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별것 아닌 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요즘 희대의 잉여거리가 하나 더 발생했다. 바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이다. 어찌나 종목도 다양하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또 왜 그렇게 메달을 많이 따는지 진도 따라잡으려면 하루 종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선수들의 활약 소식에 함께 기뻐하며 춤만 추는 나날이라면 얼마나 좋으리. 그런데 이놈의 아시안게임은 씁쓸한 뒷맛을 자꾸 남긴다.

첫 번째 씁쓸함 : 병맛 방송국, 더 병맛인 네티즌
SBS가 단독 중계를 해도 문제더니, 세 방송사가 함께 중계를 해도 문제다. SBS의 동계올림픽, 월드컵 독점 중계를 문제 삼던 네티즌들은 이제는 차라리 SBS가 단독 중계할 때가 나았다고 성토하고 있다. 세 방송사가 모두 같은 종목, 인기 종목만을 중계하는 과거의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첫 날 유도 종목의 정경미, 황희태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은 제 시간에 전파를 타지 못했으며, 우리나라 선수끼리 정구 경기를 하는 모습도, 체조 도마의 양학선 선수가 환상의 금빛 착지를 타는 순간도 다른 인기 종목에 밀려 새벽의 하이라이트 방송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세 개의 방송사가 같은 화면만 틀어주는 것도 병맛이지만, 요즘은 네티즌들도 병맛놀이에 가세한 듯하다. 무조건 방송국만 욕하고 보는, 그러면 되는 줄 아는 네티즌들은 아시안게임 관련 기사마다 방송국이 문제다, 기자가 문제다라며 입에 담기 힘든 말까지 동원하여 방송국 비난에 나섰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 땄는데 중계도 안해주냐 이 방송국 xxx들아’, ‘비인기종목은 중계도 안해주냐 이 방송국 xxx들아’로 요약되는 네티즌들의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최근 우리나라의 효자종목으로 거듭나고 있는 사격 경기를 중계해 주지 않는다는 성토가 많은데, 사격 단체경기 및 일부 개인경기는 참가한 모든 선수가 60발을 격발한 후 그 합산 성적으로 메달색이 바로 결정되기 때문에 결선 경기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본선 60발 경기는 경기 시간이 3시간을 넘어갈 정도로 매우 긴 시간동안 치러지며, 송출되는 중계화면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볼링 종목 등도 마찬가지다.
비인기종목을 중계하지 않는다는 불평에는 ‘언제 너희가 비인기종목 중계를 해 주면 제대로 보기는 했니’라고 되물을 수 있겠다. 축구대표팀의 예선 경기와 정구대표선수의 결승 경기가 같은 시간에 열렸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금메달이 걸려 있는 중요한 경기는 후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축구를 보는 사람이 더욱 더 많다. 시청률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방송사 사정을 생각했을 때, 과연 어느 방송사가 정구를 중계할 것인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비인기종목이 인기종목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씁쓸함 : 편파판정만 문제냐, 편파중계도 있다!
‘편파판정만 없다면 남자 핸드볼은 단연 우승 전력.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아깝게 금메달 놓쳐.’ 그 놈의 편파판정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언제나 우리나라는 편파판정의 피해자였다. 쇼트트랙의 김동성, 기계체조의 양태영,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남녀 핸드볼팀 등이 판정의 희생양이 되었고, 국민적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문제는 편파판정 뿐일까. 내가 보기에는 이제 문제는 편파판정보다도 편파중계의 차원으로 넘어갔다. 증거가 확실하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에는 편파판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전인수’가 너무 심하면 그건 더 문제다. 아시안게임 중계방송을 보다보면 우리나라 선수들을 편파판정의 잠재적 피해자로, 심판을 잠재적 가해자로 놓고 중계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할 때가 많다.
이번에 방송을 보면서 가장 불편했을 때는 체조 경기 중계 모습이었다.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전을 중계하던 캐스터는 다른 나라 선수가 경기를 할 때는 팔이 떨리고 있는 것 같다느니, 각도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다느니, 착지가 불안한 것 같다느니 온갖 그 선수의 연기를 깎아 내리는 수사들을 붙여 중계를 하고, 우리나라 선수가 연기를 했을 때는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등으로 일관했다. 체조를 잘 모르는 내 눈으로 봐도 한 눈에 우리나라 선수의 연기가 약간 떨어져 보이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선수의 성적이 높게 나오고, 우리나라 선수의 성적이 낮게 나올 때 캐스터는 심판의 판정이 석연치 않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체조뿐만이 아니다. 유도의 왕기춘 선수가 연장 종료 16초를 남겨 놓고 유효를 내줘 골든 스코어로 패배했을 때도, 해설자의 첫 마디는 ‘저건 등이 닿은 게 아닌데요’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태권도 남자 87kg급의 박용현 선수가 결승전 경기에서 패색이 짙어졌을 때는 상대였던 이란 선수들의 경기 진행을 두고 ‘저건 아니죠’라는 말을 자주 뱉는 모습까지 나왔다. 물론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과 심판들, 그 스포츠 종목 자체의 스포츠 정신과 공정성까지 깎아내려가면서 우리나라 선수를 치켜세워야만 하는 것일까.

세 번째 씁쓸함 :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동북아 3국지인가요?
아시안게임이다. 40억 인구의 아시아에서 45개의 국가가 42개의 종목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메달 순위를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우리시간으로 11월 18일 오후 1시까지 나온 모든 금메달 180개 중 104개는 중국이, 나머지 76개 중에 47개의 금메달은 한국과 일본이 나눠가졌다. 한․중․일 세 나라가 무려 151개, 비율로는 84%에 이르는 금메달을 독식했다. 금, 은, 동메달을 모두 합쳐 봐도 세 나라는 583개의 메달 중 362개의 메달을 따내 62%의 메달을 독식해 가고 있다.
이쯤 되면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가히 ‘동북아 3국지’라고 할만도 하다. 나머지 42개의 국가들은 거의 들러리 수준이다. 어찌나 국가의 경제력, 정치적 영향력에 스포츠 성적이 비례하는지 전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가 아니라, 국력 재확인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력이 뛰어난 국가의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능력이 뛰어나서 스포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일까? 그럴 리가.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 자체가 직간접적으로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엄을 자랑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들이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그런 의도로 생각하고 스포츠 진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당연히 경제력이 높은 국가가 스포츠도 더 잘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올림픽에도 일면 그러한 면이 있지만, 타고난 신체적 능력이 월등한 아프리카 선수들이 육상 등의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며 세계인의 축제라는 느낌이라도 주는 올림픽에 비해서, 아시안게임은 수영이고 육상이고 구기종목이고 너무 한․중․일의 축제여서 더욱이 세 나라의 선전을 기분 좋게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 걸린 금메달 476개 중 200개나 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중국의 브레이크 없는 순항은 더더욱 아니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