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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미디어에게 ‘노 땡큐’를 외쳐라

한 평범한 샐러리맨은 태어날 때부터 만인의 스타가 된다.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그의 탄생부터 서른 살이 가까울 때까지의 일거수일투족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또한 그의 주변인물은 모두 배우이며 사는 곳 또한 스튜디오지만 정작 그는 모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영화 <트루먼 쇼>의 줄거리다. 199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24시간 노출되는 한 개인의 사생활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 즉 미디어가 인권을 침해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 당시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영화 속 이야기의 현실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주었다. 어느덧 트루먼 쇼의 경고를 받은 지 12년이 지났다. 현재 우리는 세상이 점점 더 < 트루먼 쇼> 화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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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알 권리’를 가장한 미디어의 횡포

최근 한 70대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갖가지 별명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분은 바로 원조 된장녀, 이 시대의 마지막 된장녀, 된장녀 종결자를 하나로 묶어주는 대명사가 되어버린 맥도날드 할머니다. 한 매스컴을 통해 보도된 맥도날드 할머니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자 각종 언론과 방송에서는 할머니에 대한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 공중파 방송에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기획으로 한 시리즈 2편을 방송했다. 방송에서는 맥도날드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집중적으로 취재할 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가족, 대학 동기, 전 직장 동료를 만나 그녀의 성장과정 및 삶 전체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방송 후, 점점 방송이 할머니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대중들의 의견이 나왔다. 그러자 PD는 할머니도 한 사람의 피해자인 것을 전달하고 싶었으며, 사람들에게 할머니가 거처 없이 패스트 푸드점과 커피 전문점을 거쳐하는 진짜 이유를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PD의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방송은 할머니의 된장녀 이미지를 굳히는 것에 일조를 했을 뿐, 약자를 보호하려한 PD의 의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방송이 국민의 ‘알 권리’ 와 할머니의 ‘인권 보호’를 위시하여 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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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개인은 언론의 ‘카더라’식 보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정작 다루어야할 문제들은 뒷전으로 하고 개인의 사생활에 집착하는 언론의 고질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 해 전 학력 위조로 파문을 일으킨 한 여교수 사건은 이러한 언론의 고질병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언론은 여교수 사건의 본질적 쟁점인 허위학력 문제보다 젊은 여성의 뒷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곧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한 그녀의 성 스캔들은 대중들에게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곧 여성단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언론을 비판하기 시작했으나, 언론은 ‘ 국민의 알권리’,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운운할 뿐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녀의 스캔들을 국민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방식으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언론의 인권개념이 결여된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 가 ‘가십’으로 바뀌는 것이 한순간임을 보여준다.

이쯤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과연 우리는 연예인을 우리와 같은 한 ‘개인’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세상은 어느 순간 연예인에게 인권을 포기하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미디어와 대중들은 단지 연예인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의 사생활은 세상만사에 노출되어도 마땅하다는 태도다. 그 중 특히 스포츠 연예지는 연예인과 관련된 대형 스캔들이 생겨날 때면 저마다 좀 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새로운 관련설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수많은 추측성, 선정적 기사들을 남발하고 있다. 또 한 그들은 언론으로부터 사생활에 대한 집요한 추궁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그들의 인권침해를 스타의 이름값에 값하는 유명세로 치부하면서 당연시 할 뿐이다.

연예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비단 언론 뿐만이 아니다. 뉴스, 버라이어티 쇼, 코미디, 드라마 등 장르와 무관하게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의 경우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인격권이나 프라이버시에 무심하다. 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프로그램들의 경우 대체로 가학적인 화면이나 쇼킹한 일반인의 모습, 엽기적인 언어들, 장애인이나 어린이의 인격권을 무시하는 장면들이 주축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모두 미디어의 예비 피해자.

영화 <트루먼 쇼>에서 비판하는 것은 당시 미디어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는 미디어의 악한 만행을 즐기면서 24시간 TV앞을 떠나지 않는, 즉 방관자를 자처하는 인간에 대한 비판을 빠뜨리지 않는다. 미디어의 인권침해적 보도는 대중의 극한 관심과 호기심을 만들고, 이러한 대중의 반응은 또 다시 미디어의 횡포를 낳는다. 

이러한 악순환을 쉽게 끊지 못하는 것은, 미디어로 인한 인권침해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디어에 의해 항상 노출되어 있고, 예비 피해자 선상에 서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우리도 미디어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화제의 00녀,00남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사적인 정보가 가득한 미디어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와 같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이제 그만 접어두고, 우리의 ‘알 권리’를 극진히 존중해 주는 미디어에게 ‘노 땡큐’를 외치도록 하자.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2 Comments
  1. 여강여호

    2011년 3월 9일 05:00

    인권침해로 웃음을 파는 미디어…
    어느덧 만성이 된 듯 합니다.
    황색저널리즘이 강화될수록 보이지 않는 인권침해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수밖에 없죠…
    자정….이도 안된다면 소비자가 나서는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 NiceMiddle

      2011년 3월 9일 13:28

      네. 어찌보면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일인데 우리는 만성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찔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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