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수장으로 있는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달 23일 ‘파격적인 제도’를 제안했다. 매년 공정위가 하는 ‘동반성장 및 공정거래 협약 이행실적 평가’ 결과에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평가한 결과를 취합해 대기업의 상생 노력을 지수화하겠다고 밝혔다. 6개 산업군 총 56개 국내 유명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이 평가는 내년 2월 공개될 예정이다. 정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이익공유제도 언급했다. 이익공유제란 대기업이 연초 설정한 목표 이윤을 초과 달성했을 시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협력사 생산성 향상, 기술개발, 고용안정 등에 쓰는 것이다. 결국 이 날의 발표 핵심은 ▲ 동반성장지수를 계량화하겠다는 것, ▲ 이익공유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뉴스가 끝났다면 중소기업은 마음속으로 ‘오호 쾌재라’ 했을 테고, 대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나마 중소기업과의 상생과 동반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속되는 ‘정부 차원의 압박’은 그럭저럭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비록 올해 앞 다투어 인상하긴 했지만 지난해까지 다수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3% 이상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대학이 요청하는 지원금을 낮추거나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인상 폭도 동결 전에 비해 낮아졌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것은 ‘정부 차원의 압박’이 아니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름만 그럴싸할 뿐, 기업에 큰 영향력을 미칠 만한 깜냥도 가지고 있지 못한 신생 단체였다. 게다가 동반성장지수 관련 보도가 나간 이후 빗발치는 대기업과 친시장적 주류 언론의 등에 밀려 얼마 후에는 마치 얘기 꺼낸 적도 없던 것 마냥 잠잠해졌다. 경향신문은 24일 사설을 통해 동반성장지수 제도가 과연 성공할지 의문이라며 핵심을 꼬집었다. “(대기업은) 대통령이나 국민 앞에서는 ‘상생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상생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처럼 해놓고 뒤돌아서서는 이를 무력화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내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하도록 압박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권력은 이미 정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조차 식상해진 이때, 대기업들이 조금 우는 소리를 했더니 언론이 불씨에 불을 더 지핀다. 앞서 말했듯 친시장적 언론은 그네들 편의 입을 빌려 “동반성장지수는 대기업에 대한 인민재판”, “동반성장지수는 소비자 재앙” 등 자극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하며 동반성장지수에 문제가 있다고 위원회를 압박하고 있다. 누군가 기자는 남의 입을 빌려 자기가 하고픈 말을 하는 존재라 했던가. 자유기업원, 전경련의 입장이 흠결 없는 팩트라도 되는 듯 열심히 받아쓴다. 

 동반성장지수를 평가할 경우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게 되는 중소기업의 입장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이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이루어진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늘 뒷전이었던 중소기업에 빛이 드나 했더니 따져 볼 것이 많단다. 우선 실효성 여부에 의문을 품었다. 당장 납품이 끊길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기업을 감히 ‘평가하려 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기업이 만약 앙심을 품고 중소기업에 불이익이라도 준다면 어찌할 도리를 모르겠다는 것. 대기업 우선 성장을 목표로 해 달려온 한국 경제 상황에서 늘 최대 수혜자가 되는 것은 대기업이었다. 지난 해 ‘폭풍성장’을 이룩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굴지의 대기업들의 성공 뒤에는 판매 단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 숨어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 과정에서 희생하는 쪽은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대기업-중소기업이 한 쪽으로 힘이 쏠린 불균형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대기업에 비해 당장 불리한 점이 많더라도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제도에 대한 건설적인 발전방향을 구상하고, 대기업에게 이익공유제의 이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동안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눈치만 보느라 자신들의 목소리 내기에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닐까. 우는 아이 달랜다는 옛말을 잘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대기업과 언론의 비난 공세에 시달렸던 정 위원장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의외로 차근차근 일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정운찬식 이익공유제에 대한 소식이 발 빠르게 전해졌고, 관련 기사도 많이 나왔다. 대기업과 언론의 협공으로 잠잠해지나 했더니 기대 밖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좋은 제도는 분명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저마다 1등 기업이 되기 위해 알아서 서열화에 매달리는 대기업이 본인들이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결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잘 될 수 없다고 자조할 때, 첫 술에 배부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론이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 올 제도에 반발하며 기업의 시각으로만 보도할 때, ‘동반성장’이라는 이상은 더더욱 이상이 되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