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주제를 선정하던 회의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눈앞에 떨어진 주제 ‘쿨함’. 개인적으로 다른 주제를 밀던 터라 갑자기 ‘쿨함’이라는 단어로 어떤 연상을 할 수 있을지가 너무 막막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아무래도 생각이 하나의 단어에서 멈추었다. 대중문화연구 영역에서 주로 쓰이는 ‘전유’라는 단어였다.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만, 이 단어가 설명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그야말로 ‘쿨함’ 그 자체이다.
원초적인 쿨함 : 쿨하게 집어가기, 내 꺼야!
여행을 가서 숙소에 있는 샴푸, 비누, 수건, 로션 따위를 가방에 쓸어 담는 어떤 아줌마들. 카페를 갈 때마다 냅킨을 잔뜩 챙겨서 두고두고 쓰는 누군가. 회사 물건을 마음대로 갖다 썼던 방송인 에이미. 다른 사람이 마시던 커피를 한 입에 원샷하며 웃음을 주는 박명수. 이들이 바로 ‘전유’의 사전적 의미를 현실에서 정확하게 실천한 인물들의 명단이다.
전유는 남의 것을 가로채는 일이나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을 일컫는 영단어 poaching의 번역어이다.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혼자 독차지하여 가짐’이라는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전유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빠를 듯하다. 전유의 기본적인 의미는 이와 같이 공공적인 물건이나 여럿이 쓰는 물건, 혹은 남의 것을 허락 없이 개인의 것으로 독차지 하는 행동이다.
참~ 쿨하다. 뭔가 남의 눈이나 시선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실현하는 굉장히 원초적인 쿨함이다.
(이미지출처 : http://blog.naver.com/jya910/70039926051)
쿨한 네티즌들 : 쿨하게 뻬앗기, 이건 몰랐지?
대중문화연구에서 쓰이는 ‘전유’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어떤 형태의 문화자본을 수용한 뒤, 그것을 그 문화자본의 원래 소유자에게 적대적으로 바꾸어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이러한 작용은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에 대한 패러디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쉬운 예로, 가수 지드래곤의 ‘Heartbreaker’를 패러디한 한 네티즌의 ‘표절 Breaker’를 들어 보자. 2009년 솔로앨범 발매와 함께 표절시비에 휘말렸으나 아무런 대응이나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지드래곤. 그가 계속 활동을 지속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네티즌들이 그의 노래를 그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Ctrl+C C C C C 눌러’와 같은 가사로.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시내버스 체계를 개편했을 때 벌어졌던 상황도 인상적이다. 당시 서울시는 버스들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Green(초록), Red(빨강), Yellow(노랑), Blue(파랑)의 색깔을 버스에 입혔다. 그러나 졸속 처리된 버스체계개편안이 극심한 교통체증 등 많은 문제를 발생시킴에 따라, 네티즌들이 또 한 건을 저지른다. GRYB을 색깔의 이니셜이 아닌 ‘지랄염병’의 이니셜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참~ 쿨하다. 이 쿨함은 그저 어떤 문맥적인 의미 이런 것 상관 없다. 이러는 이들이 찌질하게 보이나? 허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네티즌 덕에 살맛이 나기에 이들에게 ‘쿨함’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은 건 필자만의 바람일까.
(이미지출처 : http://blog.naver.com/blueviol/140003862179)
솔직한 쿨함 : 쿨하게 말하기, 나 이런 사람이야!
문화의 원래 소유자에게 적대적인 방식 말고 다른 전유의 방법도 있다. 바로 애초에 사용자가 대상을 비하할 의도로 사용한 단어를 스스로가 수용하여 긍정적인 의미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여러 갈래 중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그간 페미니즘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새각했던 ‘여성성’을 오히려 ‘남성성’에 대응하는 긍정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격상시키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은 성역할에 대한 규정 등을 거부했던 다른 페미니스트와는 달리 자신들의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을 통해 가부장제적인 가치에 대한 비판 활동을 하려고 하였다.
동성애자들의 경우, 애초에 이성애자들이 그들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던 단어인 ‘퀴어(Queer)’를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짓는데 사용하고 있다. 박진영을 대표로 한 많은 가수들은 예능인들을 비하하던 용어였던 ‘딴따라’를 오히려 스스로 사용하면서 쿨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버린다. 놀리려고 했는데, ‘그래 놀릴테면 놀려봐!’ 하니 놀릴 수가 없게 되버리는 것이다.

참~ 쿨하다. ‘놀릴테면 놀려봐, 난 상관도 안 한다구’ 부럽고 갖고 싶은 쿨함이다.

(이미지출처 : http://blog.naver.com/stepjyj/80109417738)
이런 솔직함이 쿨함 아닐까
‘쿨함’이라는 단어로 글을 써보라니 당황스러워서 약간은 ‘망작’이 나온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고 보니 ‘쿨함’에 대해 약간은 감이 온 듯도 하다. 전유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이런 다양한 모습의 솔직함이 바로 진짜 ‘쿨함’ 아닐까. 
나 저것 갖고 싶어. 내 돈 내고 이 호텔 이용한 건데, 저 정도 로션 가져가는 건 내 자유 아니야? 내가 회사에 뼈빠지게 돈 벌어다 주는데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는 회사 물건 좀 쓰는 게 어때. 나 니가 그런 노래 부르는 것, 그런 말 하는 것 못마땅해. 어이없으니 너도 당해봐. 너 나를 놀려? 놀릴테면 놀려봐라. 난 니 말 상관하지 않는다.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그냥 그냥 그냥 나는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