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4분기를 지난 시점. 대학가에서 올해 가장 뜨거운 이슈로 올라왔던 것은 중앙대가 아닌가 싶다. 작년 말, 중앙대 구조조정 문제가 논란이 되어 올해 까지 여파를 미쳤다. 이와 관련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던 학생이 퇴학당하는 한편, 중앙대는 작년 7월 교지를 통폐합하고, 11월 [중앙문화]를 강제 수거하였으며 [중앙문화]와 [녹지]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였다. 이러한 위기에도 교지 [중앙문화]는 모금을 통해 무 제호를 발행하고, 끊임없이 학교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었다.

아이템 회의에서 대학의 기업화와 언론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중앙문화]의 재기를 인터뷰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앙문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중앙대 구조조정문제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토론을 했던 경험이 떠올라 선뜻 취재하겠다고 나섰다.

의혈과 함께하는 진보언론 – [중앙문화]를 만나다.

  

Q. 자기소개를 좀 해 달라.

A. 현재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편집장을 맡고 있다. 본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09학번 강남규라고 한다.


Q. 본인은 언제부터 중앙문화에 참여하게 됐나.


A. 올해 2학기 때부터, 그러니깐 무 제호를 만들 때부터 수습으로 들어왔다. 중앙문화에 58호를 보고 꽂혀서 들어왔는데, 학교에 탄압을 받고 있던 상황 속에서 저항하고 있는 모습에 더 끌렸던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토익, 학점 공부만 하는 삶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가슴 뛰는 일에 뛰어 들고 싶었다. 무 제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재정적 문제, 그리고 학교가 저희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 원래 있던 임원진 분들은 이번 학기를 쉬기로 했다. 비록 수습이었지만 현재 편집장을 맡게 되었다.

Q. 중앙문화는 언제 처음 만들어 졌나.

52년 첫 발행되었고 군사정권하에서 오랫동안 휴간을 했다. 그리고 80년대에 다시 발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 지고 있다.
 

Q.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중앙문화]는 어떤 형태의 언론인가.

A. 학보사가 일주일에 한번정도의 기간을 두고 신문지 형태로 발행하는 반면, 중앙문화는 잡지 형태로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1학기에 한권 발행한다. 교지라고 보면 된다.

Q. 강제 수거된 58호, 어떤 내용이었나.

A. 메인 제목부터가 ‘대학에 정치적인 것이 사라진다.’ 이다. 학교가 기업화 되면서 정치적인 것을 주장하는 학생들이 탄압을 당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치적인 것에 무관심한 것을 ‘쿨함’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최대의 이슈였던 중앙대의 구조조정에 대한 글이 실려 있고,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안타까움과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20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Q. 58호 내용이 매우 적나라하던데..

A. 우리도 학교를 무조건 싫어하거나 비판하지만은 않는다. 58호가 출간 될 당시 상황이 적나라한 비판을 받을 만 했다.

Q. 58호가 강제 수거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A. 총장님에 관한 만화를 실었는데, 총장을 조롱하고, 총장의 권위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강제 수거되었다. 솔직히 적나라하긴 했지만, 언론의 기능은 비판이 아닐까 싶다. 비판을 실었다고 해서 탄압받는 시절은 지나지 않았나?

교칙을 어겼다는 항목으로 예산도 삭감 당했다. 중앙대학교 학칙에는 대학 내 비 정기, 정기 간행물은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헌법은 승인이 아닌 신고제로 되어있는데, 우리 학교는 언론매체부장을 거쳐 다음으로 총장이 검토한 후에 승인을 받아야 발간이 가능하다. 58호는 언론매체부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발간되었고, 이 때문에 예산이 삭감되었다.

Q. 학칙을 준수하여 발행할 수는 없었나.

A.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위헌 소지가 있는 그 절차를 따르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중앙문화의 존재 이유는 학보사 [중대신문]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그곳은 스스로 학교에 비판적인 소리를 내기 어렵다. 교지보다 더욱 발행 절차가 복잡하고 관리도 심하기 때문이다. [중대신문]에서 ‘학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학교 측에서 ‘학우’라는 말이 정치적이니 ‘학생’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60~70년대의 학칙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현재, 대학 내에서 말도 안 되는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학교의 경우도 언론탄압의 형태가 잔존해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학보사나 교지 같은 경우 책을 편집실에서 만들면, 학교에서 선발한 교수진 5명 정도의 평가를 거치고 발간되게 된다. 그래서 학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교지의 발간 주기가 불규칙하고, 아예 발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이 언론탄압을 받는 시대라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Q. [중앙문화]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나.

A. 많이 응원해주셨다. 대부분 관심을 가져 주시고, 학교일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중앙문화]는 살려야 한다고 해주셨다. 반면, 학교 돈 받으면서 왜 학교를 비판 하냐,, 이번 기회에 아애 없애 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Q. 예산삭감이후, 가장 힘들었던 적은?

