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도서관 시설이 상당히 잘 돼 있었다. 대학교도 아닌데 전문 사서 선생님이 있었고, 도서관 문화강좌도 활발히 열렸다. 1학년 때부터 이미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기에 본연의 기질을 살려 딴짓을 줄기차게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책읽기였다. 책읽기가 무슨 딴짓이냐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입시’라는 어마어마한 관문 통과를 앞둔 고등학생에게 한가하게 앉아 책 읽는 일은 도가 지나친 여유에 가까웠다. 책읽기를 벗삼다 보니 자연히 도서관과도 친해졌는데, 우연히 참여한 도서관 이벤트에 읽었던 책이 등장해 문제를 금방 맞춘 적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너, 행복하니?』라는 책이다. 고등학교-입시=0인 것만 같은 팍팍한 현실에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스스로 실천해 가는 당차고 야무진 10대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 그 책을 보고 나름 깨어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난 우물 중에서도 아주 작은 우물 안에서 버티고 있는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기에. 청소년 시절 접한 한 권의 책은 무지몽매한 나에게, 삶의 주인이 되어 기특하게 한 사람 분의 몫을 다하는 또래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비슷한 책을 만났다. 『내 안의 열 일곱』이라는.

 딴짓이 ‘딴짓’이 아닌 곳에서의 이야기 

 하자센터 작업장학교에서 대안교사로 있었던 저자는 그때 만났던 서른 명에 대한 얘기를 풀어 놓는다. 10대를 인생의 한 시기로 보기보다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받아들이는 숱한 사람들에게 대안학교 학생들은 그저 딴짓하며 헛물만 켜는 날라리들일 뿐이다. 하지만 하자센터의 친구들은 대부분 본인의 의사로 학교에 들어 왔을 정도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패션 디자이너, 락커, 영상 제작자 등 가지각색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나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도 알고, 그래서 필요할 때에는 교사에 말에 자유롭게 반박하기도 했다. 

 학기마다 본인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골라 이수하고 자기 평가서를 쓴다든가, 마음에 드는 동아리에 들어 맘껏 끼를 펼친다든가, 센터 안의 친구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한다든가 하는 센터 내 모든 일들이 그저 별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 건- 내가 너무나 반듯한(?) 교육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모르는 사람에게는 딴짓으로 보일만한 일들이 딴짓이 아니게 되는 곳에서 생활하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일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일반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친구들은 또래보다 더 앞서서 자기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방향 설정도 명확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하니까 따라 해 보고, 누가 권유하거나 강요해서 해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선택하는 연습을 먼저 해 봤으니 말이다. 일정한 답을 암기하도록 권유하는 문제집을 덮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읽는 것조차 딴짓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나는, 기껏해야 다섯 가지 답 중 똑바른 하나를 고르는 선택에만 익숙했다.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출처 : http://cfs14.tistory.com/image/32/tistory/2008/11/09/19/59/4916c27d0c620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는 아이들

 이 책은 교훈을 주기 위한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서 모든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맺어지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도중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외모 콤플렉스에서 못 벗어날 것 같은 친구가 나중에는 퍼포먼스 참여 이후 현명하게 그것을 극복해 꿈의 범위를 넓혔던 사례가 있어 뿌듯하다가도, 결국 본인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친구 이야기를 보면 금세 아쉬워지기도 하는 식이다. 관심사가 자주 바뀌는 덕에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다 시행착오 기간만 길었던 친구도 있었고, 너무나 제도권 교육에 잘 맞는 특성(?) 탓에 다시 돌아간 친구도 있었다.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 때 ‘아 이렇게 되겠구나’ 하고 예측할라 치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방향으로 튕겨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의 행보에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으나, 그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10대에게 어울리는 모습 같아 오히려 더 좋았다. 


대안학교 하자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직업체험교육

 
출처 : http://www.betanews.net/imagedb/thumb/2008/0807/3595c751.jpg

 청소년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에 변화를



 말로는 무심한 교사였다며 자책하는 저자는 사실 세심한 관찰자였고 아이들에게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던 것 같다. 필요할 때 조언을 해 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잃지 않으며 자라나도록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하지만 저자는 겸손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고 고백한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이들에게 자유와 책임 모두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곳에서 일하면서도, 교사라는 권위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일정한 상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다고 했을 때- 아이들에게 애정이 참 컸었구나, 하고 느꼈다.

 입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지도 벌써 4년 째. ‘성공적인 대학 입학’에 초점을 두고 모든 것이 진행되는 빡빡한 곳에서 지낸 탓일까. 학업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들을 얄미운 눈으로 보게 되고, 저래가지고 대학에는 갈 수 있을까 하며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인생에 정해진 답이 하나로 딱 존재하는 것은 아닌데, 은연 중에 고정된 성공의 길을 아이들에게 내심 강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대안학교 관련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럴수록 혼자 머릿속에 담고 있던 ‘대안학교 학생’에 대한 이미지가 제대로 자리 잡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사실 일반 고등학교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안학교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는 더 반가운 곳일 수도 있는데 나 역시도 꼰대마냥 대안학교나 대안학교 학생들의 이미지를 멋대로 가늠했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 책은 10대를 단순히 학생이라는 이름 안에 가두어 생각하지 않게 한다. 대안학교 학생들의 조금 특별한 나날을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미덕은 청소년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보는 관점을 길러주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항상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늘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시선은 사실 비틀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당신에게 권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