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나르시시즘

투명한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어느 순간 불투명한 무언가가 자신의 옅은 솜털조차 사르르 떨리게 만든다. 살며시 찾아온 그 아름다운 존재는 신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는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촉촉한 눈빛을 머금고 나를 점점 더 자신에게 스며들게 만들어버리고, 나는 그 스며듦에 반항을 하지 않는다. 수면에 나의 코를 갖다 대어 그의 따뜻함을 느끼고, 가느다란 목까지 드리눕자 그는 나의 고통을 모두 씻어준다. 어느 순간 숨 쉬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 순간조차, 나에겐 아름다움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데, 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디에 갔을까? 나의 신은 어디로 갔는가……………….숨소리가 희미해져 온다. 잠겨져 온다.   새하얀 수선화가 야리한 목을 내리운 채, 그 자리에 고즈란히 서있다.

 


아름다운 청년 나르시스가 제우스의 벌을 받으러 갔다가 자신인 줄 모르고 너무 아름다운 존재와 사랑에 빠지다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은 이야기다
.


보통 자기 자신을 어떠한 아름다운 것보다 갈고 닦고
, 사랑하는 사람을 나르시시즘에 빠졌다고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외모, 성품, 행동가짐, 눈빛, 매무새를 바라보면서 양팔을 스스로 부드럽게 감싸며 웃음지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청년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거울 볼 시간조차 없이, 무작정 숨이 턱에 차올라 멎을 때까지 뛰고 있다. 심지어 잠시 멈추어 땀을 닦을 시간도 없는 것이 대다수 청년들의 삶이다.

너 들었어? 쟤 토익 980 나왔대!, 나 너무 부러워. 난 맨날 해도 안되고 바본가봐….” , “너 여휘선배 대우증권 자산관리사로 들어간 거 알아?”, 뭐 증권사 한둘 들어갔냐? 대부분 선배들이 증권사나 금융계 가는데, 아니면 공무원이지 뭐 있어?”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하늘을 바라본다.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기보다, 오히려 가슴을 힘껏 치고 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눈에선 건조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미안하다! 자신아, 너를 사랑하고 이뻐해줘야 하는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남을 사랑하기보다 오히려 시기나 질투심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 속 비어있는 곳을 헤집어도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 불안감에 남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부러워하게 된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모른 채

 

  자신의 아름다움. 도대체 그것은 어디에 있는것인가.

  자신을 사랑하는 이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한 아름다운 이를 바라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지 못해서 죽을 지경이다. 외모는 그를 처음 보는 순간 미소보다는 고개를 그냥 돌려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이 있다. 그는 어떠한 것을 하더라도, 웅크리지 않고 고개를 뻗뻗히 내세우는 자신감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사고와 소소한 주위에 대한 기쁨을 느끼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다른 아름다운 이를 쫒지 않고 자신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만족하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어깨를 곧게 세우고 걸어간다. 찌르르되는 매미소리와 아름답게 펴있는 코스모스를 동반자 삼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어떻게 해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빈 공간의 멋, 여유와 여운을 느껴 본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그냥 무작정 하기보다 중간 정류장에서의 슬그머니 뒤돌아보는 여유과 오는 길을 머릿 속에서 생각해서 은근(慇懃)한 미소를 지어본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고, 먼 발치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다른 이와의 조화.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다른 이를 사랑하고 보듬어주고 같이 걸어나가면 자신의 참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 때부터 자신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