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2개의 기사를 통해 퀘스쳐닝에 대한 소개와 페미니즘 비판론자들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퀘스쳐닝의 경은, 화정 씨는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의 소수성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 속에 내재된 수많은 보편적 소수자성을 이야기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20대라는 세대는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나아가는 과도기 하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세대라는 점에서 소수자성을 지닌 세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20대라는 세대와 페미니즘 사이에는 접점, 교집합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20대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의 관점과 비전은 어떤 모습일까.

* 여성주의와 페미니즘은 거의 동의어이지만, 문장의 맥락상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어 하나로 통일시키지 않고 편의상 두 개의 단어를 문맥에 맞게 사용하였다.



Q. 20대라는 세대와 여성주의의 접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화정  지금의 20대는 많이 우울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매순간 불안감과 들쑥날쑥한 감정을 겪으며 사는데, 그런 속에서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한다는 게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고 철없는 소리로 생각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들 사회가 정해준 루트를 좇으려고 목을 맨다.

경은  많은 20대들은 취직해서 착취당하고 싶지는 않지만, 딱히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다른 길을 상상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다. 다른 길이 없진 않지만 분명 그냥 주어지지는 않는다. 노력이 필요하고 치러야 할 대가도 있을 것이고. 다른 길을 걸어보는 일탈이 자신의 소수자성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여성주의적인 다른 가능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가 말하는 ‘일반적인’ 길을 벗어나려고 할 때 스스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가진 것을 잃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 그렇게 생각만큼 불안하거나 힘들거나 외롭기만 한 건 아니다. 이 세상이 내가 하고 싶은 길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렇다면 어떤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더 있었으면 한다.

Q. 이러한 여성주의적인 ‘다른 길’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줄 수 있나.

경은  선본 시절에 후보자 약력에 ‘채식 시작’을 적었었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데 왜 이런 걸 적었나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경력’보다도 큰 경험이었다. 처음 채식을 시작하면서 채식으로 인해 내 인생이 훨씬 외로워지거나 힘들어지거나 그럴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채식을 시작한 이후에 맺을 수 있었던 관계들은, 채식을 하지 않는다면 맺을 수 없었던 관계였다. 채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들이 많이 펼쳐졌다.

그런 선택을 한 번이라도, 단기간이라도 ‘다른 길’에 대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라도 정말 큰 경험이 될 거라고 본다. 한 번의 약간은 일탈적인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런 경험이 굉장히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 번 해 보는 것의 중요성이다.

Q.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20대들에게 있어 여성주의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

경은  학교 문 안으로 들어올 때, 학교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여야 하는 나의 모습이 자기에게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귀찮아도 패션이나 얼굴에 신경을 써야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러한 불편함에 대해서 그리고 방안에 혼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느낌이 드는지에 대해서, 자기 자신도 잘 설명해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예민한 지점들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 않겠나. 그것을 여성주의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Q.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나?

화정  요즘 가장 느끼고 있는 변화는 생각하는 습관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삶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범주화했다. 원인은 이거고 결과는 이거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던지 내가 지금 힘든 것은 이것, 그리고 이것의 원인인 억압은 이것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을 했었다. 퀘스쳐닝 친구들과 만나 활동하고 이야기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의 축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 순간 내가 하나의 위치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는 굉장히 유동적이라는 것, 그런 예민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되뇌인다.

경은  일단은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생기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나 스스로 나를 특정한 모습으로 가장해야 하거나 그런 가면이 없는 관계가 생겼고 그러한 ‘다른 방식’의 관계맺음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변화다. 내가 말할 때, 내가 말하지 못하는 것까지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화정  사실 개인적으로는 운동도 하고 학생회도 했지만, 예전에는 3학년 때까지만 적당히 운동하다가 4학년 때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취직해서 돈 벌면서 살아갈 생각을 했었다. 퀘스쳐닝 친구들을 만나면서 삶 전반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상상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Q. 개인적인 꿈이 뭔지 궁금하다.

화정  서른 즈음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던 당시에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었지만 폭력적이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겪는 상처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도 없고, 그것을 언어화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주변의 도움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혼자서 끙끙 앓거나 또 다른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해 해결하는 것을 느낀다. 시골 학교에서 학생들과 같이 세미나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해보고 싶다.

경은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같이 하고 싶다. 뭐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사는 삶이 지속적으로 가능했으면 좋겠다.

화정  그런 삶을 실천해보기 위해서 최근에 작은 집을 하나 구해서 같이 살아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에게 주어진 획일화된 삶, 적당히 대학 나오고 적당히 취직해서 적당히 남자 여자 결혼하는 그런 삶을 좀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Q. 예전에 ‘남성 페미니스트’를 인터뷰할 때 페미니즘 공부거리로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를 추천해 주신 게 인상 깊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젠더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면?

화정  젠더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거나 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소수자성을 드러낼 수 있는 네트워크들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런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꼭 페미니즘 모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눈다던지 농구 소모임을 만든다던지 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모임을 만드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젠더적 감수성이 키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임만 있다고 자연스럽게 권력 관계가 극복되는 거라면 모든 과반도 다 평등한 관계가 되었을 텐데 그렇진 않지 않나.

경은  그런데 젠더적 감수성은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키워지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안다는 것은 상처 입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젠더적 감수성을 키우면 드러나는 자신의 소수성이나 자신이 받았던 사회적 억압에 대한 상처를 갖게 된다. 페미니즘을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지 말았으면 한다. ‘쿨’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을 때 너무 오히려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연세대 퀘스쳐닝(Questioning) 인터뷰 1편 보기 >> http://goham20.com/602 (낙선, 그러나 계속되는 여성주의)
연세대 퀘스쳐닝(Questioning) 인터뷰 2편 보기 >> http://goham20.com/603 (여성주의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말라)
연세대 퀘스쳐닝(Questioning) 인터뷰 3편 보기 >> http://goham20.com/604 (페미니즘으로 본 20대의 다른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