A. 아까 답했듯이 예산삭감 이후 무 제호 기획을 시작한 뒤 중반에 들어왔다. 그래서 예산 삭감이후 초창기의 어려움을 직접 겪지는 않았다. 예산을 다시 돌려달라고 집회를 해도, 학교가 계속 들어주지 않아서 답답했다. 그 전에는 학생회비에 [중앙문화]에 지원되는 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원금이 등록금에 포함되어 있었던 형태에서 지금은 자율납부 형태로 바뀌었다. 자율납부란 따로 고지서를 만들어서 자율적으로 [중앙문화] 항목에 돈을 낼 수도 있고 내지 않아도 되는 형태를 말한다.

Q. 자율납부 형태로 바뀐 이후, 예산문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데.

A. 자율납부금이 3900만원이 걷혔다. 원래 학교에서 지원해 주던 금액은 3500만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큰돈이었다. 자율납부 형태로 바뀌고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걱정도 많이 했다. 결과가 좋아서 계속 교지를 발행할 수 있었고, 처음에 1인 광고금을 통해 무 제호를 냈던 것에 비하면 정말 큰 힘이 되는 관심이었다. 다만, 이러한 관심이 언제까지 갈지 몰라 걱정도 된다.

Q. [중앙문화]에서 집회를 했다던데, 어떤 집회였나.

A. ‘언론장례식’을 했다.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책이 든 관을 들고 본관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 때, 총장이 본관을 지나가다가 고려대 김지윤 씨가 [중앙문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고려대 학생이 왜 중앙대에 있냐며 학교를 나가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Q. 중앙대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A. 새터 폐지 논란도 일었었고, 학교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학교는 우리학교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우리학교의 전체적 분위기는 학교의 일들에 무관심하다. 명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생각으로 구조조정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아니다. 현실적인 것을 뛰어 넘는 것 같다. 예술사적으로 말하면, 초현실주의?(웃음)

Q. 많은 언론의 관심, 어떠했나.

A. 월간조선, 한겨레 21 등 많은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기사들은 대부분, 대학의 기업화에 초점을 맞춰 중앙문화는 하나의 상징적 기구로 비추어 지는 것에 그쳤다. 대학의 기업화에서 희생된 하나의 가련한 학생단체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를 하나의 언론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대학의 기업화에 저항했고, 탄압받았던 상징적 단체가 아니라, 대학의 부조리한 모습에 저항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있는 체제를 개혁하려는 하나의 언론단체로 봐주었으며 좋겠다.

대학의 기업화라는 이슈에 박힌 미화된 언론이 아닌, 대학의 언론탄압, 교지, 학보사 언론의 자유가 부재된 현재를 비판하는 진정한 언론매체 그 자체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Q. [중앙문화]의 최근소식이 궁금하다.

A. 최근에 학교랑 협상을 했다. [중앙문화]가 자치기구로 독립하고, 예산 자율납부는 유지하는 하에서 학칙에 벗어나 자율적으로 교지를 낼 수 있도록 협상을 했다. 그동안의 굳게 닫은 입장과는 달리 협상에 적극 나서서 의외인 한편,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Q. 솔직한 답변 잘 들었다. 앞으로 중앙문화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11월 중순에 교지를 낼 예정이다. 박탈당하는 권리들을 대변하고, 구조조정 문제가 있었을 때 퇴학된 학생에 대해서 쓸 예정이다. G20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이주노동자를 국외로 추방하거나, 노점상을 강제로 철거하는 등의 사태에 대해서도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 복지 차원에서는 토론의 장을 형성 할 수 있는 ‘생활도서관’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건의사항을 적을 예정이다.

Q. 앞으로의 활동 관심을 가지고 보겠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나.

A. [중앙문화]의 기조가 ‘의혈과 함께하는 진보언론’이다. 당당하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기조라고 생각한다. 이 기조를 강조하고 싶다.

*

[중앙문화]는 하나의 상징적 교지가 아닌, 어떤 언론보다 더욱 열정적이고, 본분을 다하는 진정한 대학언론 그 자체였다. 인터뷰 전에 생각했던 기사 전반의 내용은 ‘대학의 기업화와 언론 탄압에 굴하지 않았던 교지’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용감한 교지의 재기를 감동 있게 다루려한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난 후, 기업화 되는 대학에 저항하는 용기의 상징으로 이끌어 내려했던 처음 구상에 대한 반성과 함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와 같이 진정한 의제를 놓친 언론이 많았던 모양이다. [중앙문화]의 강제 수거와 예산 삭감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대학의 언론탄압을 의제로 비판한 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언론은 중앙대 구조조정 문제를 대학의 기업화로 엮어 보도했고, 이에 반대하던 교지가 탄압을 당했다는 내용은 학생들의 반발의 한 상징으로 덧붙였다. 이러한 기사들을 보며 강남규씨가 안타까워한 심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학의 언론이 탄압당하고 있다. 학교가 하는 일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 그리고 위헌 소지가 있는 교칙을 위반 했다는 등의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대학 언론이 아닌 대학의 기업화가 사회의 선택이었다. 언론과 독자들은 대학에는 더 이상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의 여지없이 언론이 선택한 의제에 맞춰 사고한다. 대학언론의 탄압, 언론의 자유를 이루어 낸(이루었다고 생각 한) 이 시점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