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예다. 새벽 다섯시면 나는 일어난다. 군복(건설 현장에선 값싸고 튼튼한 군복을 많이 입습니다.)을 챙기고 챙이 달린 붕어빵 모자를 쓴다. 안양 중앙 시장 앞에 줄을 선다. 말쑥한 그는 봉고차를 타고 내 앞에 온다. 그리고 손가락질하며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는 봉고차에 오른다. 일을 할 수 있게 뽑힌 것이다.

시공 중인 현장에 도착했다. 엊그제 김씨는 공사 현장에서 아시바(근골) 설치 중 발이 미끄러져 추락 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다치거나 죽는 것은 순간이다. 오야지(건설 현장 지도하는 관리자)는 묵묵히 서있었다. 그래도 나는 등골이 휘도록 짐을 날았다.

30여년, 공사판에서 각목 들고 다니는 어깨들과도 부대끼고, 이가 두 개 부러졌다. 그래도 나는 일을 해야 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공 현장에서 시멘트와 골재를 나르는 일 뿐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가장이 된다는 것은 또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내게는 대학생 아들과 딸이 있다. 그저 하루를 일하는 것이 삶의 전부이고, 그들의 나와바리(지역)에서 공구리(콘크리트)를 치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 먹고 살고자 사람 죽이는 일 빼곤 다 해봤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아 누구도 선뜻 나를 쓰려하지 않았다.

하루 일당 7만원, 30년차 관록으로 많이 받는 것이다. 한 달에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20여일이 되지 않는다. 가진 것은 몸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죽지 않고 일하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요즘 일자리가 늘지 않았다. 땅이 꽁꽁 어는 추운 날이면 일을 할 수 없다. 겨울은 모아둔 돈으로 살아야 한다. 내 가족도 나도. 그나마 돈도 바로주지 않는다. 쓰메끼리를 치기 때문에 15일 일을 채워야 받을 수 있다. 더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일을 한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짓는 건물은 내 것이 아니다. 이상하다, 건물은 점점 높이 올라가고, G20이다 뭐다 나랏님은 대단하다 떠들어 대는데 내 삶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대운하를 파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심 기대 했다. 하지만 착공 현장에 가보니 전부 기계로만 땅을 파고 있었다. 노가다 판만도 못한 그딴 운하를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

엇 그제 새파란 놈이 현장에서 일을 하겠다고 왔다. 내심 며칠이나 버티나 했는데, 벌써 일주일째다. 등록금을 벌어야 한단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나는 뼈가 접히도록 짐을 나르고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삼성 일가는 탱자탱자 놀면서 가만히 내가 번 돈의 수 억 배를 긁어모은다. 어릴 때 너무 배가 고파 빵을 훔친적 있다. 사정사정했지만 나는 결국 빵에서 2개월을 지냈다. 대기업 회장님은 아무리 사기를 쳐도 구속되지 않는단다. 나는 그런 놈들 주머니 챙겨줄 건물을 짓는 거다.

내가 어릴 때, 전태일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는 그나마 용기가 있어 몸에 불을 지르고 죽었다. 같이 일하는 최씨도 지난해 마누라가 도망가자 독극물을 마셨다. 죽는 건 똑같은데 인정받는 것도 다르다. 내 주위엔 전태일이 참 많은데,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자식새끼에겐 늘 일러둔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세상이 어떤 불의가 벌어져도,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그냥 너는 니 공부만 하라고, 그래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해서 잘 살라고. 당장 벌지 않으면 거리로 나 앉아야 한다고. 다음에 태어나면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자고. 그래서 돈 없다고 남 뒤치다꺼리 하지도 않고, 비루하게 굽신굽신 거리지도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