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많은 생각을 하면서 반복해서 전시를 관람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가득 차 있던 나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에게 새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사진비엔날레에선 광주비엔날레의 종합성, 키아프의 국제성을 잘 살려내어 표현했다. 살얼음에 내딛는 것이 아니라, 사뿐사뿐 유영하듯 다가오는 느낌과 차분함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산뜻함을 요즘 꽤나 많이 느낀다. 국가장학생으로 같은 학교 경영학부에 재학 중인 인도네시아인 Randy Octamario를 보면 특유의 나른함을 볼 수 있었다. 그를 보면서 자카르타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보르네오의 울창한 숲을 떠올렸다. 키아프에서 본 에드윈 갤러리.

에드윈 갤러리에서는 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온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이유일까? 그 이상한 느낌은 우리에게 낯선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색채와 그것의 자아냄 그리고 양면적인 동물이기도하며 사람이기도하는 기이함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도 인도만큼 강렬한 색채를 내뿜었다.


 누구든지 AGAN HARAHAP의 작품에서 발랄한 유희적인 감각과 씁쓸함의 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들이 있었더라면? 그러면서 미국의 천민자본주의와 자국우월주의가 오히려 우리를 덮쳤더라면? 자신의 존재가치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스칸디나비안 팝을 사랑한다. 그들의 백야를 느끼고 싶고, 볼에 스며들고 싶다. 그들의 물질의 정신적 표현 방식. 가벼운 몸놀림과 같이 유유히 흐르며 여리한(수수한 바람에 자연스럽게 휘날리는 나만의 표현) 입꼬리 웃음을 머금고 있어 난 스칸디나비아로 향하고 싶었다그것의 집성체PERTTI KEKARAINEN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틸라로 모든 것을 정의한다. 핀란드어 틸라’(tila)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는 건축적 공간, 실내, 물체 사이의 공간과 거리, 대상 내부의 공간, 농장, 현상의 조건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마음의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사람은 개이라는 존재의 특징 하에 서로 느끼는 점이 다리다. 그는 방과 방 사이의 공간, 시각적인 환상, 자신만의 해석에 맡긴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공간의 인식과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단순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무취의 냄새와 어울리지 않는 음향.


수많은 이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났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뭘 배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보다 그들과 나는 공통된 지향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많이 했다. 이들을 직접 만나면 그것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그들을 비춰보면서 자신 삶의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무시한 채, 무딘 채로 살아갈 것인지 쉽게 찾을 것인지 수많은 혼란을 겪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RYAN TRECARTIN의 작품의 떠올랐다. 그는 뭐가 불안정하고 성정체성이 모호하고 잡다하고 무분별한 다른 차원의 현실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예술이란 자신의 삶을 찾아주기에 가장 적합한 사회적 활동이다. 21세기 시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쳐지기 쉽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휴식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의미를 되짚어 볼 수도 있다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감으로써 삶의 행복을 느끼고 더욱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Ryan Trecartin, That`s showbitz! ryankamstra.blogspot.com>



그것이 視聽空嗅觸自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