하는 날엔, 집에 가는 게 싫어질 정도다. 뭔가 서울에 고립된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분명 아직 버스표는 구할 수 있는데 말이다. 기차는 명절에도 같은 운행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 고등학교 한국지리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정시성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버스는 몰려나온 다른 자동차들과 함께 고속도로 주차장에서 멈춰 있기 일쑤다. 몇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안개 속에서 하염 없이 끝없는 잠에 빠져야 한다. 하지만 뭐 어떤가, 말 그대로 열심히 자다 보면 도착해 있는 게 버스의 매력이기도 한데 말이다. 고속버스를 타기 꺼려지는 이유는 고속도로 위가 아니라 버스터미널 안에 있다.

추석연휴 터미널 풍경 ⓒ 헤럴드미디어

명절의 고속버스터미널은 그야말로 ‘사람지옥’이다. 평소에도 유동인구의 밀집도가 매우 높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센트럴시티)에는 명절이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사람들의 대이동 행렬은 시작된다. 지상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병목 현상을 제대로 느끼며 버스탑승게이트에 다다르는 순간 놀랄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싶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 등이 몰려 터미널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고속버스회사에서도 예상할 수 없었던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버스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기 시작하면 버스회사로서는 대책이 없는 것이다. 버스 하나가 제 시간에 출발하지 못하게 되면 버스 시간은 뒤로 밀리고 밀려 그 끝이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게 된다. 승객들은 예매한 버스 시간에 맞춰 탑승하러 타는 곳을 찾아오지만,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6시 표를 예약한 사람이 5시 50분 경에 도착해 보면, 3시 30분 표를 가진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고 6시 버스는 8시나 되야 들어오는 식이다.

차라리 모든 노선의 모든 버스가 똑같이 연착되는 것이라거나 하면 기분이라도 덜 상할텐데, 일부 도시로 가는 버스들은 제 시간에 잘 들어온다. 심지어, 똑같은 행선지의 버스들도 버스 회사에 따라 그 운영이 별개다. 예를 들어, 똑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두 고속버스회사가 있다고 하자. A고속버스회사의 버스들은 제 시간에 운행되고 있고, B고속버스회사의 버스들은 2시간씩 연착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A고속버스회사의 버스에 빈자리가 나도, B고속버스회사의 표를 가진 사람은 A고속버스회사의 버스에 탑승할 수 없다. 회사들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라 쳐도, 승객의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하고, 열받고, 어이없는 일인가.

(승객들은 일반적으로 버스표를 예매할 때, 어느 회사의 버스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을 보고 선택할 뿐이다. 더 빠른 시간의 버스를 예매했는데, 내가 고르지도 않은 버스회사의 잘못으로 인해 늦은 시간 표를 예매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버스를 타는 걸 보는 건 참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게다.)

추석연휴 터미널 풍경 ⓒ 머니투데이

물론 명절 연휴라는 특성상 고속도로 사정이 안 좋은 것도 당연히 알고 있고, 명절에는 관광버스들까지 고속버스터미널에 투입되어 터미널이 더 혼잡한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한 짜증’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버스가 언제 들어올지 등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을 죽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라도 잠시 다녀오면 내가 타야할 버스가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애만 태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제자리에서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자면, (고속버스회사별로 표를 구분하는 것과 같은) 너무도 비합리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방송에서는 ‘xx행 버스가 고속도로 사정으로 인해 운행 지연되고 있어 죄송합니다’라는 의례적인 멘트만 들려줄 뿐,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나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갈 수 있는지와 같은 정보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명절 때만이라도 버스 회사들 간에 표를 구분하지 않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한다던가, 티켓 발권시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서 버스연착정보를 문자로 발송해 준다던가, 혹은 방송이나 대형 스크린 화면을 통해서라도 공지한다던가 하는 작은 아이디어들로도 승객들의 불편을 꽤나 많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객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지금 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고수한다면, 명절 때마다 계속되는 고속버스 승객들의 짜증은 더욱 커져만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