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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고교별 합격자 명단은 왜 발표하나?

“신입생은 원료이고 졸업생은 최종 제품입니다”

일명 CEO형 총장으로 유명한 서강대 전(前) 총장이자 전(前)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 손병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흔히 대학의 고객은 학생이라고 생각하지만 고객은 기업입니다. 신입생은 원료이고 졸업생은 최종 제품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학교가 학문의 전당에서 취업의 관문으로 바뀐 것은 이제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학생들 간의 무한 경쟁은 어느 샌가 합의가 되어버린 듯, 이제는 아무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경쟁하는 것은 학생만이 아니다. 더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유치하기 위해, 더 높은 취업률을 내기 위해 대학에서는 취업이 안 되는 과를 통폐합시키고, 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을 학교 곳곳에 들어서게 하고, 고교등급제를 적용하여 신입생을 뽑는다. 그리고 이를 대학 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대학은 공교육의 대표자로서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공간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대학의 의미는 이제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자격증 취득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학생들은 짧게는 4년, 길게는 7~8년을 거쳐 OO대학교 졸업자라는 라벨을 갖는다. 물론 ‘좋은’ 대학교를 졸업한 상품과 ‘후진’ 대학교를 졸업한 상품의 등급이 다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등급없는 상품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메이저 신문사의 서울대 고교별 합격자 명단 발표는 의미심장하다. 학벌중심주의 사회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고교별 합격자 명단은 단순한 명단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최종 제품’에 등급이 있다면 당연히 ‘원료’에도 등급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를 많이 보낸 고등학교는 곧 좋은 ‘원료’가 될 학생이 많은 학교다. 언론의 명단 발표는 대부분 외고와 과학고, 자사고 등의 특목고, 강남지역 고등학교의 약진과 평준화 일반계고, 지방고의 부진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다. 지역 간, 계층 간 교육의 기회와 그에 관련한 투자의 규모가 확연히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기사는 마치 외고에 못 가면,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에 못 다니면 ‘좋은’ 상품이 될 기회조차 없을 것이라고 공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0년 서울대 합격자 명단을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에도 역시 올해 서울대 합격자 명단을 발표한 동아일보는, 2010년 명단 발표 이후 이런 후기를 남겼다. 정확한 정보 공개를 통해 정확하지 못한 정보 속에서 헤매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교육에 무조건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한 정확한 사태의 진단을 바탕으로 공교육 정상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불편한 진실’을 밝히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 기사를 본 학생이나 학부모라면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아마 이미 지방의 일반계고에 진학한 학생이라면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부모라면 강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공부 좀 하는 중학생의 부모라면 학원을 몇 개 씩 보내서라도 특목고에 입학하게 하려 하지는 않을까?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보 공개인지 궁금하다. 서울대에 많이 합격한 어떤 고등학교와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흐뭇한 기사가 될 것 같기는 하다.  

도대체 누구의 ‘알 권리’인가

마트에 있는 정육코너에 가서 보면, 같은 돼지고기 부위에도 다 등급이 매겨져 있다. 차라리 하물며 고기에도 상품등급이 있는데 이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다들 사실 알고 있던 걸로 왜 호들갑이냐고 말하는 게 좀 징그럽긴 해도 더 솔직한 모습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 신문사의 주 복무 대상에게 이익이 될 만한 기사를 내는 것이 잘못이냐고 외쳐라. 서로 속은 좀 시원할 것 같다. 독자의 ‘알 권리’라는 명목 하에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공고화시키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서울대 고교별 합격자 명단 발표는 중단되어야 한다.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 Comment
  1. 이슬

    2011년 3월 11일 07:15

    잘보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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