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경험

5년 전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시각이 서서히 상실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해상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세상이32pixel, 16pixel, 8pixel로 점차 사그라지더니 세상의 불이 다 꺼져버렸다너무 갑작스런 일이라사용할 수 있는 다른 감각들은 불완전해서 눈을 만져 보아도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달리는 버스 안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위급한 상황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사소하거나 엉뚱한 것으로손에 들린 새 책을 못 읽을 지도 모른다는 것그리고 내가 버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어딘가에 갇힌 것이 아닐까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가를 고민했다그리고 혹시나 살짝 엇나갔을지도 모르는 신경들을 접합하기 위해 나는 지직거리는 TV를 때리듯 내 머리를 쳤다.


 

<어둠 속의 대화>를 즐기는 법

그 후로 시각을 상실한다는 설정은 언제나 나의 핵심 모티프가 되었다. 나의 세계가 상실되는 압도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전시 중에서도 <어둠 속의 대화>는 나와 같은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이다. <어둠 속의 대화>는 눈을 뜨는 것과 감는 것에 차이가 없는 어둠 속에서 1시간 30분간 진행되는 체험형 전시이다. 자연, 도심, 보트, 카페 등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안에는 관람객을 도와주는 로드마스터가, 내 손에는 나를 도와줄 지팡이가 쥐어진다



이 전시를 즐기는 첫 번째 팁은, 자신이 실제 어디에 있는지를 잊는 것이다. 이 곳이 어둡다는 사실도 잊고 나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이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3차원 투시도를 그리기보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감각들로 공간을 채워 넣는 게 좋다. 나의 경우 이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유추하는데 신경 쓰다 보니 사고가 고층빌딩의 9층이라는 제약에 갇히고 말아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위치해 있는 물리적 공간을 초월하여 경험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다면 자신만의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팁은 다른 관람자들과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 어디에 있는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고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감상을 공유하는 것은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무언가가 창조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감상 방법도 풍요로워 질 것이다.

 

내가 본 매트릭스의 세계

나는 한 발 앞의 공간이 어디인 지 알 수 없으며 내가 받는 느낌으로 유추한 상황이 맞다는 것을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다. 촉감과 소리, 냄새를 누군가 조금만 다르게 제공한다면 나는 기꺼이 강의실을 카페로, 화장실을 부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극대화된 상황은 보트를 타는 부분이다. 보트의 엔진 소리, 좌우로 흔들리는 보트, 거세게 부는 바람을 통해 나는 정말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다고 느낀다. 시각이 닫힌 세계는 다른 감각을 조작함으로써 실제와 다른 현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매트릭스에서 실제의 나는 캡슐 안에 들어있다고 느끼지는 못하지만 실상은 그런 것과 같다. 하지만 매트릭스가 부정적인 공간이라면 <어둠 속의 대화>가 제공하는 공간은 내가 능동적으로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공간이다

시각이 차단된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이 닫히는 것이 아니라 열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시각에 의해 세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지를 않는다. 우리는 음식들을 맛을 보기 전에 이미 시각으로 알아보고, 잔디의 냄새를 느끼기 전에 그 푸름을 느낀다. 맛을 느끼고 냄새를 느낀다고 해도, 내가 먹은 것이 김치이고 내가 맡은 냄새가 잔디라는 것은 눈으로 확인해야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시각은 언제나 우리에게 압도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시각을 중심으로 세계가 구성되고 다른 수단들은 부차적인 것이 되곤 한다. 시각이 닫힌 상황에서의 세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전체가 아닌 부분을 중심으로, 세계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색은 거의 제거되고 3차원은 평면이 된다고들 한다. 시각을 배제한 세계의 구성은 우리의 고정된 머리로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다른 감각으로만 구축한 세계는 내가 살고 있는 같은 곳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신세계가 아닐까


<어둠 속의 대화>에 아쉬운 점


어둠 속의 대화는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하지만 너무 기대치가 높았던 탓일까,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는 안내가 부족했다는 느낌이 든다. 프로그램의 짜임새도 이리저리 걸어가기만 하기 보다는 이것저것 더 만져보고, 이것을 느끼며 생각하는 명상의 시간 혹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생경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상황 설정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충격과 토론 거리를 준 것은 로드마스터님의 마지막 반전 뿐, 생각의 시간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한 시간 반이란 시간이 원래 감각을 깨우고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는 역시 한참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시각 정보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자, 나의 몸이 너무나 편안해 졌다. 편한 수면을 취한 것처럼 안구 건조증에 시달리는 눈도 촉촉해졌다. 나처럼 <어둠 속의 대화>에 편안함을 느낀 사람이라면,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도시의 야경에서 벗어나 나만의 어두운 공간에서 쉬고 싶을 것이다


전시정보
: 예매 필수,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 매주 월요일 휴관, 신촌 버티고 타워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