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재미의 핵심, 고전




20대 초반인 나는 아직 좋아하는 책과 싫어하는 책에 대한 감각이 날 서있지 않다. 하지만 기대치는 높아 최신 베스트셀러들도 큰 인상을 남기는 것들이 많지 않다. 그리하여 책 대신 영화와 한 동안 외도하던 시절도 있다. 하지만 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활자의 풍요로움을 온 감각으로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 “고전”이라 하겠다.







청소년기, 유명 책들은 거의 섭렵했다는 자기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청소년용 짧은 압축본을 많이도 읽었다.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읽은 것으로 여기기만 했던 고전들은 나에게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한 그저 줄거리집일 뿐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고전이 이해가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역시 고전의 맛을 담지 못하고 편집된 청소년 전집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소설에서는 형식적 즐거움과 독창적 기교, 동시대의 고민을 느껴볼 수 있는 대신 고전소설에는 밀도 있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범접할 수 있는 아우라가 있다. 대부분의 고전을 읽게 되면 시대만 다를 뿐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한 인간의 심연의 모습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가 막연히 느꼈던 인간에 대한 이해를 구체적인 모양으로 형상화 시킨다.



오늘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고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E.M. 포스터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멜로드라마를 통하여 명상하는 소설가” E.M.포스터




E.M. 포스터의 소설은 주로 연애 등의 일상적 플롯을 바탕으로 영국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소설가로서보다 사회개혁가로써 힘썼던 포스터의 지성이 작품 전체에 드러나 있어 소설적 재미와 지적 만족감을 동시에 충족시켜준다.


포스터는 20세기 초반의 영국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의식은 현재의 것과 다르지 않다.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도록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기에 독자가 주체적으로 자신과 소설과의 연결속의 의미를 만들며 읽을 수 있다. 책 마다 두드러지는 문제의 층위들이 다르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묘사하고 있어 누구나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의 작품들은 달콤하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아 챕터가 넘어갈 때 마다 예측하지 못한 전개에 놀라게 된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게 되면 전형성을 탈피하기가 어렵다지만, 한 권을 읽고 ‘비슷하지 않을까..’ 예단하며 읽는 다른 한 권은 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또한 그의 문체는 다른 소설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그의 글은 쓸데없는 문장이 없이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아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을 예리하게 제시한다. 그가 묘사하는 영국, 인도 특히 이탈리아를 만끽하는 것 역시 큰 즐거움이다.




E.M. 포스터 입문 코스

포스터의 대표작은 「전망 좋은 방」이지만, 나는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으로 입문하기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포스터의 첫 번째 장편 소설로 짧고 매혹적이라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젊은 영국인 미망인 릴라는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무일푼의 이탈리아 청년과 약혼하고, 그녀의 약혼 소식에 놀란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에 가까운 이탈리아인들과 영국인들의 대조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두 번째 선택은 앞서 언급한 「전망 좋은 방」이나 「모리스」가 좋겠다. 「전망 좋은 방」은 포스터의 작품 중 가장 행복하고 로맨틱하다는 평을 받아 대중과 평단 둘 다를 만족시킨 작품이다. 「모리스」는 동성애자였던 작가 본인의 경험과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에 대한 고민을 담았던 솔직한 작품으로 작가 사후에나 출간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앞의 작품들을 통해 감동과 즐거움을 느꼈다면 조금 두툼한 책들인 「하워즈 엔드」와 「기나긴 여행」으로 더 깊은 만족을 누릴 수 있다. 작가 자신이 각각 ‘가장 뛰어난 작품’과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을 만큼 사회의 여러 풍경을 심도 있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모든 책들을 섭렵했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고전 작품을 영화로 옮긴 경우, 원작 팬들까지 만족시킨 경우는 드물지만 포스터의 작품들을 원작으로 한 다섯 편의 영화는 수작이다. 활자를 영상으로 그대로 옮긴 동어반복도 아니고, 원작의 아름다운 느낌을 망쳐놓지도 않아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고 하니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시대의 통찰력을 읽다. 

나의 글로는 이 명작들의 아름다움을 모두는 담아낼 수 없다. 포스터의 글은 설명 할수록 그의 독창성이 가려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감성과 이성에서 동시에 종소리가 울리던 무한한 즐거움을 느꼈고. 내가 쓰는 글들은 이미 쓰인 글의 재팅일 뿐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충격과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희열, 책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만찬을 가져다주었다.

이 글에서 소개한 포스터 뿐 아니라, 다른 고전들 역시 오랜 시간 동안 평가가 누적되어 현대까지 살아남은 작품이기에 저마다 제공하는 즐거움이 있다. 인류에서 가장 통찰력이 빼어난 이들이 그렸던 한 시대의 모습은 여행만큼이나 큰 즐거움을 준다. 책 읽는 가을, 포스터의 작품들을 통해 그 동안 도외시했던 고전의 첫 걸음을 디뎌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