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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노예로 전락하는 이유





앞의 글(우리 안의 노예근성_프롤로그)에서 살펴봤듯이, 이 시대의 사람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자아를 찾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에 동의해왔다. 그리하여 그 주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위해 몇 천 년간 권위적 제도와 싸워왔고 개인의 자유를 획득하였다. 하지만 자유가 생긴 인간들은 기꺼이 노예가 되어가고 있으며 주체적인 내가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나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 사회.


버스를 타고 성수대교 위를 지나갈 때, 어떻게 해야 다리가 무너져도 살아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찬가지다. 밤길을 걸어갈 때 주변 사람은 모두 적이며, 할머니가 길을 물어봐도 경계한다. 지하철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폭발물을 가진 것은 아닌가, 불을 지르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최대한 지하철에서 빨리 나갈 수 있는 루트를 생각한다.







이런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정신병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한 이러한 징후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였기 때문이다. 범죄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나, 흉악한 범죄 혹은 안전사고들을 접하는 빈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그에 비례하여 불안은 점점 더 늘어난다. 언제나 최악을 상상하는 습관은 이러한 공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역사적으로 공포를 조성하는 것은 효과적인 지배수단이었다.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지지 않는 공포를 지켜주는 대가로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게 주었다고 이야기 한다. 테러와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9.11을 통해 테러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관념이 확산된 미국 사회에서는, 개인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알몸 투시기를 허락하였고, 개개인을 무작위로 조사하는 것을 묵과하였으며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기꺼이 침묵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였고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게 양도하였다. 이는 공포 때문이다.


CCTV대수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범죄자의 인권보호를 규탄하는 것도, 이러한 공포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공포의 제거, 안전의 보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그 수단에 대해서는 둔감해 지는 것이 이 시대의 철학이 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공포


이 시대에 범람하는 공포는 단순히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공포뿐이 아니다. 그러한 공포에서 안전 지대를 찾았더라도 미래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래에 대한 공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를 사로잡아서 죽음을 맞이할 때 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을, 다른 사람의 모사가 아니라, 오롯이 내 자신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역시 넘쳐나는 공포가 한 몫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서 성공한 사람들은 TV에 자주 나오지만, 친척들 중에는 왜 이렇게 잘 된 사람만큼이나 어른 말을 듣지 않아 백수로 지내는 사람이 많은지. 네이버 지식in을 뒤져보면 꿈에 직접 뛰어들어 보기도 전에 그 꿈이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대학생 패션잡지인 『르 데뷰』의 편집장인 장은하씨는, “요즘 학생들은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해보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판단해요.”라고 말한다. 요즘 학생들은 무언가를 경험하기 이전에 그 경험하는 시간에 자신이 뒤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나이가 먹어감을 먼저 생각한다.





결정을 회피하는 사람들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식당에 갈 지 선뜻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자신이 선택한 장소의 맛과 가격과 분위기가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가고 싶은 장소가 없어서라기보다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남들과 다른 선택으로 인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다 하는 선택을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에게 선택의 결정권이 주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는 아도르노와 호크하이머의 대중론과도 상통한다. 대중들은 자신에게 권리가 주어지면 어쩔 줄을 모르며, 누군가가 자신의 길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현대 사회에서 정해진 길이란 다수가 따르는 길이며, 이를 따라갔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 Comment
  1. 메멘토모리

    2012년 1월 8일 05:08

    헉.. 이런 기사 댓글이 없다니 ㅠ 마지막 문단이 너무 공감됩니다. 제 삶의 모토가 ‘카스테라 몰려드는 개미 떼가 되지말자’와 ‘주류를 지양하자’는 것인데, 이게 지키기가 매우 힘들거든요. 마음 속에 담아둘게요. 멋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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