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학벌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너무 흔한 얘기라 말하는 입장에선 입이 아프고 듣는 입장에선 귀가 아픈 얘기다. 이런 이유로, 첫 수능의 결과를 받아들고 대학에 진학하는 순간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학벌에 대한 트라우마 하나씩을 갖게 된다. ‘한 문제만 더 맞혔다면’ 뭐 이런 생각도 꽤나 오래 가고 말이다.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만들어지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지만, 그렇다고 그 콤플렉스를 엉뚱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은 참 보기 안쓰러운 꼴이다.

법대생은 고개도 들고 다니지 말라니…

최근 들어 각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장 시끄러울 때는 총학생회 선거철도, 내년도 등록금 책정 시기도 아니다. 각종 고시나 시험의 합격자나 여러 기관에서 평가한 대학순위가 발표되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학보사에서도 이 사안에 대해서 항상 큰 지면을 할애해 보도하곤 한다. 문제는 합격자 순위, 대학순위 등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전년도의 결과, 다른 학교와의 비교를 통해 본인이 속한 대학을 평가하는 것이다. 

합격자의 수가 줄어들었거나, 혹은 다른 학교에게 합격자 순위에서 역전을 당했을 경우 학교와 학생들을 모두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가 고시를 보는 학생들을 위해 해 준 것이 없다는 불평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황당한 비난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올해 사법고시 2차 합격자 발표 당시 한 대학 커뮤니티에는 ‘법대생들은 고개도 들고 다니지 말라’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순위가 높아진 경우에는 동문회, 학보사, 학생들 너나 할 것 없이 성과를 칭찬하기에 바쁘고, 그것을 넘어서서 이제 우리학교의 수준이 다른 모 대학보다는 낫다는 식의 표현들을 내지르기에 바쁘다.

너는 너고, 학교는 학교야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정말 비정상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고작 눈에 보이는 순위로 학교의 높고 낮음을 평가해대는 꼴도 웃기지만, 대학의 순위가 올라가면 자신의 경쟁력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모종의 어리석음도 매우 우습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법대생도 아니고 사법고시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면서도 고시 결과를 보며 법대생들을 욕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 개인은 개인이고 학교는 학교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사회 각 분야에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한 대학이 현재의 학벌 서열 구조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학벌 프리미엄 따위를 등에 업는다고 해도,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없이는 성공한 삶을 살 수 없고, 성공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학교가 좋아져, 내 학벌이 좋아지면 나도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나라의 학벌주의는 강화된다. 겉으로는 학벌을 너무 따지는 우리나라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출신 학교가 다른 학교들을 앞서 학벌 프리미엄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aura20/60000345242)

불안감을 넘어선 집단적 정신 질환

‘학교 순위’에 개인들이 집착하는 기이한 현상은 신자유주의적인 무한 경쟁 사회에 놓인 개인들의 불안감의 투영일 수도 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자신이 목표하는 직업을 가지기는커녕 취업조차 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이 시점에, 학벌적인 우위라도 확보하여 불안감을 해소시키고자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불안감에 의해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개개인에 대해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다양한 내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학벌, 외모, 집안 등 피상적인 허상들에 주목하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의 집단적 정신 질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